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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9월 16일 06시 07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9월 16일 14시 12분 KST

사다리를 걷어차는 길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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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철만 되면 외국에 유학 중인 자녀들이 국내에 몰려들어 인턴사원을 한다. 국내에서 스펙을 쌓으려는 것이다. 이름이 알려진 기업이나 로펌, 유명 단체 등에서 인턴십을 하려면 웬만한 배경 없이는 불가능할 정도로 경쟁률이 치열하다고 한다. 좋은 자리에 인턴 자리를 잡아주는 것으로 부모의 능력이 평가된다는 것이다.

친구의 자녀가 방학으로 귀국해 물어보니 동종 업계에 인턴사원으로 집어넣어 주었다고 했다. 아버지인 자신의 빽으로. 부끄러운 줄 알라며 핏대를 올렸더니 당연하다며 미국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어떤 인턴사원은 들어오자마자 사내 인사들이 몰려와 담당자에게 잘 봐주라고 당부하고 얼굴을 익히고 갔다는 일화도 전해주었다. 재벌회사 사장 자녀였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연간 수백억원의 일감을 몰아주는 회사 오너와 고위공무원 법조계 정계 사학주인 문화언론계 인사의 자녀를 거절할 이유가 있겠느냐고. 언젠가 인턴사원은 주요 자리에 앉을 터이고 그런 네트워크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마다할 기업이 어디 있겠느냐고 했다.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갈 확률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고 한 성경 구절이 생각난다. 우리 사회에서 보통의 자녀가 하늘나라,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가고 결혼하고 자식 낳고 집 장만하고 살 확률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젊은이들에게 하늘나라란 그 정도의 곳인데도 말이다. 대학입시도 뒷구멍 입학이 있고 취업도 로스쿨 법조인 임용에도 인맥이 작용하고 대학교수 임용은 정가가 정해져 있을 정도다.

영화 <베테랑>이 좋았다고 했더니 악과 선을 이분법적으로 그려서 유치하다고 했다. 나는 그 점이 바로 속시원하고 좋았다. 악의 근저를 들여다보면 사연이 있고 선을 파헤쳐봐도 구멍투성이일 것이다. 우리 사회에 넘치고 있는 풍조가 좋은 게 좋다 식으로 누구나 결함은 있다며 두루뭉술하게 서로서로 봐주고 넘어가는 것이다. 기득권층에 대해선 속시원히 까발리지 못하고 그만한 것쯤이야로 넘어간다. 수천억씩 돈과 권력을 바꾸어 먹은 사람은 그들만의 리그이고 한통속이니까 봐주고 조금 해먹은 피라미들은 쪼잔한 파렴치범이 된다.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 대선판에선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가 인종주의적인 폭탄발언을 하는데 미국인들은 환호한다. 민주당에선 힐러리 클린턴을 제치고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버니 샌더스가 돌풍을 일으킨다. 그는 미국의 권력을 1%가 쥐고 있다며 99%가 그것을 빼앗아오자고 목소리를 높인다. 소득불평등으로 양극화가 최고인 나라가 미국이다. 둘이 붙게 되지는 않겠지만 그런 일이 생긴다면 트럼프의 승리일 것이다. 그것이 미국이다 하고 나는 생각한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노조의 쇠파이프만 없었다면 국민소득이 벌써 3만불이 되었을 거라며 한탄했다. 3만불이 되었으면 자살률과 소득격차가 줄고 젊은이들이 취업과 결혼, 자녀를 갖는다는 희망을 가졌을까. 소수의 블랙홀로 국민 각자가 가져가야 했던 3만불은 흘러갔을 것이다. 동국대 김낙년 교수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소득불균형 지수는 미국에 이어 두번째로 높다.

미국의 작가 커트 보니것은 '미국이 세계에 증오와 공포를 부추겨 더 많은 무기를 쌓아놓고 평화를 지킨다고 하고 천만장자를 억만장자로 만든다'며 조국을 통렬히 비판했다. 그는 <나라 없는 사람>에서 스스로를 나라 없는 사람이라며 화성인들이 미국을 망하게 해주기를 기원한다고 했다. 지구상엔 미국을 망하게 할 나라가 없어서인가.

우리는 자식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부모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칭송한다. 개천에서 용이 안 난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를 쓰고 용으로 가는 사다리를 타게 하려고 한다. 왜 자신의 자녀를 용을 만드는 데 일생을 보내려 하는지 모르겠다. 미꾸라지로 살면 안 되는지.... 출세와 성공이라는 사다리에 목숨 걸고 올라가 봤자 용의 자식으로 태어나 이미 꼭대기에 앉아 있는 용들의 발길질 한번에 주르륵 미끄러져 내릴 것인데도. 버니 샌더스 주장처럼 뺏어올 능력은 없어도 그 사다리를 차버리고 살 방법은 분명히 있지 않을까 싶은데 말이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