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2015년 11월 19일 12시 19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1월 19일 14시 12분 KST

민중총궐기가 드러낸 야당과 시민사회의 무능

2015-11-19-1447921409-5478949-chdrnjfrl.jpg


1.

일단 민중총궐기라는 기획과 실천 자체가 총체적인 실패인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11.14 이전과 이후의 정치적 상황을 엄밀하게 비교해보면 알 것이다. 11.14 이전에는 중간에 아이유사태가 끼어들긴 했으나 정치영역에서는 여전히 국정교과서가 주요한 이슈였고 새누리당과 박근혜정권은 수세에 몰려있는 상황이었다. 지금은 저들이 총공세를 퍼붓고 있고 이쪽은 시위자 한 분이 사경을 헤매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방어에만 급급한 상황이다. 그리고 '폭력진압이냐, 폭력시위냐'가 메인이슈가 되면서 다른 이슈들이 실종되었으며, 내가 볼 때 이 메인이슈는 70대30 정도로 이쪽이 불리한 프레임이다. 하루라도 빨리 여기에서 손 털고 탈출하는 게 그나마 남는 여론장사일 것이다.


2.

비교하자면 91년 분신정국의 마지막을 외대 정원식국무총리 밀가루세례로 마무리한 것과 유사한 상황이다. 국정교과서 문제는 어차피 철회를 시키기는 쉽지 않다는 점에서 최대한 정권에 대해 타격을 가한 후 적당한 시점에 질서 있는 퇴각을 해야 하는 이슈였지만 결국 최악의 시나리오로 국정교과서 이슈가 덮이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것이 충분히 예측가능한 시나리오였다는 것에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


3.

이러한 사태는, 뭐 박한감독의 말 같지만, 민주당의 무능, 시민단체의 무능, 시민들의 조직&세력화의 미약함이 총체적으로 어우러져 벌어진 것이다. 사실 국정교과서 반대의 중심세력은 마땅히 야당이 되어야만 했다. 여론이 미묘하게 엎치락뒤치락 하는 시점에서는 야당이 시민사회에 보조를 맞추는 식으로 나서는 게 맞으나, 이미 여론에서 우위를 점한 상황에서는 세력을 갖춘 야당이 전면에 나서서 여론을 이끌어가는 게 야당에게도, 여론에게도 좋은 일이다. 김대중총재만큼 의회 안에서의 대화와 타협을 강조한 야당정치인이 없었지만 김대중총재만큼 장외집회와 장외투쟁을 능수능란하게 조직하고 이끈 야당정치인도 없었다.


4.

하지만 민주당은 새누리정권과 싸우는 데 쏟을 힘을 내부의 자중지란에 쏟고 있느라 그럴 여력도 힘도 없다. 물론 이것은 끊임없이 문재인체제의 발목을 잡고 비틀어대는 안철수 등의 탓이다. 하지만 최종책임은 대표에게 있다. 만약 <민중총궐기>에 야당지도부가 전면에 나섰다면 경찰이 '과잉진압'을 할 수 있었을까? 만약 그 '과잉진압'의 피해자가 야당대표가 되었다면 상황은 전혀 달랐을 거다. 하지만 야당은 <민중총궐기>를 막을 능력도, <민중총궐기>에 동참하여 방패막이가 될 의지도, <민중총궐기>를 대체할 효과적인 장외투쟁을 기획하고 집행할 역량도 없었다. 제1야당은 그냥 구경꾼에 불과했다.


5.

이번 사태를 통해 드러난 또 하나의 취약한 고리는, 바로 '시민단체'의 퇴조이다. 2000년, 박원순이 참여연대의 대표이던 시절, 시민단체들은 총선에 개입해 '낙선운동'을 벌여 상당부분 성과를 거둘 정도의 영향력과 힘을 가지고 있었다. 2008년 광우병쇠고기반대시위때도 후반기에는 시민단체연석회의가 집회와 시위를 주도했고 비록 일부 못마땅한 부분이 있긴 하나 나름 시민들의 정서와 눈높이를 맞추고자 하는 의지와 노력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것이 당시 촛불시위가 100만 인파가 모인 평화시위와 이명박의 대국민사과로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큰 원인이기도 하다.


6.

이번 <민중총궐기>에는 '시민단체'들 또한 보이지 않았다. 시위의 주도세력이 좌파.노동.민중단체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지난 수년간 시민단체의 주요지도자들이 대거 제도정치권에 진입한 후 발생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사태다. 박원순은 서울시장이 되었고, 김기식과 최민희와 이학영은 국회의원이 되었다. 시민단체 지도자들이 정치를 하는 것을 나쁘게 보거나 비판할 이유는 전혀 없으나, 지금의 시민단체들이 그들의 공백을 메우긴 역부족이라는 게 드러난다는 것은 부인하기 힘들 듯하다.


7.

야당은 무능하고 지리멸렬하며, 시민단체들은 리더십 공백시기인데, 이를 보완할만한 '자발적 시민세력' 또한 역대 최약체로 평가된다. '노무현시대'로 이름지을 수 있을 만한 2000년대, 즉 2000년부터 2009년까지는 시민단체의 힘도 강했고, 그 아래를 지탱해줄 자발적 시민들의 조직화 또한 상당히 강했다. 노사모가 있었고, 개혁당이 있었으며, 시민광장이 있었다. 이러한 '자발적 시민의 조직화'는 2002년 여중생추모촛불시위와 2004년 탄핵반대촛불시위를 평화롭고도 질서정연하게 성공적으로 진행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2009년 노무현대통령 서거 시 순식간에 전국에 자발적으로 차려졌던 시민분향소들과 그로 인해 가능했던 500만 추모인파 또한 이 '조직화된 시민들'의 존재 때문이었다.


8.

하지만 노무현의 죽음과 함께 노사모와 개혁당과 시민광장의 유산들은 함께 사라졌다. 지금 우리는 모든 차원에서의 '리더십 공백'을 경험하고 있다. 야당은 오합지졸 지리멸렬이고, 시민단체들은 1세대 지도자들의 공백을 아직 극복하지 못하고 있으며, 시민들 또한 2000년 이후 가장 약한 조직화 상태이다. 이러니 정치적 감각은 시대에 뒤떨어졌고 세도 약해졌지만 결속력은 여전하고 내부의 리더십도 살아있는 노동.좌파.민중단체들이 '역사교과서 국정화' 이슈를 타고 자신들의 존재감을 과시하려 '민중총궐기'를 기획하고 집행했고, 야당과 시민단체들은 방관 내지 소외된 사이 조직되지 못한 시민들이 개별적으로 그 '총궐기'에 결합했으며, 이로 인해 <민중총궐기>는 당일날의 집회의 목적도 달성하지 못하면서 많은 피해자를 낳고, 설상가상으로 이후의 여론지형을 완전히 불리하게 바꾸게 만드는 촉매제가 되었다.


9.

'폭력진압이 옳으냐 그르냐' '민중총궐기가 그럼 잘못되었다는 말이냐'라는 식의 감정적인 반응을 극복하지못하는 한, 앞으로 이런 일은 계속 반복될 것이며, 그때마다 패배는 거듭될 것이다. 멀리 있는 역사만 성찰의 대상이 아니라 가까이 있는 역사에 대해서도 성찰해야 하며, 어떤 때는 성찰하는 역사가 가까울수록 그 성찰의 순기능과 효과는 더 높기도 하다.


default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