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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05일 06시 11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1월 05일 14시 12분 KST

울면서 시작한 '전업주부' 입문기

그 사이 아이는 참 많이도 아팠다. 3개월 동안 항생제를 늘 달고 살았고, 모세기관지염과 폐렴을 앓아 대학병원에 두 번이나 입원을 했다. 나는 이를 보면서 작은 공간 안에 아이들을 지나치게 많이 보육하는 그 어린이집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고, 아이를 다른 어린이집으로 보내기 위해 주변 다른 어린이집 상담을 몰래 받았다. 이게 이 모든 사단의 시작이었다.

[얼렁뚱땅 육아일기 #1] 울면서 시작한 '전업주부' 입문기

고요한 밤. 아침 8시에 시작한 하루가 밤 10시25분인 지금에서야 끝이 났다. 아니다. 깊게 잠든 것처럼 보이는(?) 아이가 '으앙' 울음이라도 터트린다면 이 귀하디 귀한 야밤의 평화는 쉽게 끝이 날 수 있음을 알기에 내 하루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전업주부. 사람들은 나를 가리켜 이같이 부른다. 내가 가장 듣기 싫어했던 말, 내가 가장 되기 싫어했던 말이다. 몇 달 전, 힘든 육아 때문에 시작한 심리 상담 도중, 나는 상담 선생님께 엉엉 울면서 이런 말을 했었다. "저는 제가 가장 되기 싫어하던 모습이 남편이 벌어다주는 돈으로 생활하면서 아이를 보는 전업주부의 모습이었어요. 그런데 지금 그럴 수밖에 없으니까 이게 참 슬퍼요."

지난 4월까지만 해도, 나는 워킹맘이었다.(쓰고 보니 되게 멋있어 보인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아이였지만, 친정과 시댁이 모두 멀어 육아에 도움을 받을 곳이 전혀 없었지만, 나는 자신 있었다. 일과 육아는 당연히 병행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인생의 여러 변수들 앞에, 나는 무릎을 꿇고 엉엉 울었다. 내가 가장 하고 싶었고 오랫동안 소망했던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으면서, 나는 김광석 노래가 나오는 한적한 술집에서 혼자 소주 두병을 까며, 그것도 꺼이꺼이 울어가며 내 직업과 안녕을 고했다. 그리고 전업주부가 됐다.

전업주부가 될 수밖에 없었던 내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2013년 10월로 돌아가려 한다. 당시 육아휴직 중이었던 나는 복직을 앞두고 동네 어린이집을 죄다 수소문했다. 어린이집은 많았지만, 대다수 어린이집은 인원이 꽉 차 내 아이를 받을 수 없다고 했다. 얼마 뒤, 대기를 걸어놓은 어린이집 중 단 한 곳에서만 연락이 왔다.

어린이집 문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나는 명확하게 을이었다. 매우 작은 공간 안에 12명의 아이들과 선생님 3~4명이 함께 지내는 것이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았지만, 그래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까지 하면서도 굳이 일을 해야 했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12개월인 내 아이가 잘 적응해주기만을 간절히 바라며 아침마다 우는 아이를 꾸역꾸역 어린이집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 사이 아이는 참 많이도 아팠다. 3개월 동안 항생제를 늘 달고 살았고, 모세기관지염과 폐렴을 앓아 대학병원에 두 번이나 입원을 했다. 나는 이를 보면서 작은 공간 안에 아이들을 지나치게 많이 보육하는 그 어린이집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고, 아이를 다른 어린이집으로 보내기 위해 주변 다른 어린이집 상담을 몰래 받았다.

이게 이 모든 사단의 시작이었다. 원래 다니던 어린이집에서 다른 어린이집 상담을 받은 사실을 알게 된 뒤, 우리 부부에게 아이의 발달이 느리다는 이유를 문제 삼아 아이를 어린이집에 그만 보낼 것을 당당하게 요구했다. 새롭게 상담 받은 어린이집에서도 어찌된 영문인지 (상담할 때와는 달리) 당시 걷지 못했던 아이의 발달을 문제 삼아 "(14개월인데) 아이가 못 걷는다는 것은 상상이 안 된다" "감당이 안 될 것 같다" 등 매몰찬 말과 함께 입소 자체를 거부했다. 나중에서야, 강동구 지역 어린이집 원장끼리 모여 정기적으로 갖는 회의 자리에서 두 어린이집 원장이 내 아이의 인적 사항과 상담을 받은 사실, 상담 내용 등을 공유했다는 걸 알게 됐다.

우여곡절 끝에 베이비시터를 구했지만, 그래도 일을 계속 하지는 못했다. 첫 번째 베이비시터는 참 좋은 분이었지만 개인 사정이 겹치면서 한 달 반 만에 그만 뒀다. 그리고 부랴부랴 업체를 통해 다시 고용한 베이비시터(보육교사 자격증이 있었음)가 그 동안 아이에게 온갖 짜증과 험한 말들만을 퍼부었었다는 사실을 확인한 그날 새벽, 나는 울면서 일을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전업주부가 된 지 어언 7개월. 나는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자면서조차 내 존재를 확인해야만 씨익 웃으면서 다시 잠에 드는 25개월 아들 녀석에게 똑같은 상처를 안겨주기는 싫다. 그래도 나는 다시 꿈을 꾼다. 다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하윤이 엄마'가 아닌 내 이름 송선영으로 불리는 날이 오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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