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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4월 22일 11시 05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4월 23일 14시 12분 KST

인정하고, 표현하고, 흘려보내기 | 에드바르 뭉크 '병든 아이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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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바르 뭉크 | 병든 아이 I, 1896년

상처에 등급을 매길 수는 없겠지만, 어린 시절 사랑하는 사람을 상실한 경험은 개인에게 가장 가혹한 아픔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는 어디일까요. 파리한 얼굴의 소녀는 마치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는 듯하네요. 이 작품은 개인적 트라우마를 자신의 작품으로 승화시킨 화가 뭉크의 석판화입니다.

작품 속 소녀는 뭉크가 가장 사랑했던 누나입니다. 누나는 뭉크에게 어머니 그 이상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뭉크가 태어난 지 3년 만에 돌아가신 데다가 어린 시절부터 병약했던 뭉크를 누나가 정성으로 돌보아줬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누나마저 뭉크가 12세가 되던 해 죽고 말았습니다. 뭉크는 오랫동안 자기로 인해 누나가 죽었다는 죄책감에 시달렸지요. 사랑하는 두 여인의 죽음은 뭉크가 애착관계를 형성하는 데 어려움을 주었습니다. 또한 그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되었지요. 뭉크는 어두운 자신의 삶과 고통스러운 심리적 경험, 사랑과 죽음에 대한 견해를 작품에 반영하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두려움을 극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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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바르 뭉크 | 절규, 1893년

우리의 뇌에는 긍정적 기억보다 부정적 기억이 오래 남습니다. 감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긍정적 감정보다는 부정적 감정이 더 오래가지요. 좋지 않은 감정이나 생각이 떠올랐을 때 거기에 빠져 있기만 한다면, 나쁜 기억은 더 강하게 여러분을 괴롭힐 것입니다. 흔히 '기억 속에 사는 사람'이라는 말을 하는데, 이 말은 다소 부정적인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옛날 일만 떠올리며 과거의 추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무언가 상처가 있고, 그 상처를 치유하지 못한 채 추억이라는 보호막 아래 숨어 있는 것입니다.

과거의 경험은 현재의 나뿐만 아니라 미래의 나에게도 영향을 줍니다. 상처를 준 사람이 아니라 상처를 받은 나에게 계속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함정이지요. 그러니 이 상처를 계속 묻어두고 가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닙니다. 용감하게 상처와 마주하고 그것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해소해야 합니다.

물론 나의 상처를 바라보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다시 그 상황을 떠올리게 되고 거듭 똑같은 상처를 받는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에 고통스럽습니다.

이럴 때는 그때의 상처가 나의 몸과 마음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를 알아차리는 것부터 시작합시다. 사람의 감정은 그것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려주는 것만으로도 해소되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그러면 비로소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감정을 다스리는 주체로서 한발 나아갈 수 있지요.

감정을 억압하거나 억제하는 것보다는 그것을 인정하고, 더 나아가 나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 처음에는 힘들겠지만 조금씩 표현하다 보면 감정이 해소되는 것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음의 상처도 몸의 상처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아프고 보기 흉하다며 꼭꼭 숨겨놓기만 한다면, 상처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곪아터지고 어느덧 몸 전체에 독기를 퍼뜨릴 것입니다. 반면에 상처를 드러내어 소독하고 잘 관리하면, 처음에는 쓰라리고 아프겠지만 곧 깨끗하게 아물 것입니다. 흉터가 남아 속이 상할 수도 있겠지만 언젠가는 '그래, 그런 일도 있었지'라며 넘길 수 있지요.

그러니 아프고 불필요한 감정과 생각들은 가둬두지 말고 자연스럽게 흘려보냅시다. 내가 품을 수 있는 마음과 감정, 생각들만 품도록 합시다. 어느덧 잘 정돈된 내 마음의 공간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 이 글은 필자의 저서 <누구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의 내용 중 일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