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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24일 09시 37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1월 24일 14시 12분 KST

3당합당 탓은 이제 그만해야 하지 않을까

'3당합당'을 역사적 퇴행이자, 김영삼의 죄악으로 규정하는 것과 오늘의 정치현실의 상당 부분을 '3당합당'의 탓으로 규정하는 것은 서로 다른 차원의 문제다. 3당합당이 이루어진 지 25년이 지났고, 그 주인공이었던 김영삼 또한 세상을 떠났다. 이제는 '3당합당'에 대한 피해의식을 버려야 할 때다.


1.

71년 대선에서 야당 단일후보 김대중은 '패기 넘치는 40대 후보'로서 바람을 일으켰음에도 불구하고 박정희에게 패배하였다. 김대중은 부산에선 43%, 경남에선 25%(여촌야도현상이 살아있을 때다) 부산.경남 합치면 34%가량을 득표했다. PK의 보수성향은 이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당시 박정희는 경남에선 73%, 부산에선 53%가량을 득표했고 이는 그의 딸 박근혜가 지난 대선에서 부산.경남에서 얻은 득표율(부산 60%,경남 63%)과 거의 비슷하다. 마찬가지로 김대중의 부산.경남 득표율은 문재인의 부산.경남 득표율(부산 40%,경남 36%)보다 조금 낮은 수준이다.


2.

71년 대선에서 김대중을 찍었던 '원래 야당.민주성향'이던 PK의 34%가량의 유권자들을 김영삼이 들고가 TK에게 갖다 바친 효과는 약 13년 정도 지속되었고 그 후로는 사라졌다고 봐야 한다. 2004년 총선에서 열린우리당+민주당+민주노동당은 정당투표에서 부산에선 49%, 경남에선 47%를 획득했고, 이는 '탄핵역풍'과 '노무현 대통령 효과'를 감안하더라도 PK가 71년 대선 시절의 '야성'은 회복했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이후 치러진 모든 선거에서 PK는 민주진영에게 적게는 30%, 많게는 40%의 지지는 언제나 보여주었다. '3당합당'의 그늘은 10여년 동안 진행됐지만, '노무현'의 힘으로 극복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3.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이 패배한 것은 '영호남 대립구도'라는 지역구도 때문이 아니다. 김대중은 3자구도로 치러진 97년 대선에서 서울.경기.인천 수도권 모두에서 이회창에게 앞섰고, 노무현은 2002년 대선에서 역시 서울.경기.인천 모든 광역에서 이회창을 꺾었다. 김대중과 노무현은 충남.충북.대전 충청권 모두에서도 이회창을 큰 득표율 차이로 이겼고 이것이 김대중과 노무현의 승리의 기반이다. 반면에 문재인은 서울을 제외한 모든 수도권과 충청권에서 패배했고, 이는 영.호남 지역감정으로부터 자유로운 수도권과 충청권, 즉 중도층에서조차 문재인이 박근혜를 이기지 못했다는 증거다.


4.

그러므로 지금의 정치구도를 '3당합당'과 그로 인해 타락한 'PK지역주의'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통계적으로, 논리적으로 옳지 않은 처사다. 이것은 '야권의 무능'의 책임을 '김영삼'과 '지역구도'의 탓으로 돌리려는 '게으르고 무책임한 분석'이며, 이러한 분석이 야권의 주류를 여전히 차지할수록 야권은 계속해서 지역감정 탓만 하다가 연전연패할 것이 뻔하다. 수도권과 충청권에서 패한 것은 지역감정 탓이 아니라 실력 탓이다. 언제까지 죽은 김영삼 탓을 하며 패배의 알리바이를 늘어놓을 것인가. 박원순은 서울에서 56 대 43으로 정몽준을 꺾었고 안희정은 김종필의 아성이었던 충남에서 53대 43으로 쾌승했다. 남탓하며 패배주의에 사로잡혀있을 시간에 실력과 인격으로 승부한 자들이 이뤄낸 떳떳한 승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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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1월 당시 노태우 대통령(가운데)과 김영삼 민주당 총재(오른쪽), 김종필 공화당 총재(왼쪽)가 청와대에서 긴급 3자 회동을 갖고 민정, 민주, 공화 3당을 주축으로 신당 창당에 합의했음을 발표한 뒤 청와대를 나서는 모습.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