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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18일 09시 50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2월 18일 14시 12분 KST

이별을 예감할 때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

한때는 나의 모든 것을 내주어도 아깝지 않은 사람이 있었을 것입니다. 사랑이란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것을 줬다가 한순간에 모든 것을 앗아가는 야속한 존재이니까요. 이별을 예감하고 그를 만나러 가던 어떤 날을 기억하나요. 이 사랑의 끝이 머지않았음을 직감했을 때 우리의 표정은 어땠을까요. 나는 어떤 표정으로 그를 맞이해야 했을까요.

화가들 중에는 여성 편력이 화려한 사람이 많습니다. 그들에게 여성은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뮤즈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에 한 여자를 계속해서 그린 남자, 에드워드 번존스가 있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보면 피카소와 그의 연인인 프랑수아 질로, 로댕과 그의 연인인 카미유 클로델이 생각납니다. 피카소는 프랑수아 질로가 이혼을 요구하자 자살하겠다면서 헤어질 수 없다고 소동을 피웠지요. 로댕은 카미유 클로델의 사랑을 배신했습니다. 로댕은 부인과 이혼하고 카미유 클로델과 결혼하겠다고 말하면서 계속 교제를 이어나갔지요.

어린 시절 어머니와 누나를 잃은 에드워드 번존스는 내향적인 소년으로 자랐습니다. 일찍부터 중세 문학과 미술에 빠져들었고, 30대에 영감을 주는 여인인 마리아 잠바코를 만납니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잠바코는 의사와 결혼했다가 이혼한 상태였습니다. 번존스는 유부남이었지만 잠바코에게 순식간에 홀립니다. 그리스 신화에 빠져 있던 그에게 그리스 핏줄인 잠바코는 그만의 '아프로디테'였습니다. 당시 화가들 사이에서 잠바코는 스터너(stunner, 깜짝 놀랄 만한 미인)라는 애칭으로 불렸다고 하지요.

portrait

마리아 잠바코의 초상화 Portrait of Maria Zambaco 1870, 에드워드 번존스 Edward Coley Burne-Jones

이 그림은 번존스가 잠바코와 헤어지기로 결심했을 때 그녀의 부탁을 받고 생일 선물로 그렸다고 합니다. 잠바코의 커다란 두 눈이 애처롭게 상대를 갈구하는 듯도 하고, 차분하게 감정을 정리하는 듯도 하고, 원망과 분노를 담고 있는 듯도 합니다. 입술은 애써 울음을 참는 듯하고요. 그러나 상대를 직시하는 눈빛은 슬픔에만 젖어 있는 연약한 모습으로만 보이지 않네요.

그녀의 뒤에는 사랑의 신 큐피드가 등을 돌리고 있고 그림 오른쪽에는 슬픔을 뜻하는 파란 수선화가 그려져 있지요. 그녀가 손에 쥐고 있는 것은 '크레타 섬의 꽃박하'로 불리는 '흰색 꽃박하'로, 지중해의 열정을 상징합니다. 크레타 섬은 잠바코가 그리스 출신임을 암시하고 흰색 꽃박하의 '열정'이라는 꽃말은 그녀에 대한 번존스의 마음을 표현합니다.

그림 아래쪽의 책은 고대 브르타뉴 지방의 '사랑의 노래'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옆 큐피드의 화살에는 "26세의 마리아, 1870년 8월 7일 EBJ(에드워드 번존스)가 그림"이라고 쓰여 있네요. 옷에 잔뜩 잡힌 주름을 그리느라 작업 시간은 더욱 오래 걸렸을 것이고 둘의 감정은 더욱 애틋해졌을 것입니다. 이 그림에서 번존스는 잠바코를 사랑의 여신으로 표현했습니다.

이 그림을 그린 이후 번존스와 잠바코의 관계는 절정으로 치닫습니다. 번존스는 친구의 폭로로 아내 조지아나와 잠바코가 대면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쓰러지면서 벽난로에 머리를 부딪치기까지 했습니다. 잠바코와 번존스는 자살을 계획했다가 실패했고 번존스는 갑자기 로마로 떠나버렸습니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잠바코는 미친 듯이 그를 찾아 떠났지만 번존스는 로마로 가던 도중 자신이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고 결국 아내 품으로 돌아오지요. 번존스는 잠바코와의 관계를 1870년 초에 완전히 청산합니다.

하지만 그녀를 잊지 못하고 그 이후에도 줄곧 그녀를 모델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몸은 떨어져 있어도 마음은 그녀에게 있었던 것이지요.

아이러니하게도 번존스의 대표작은 잠바코의 초상화입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저는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안타까움보다는 신중하지 못한 번존스에 대한 분노가 더 큽니다. 번존스로서는 어린 시절 사랑하는 여인들과의 헤어짐이 큰 상처로 남았을 것이고, 그래서 또다시 사랑하는 여인을 잃는 것이 커다란 상실감을 주었을 테지만 말입니다.

번존스와 헤어진 잠바코는 파리로 가서 조각가가 되었고 평생 독신으로 예술에 심취하여 살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이루지 못한 번존스와 잠바코의 사랑은 각자의 자리에서 예술로 피어났습니다.

* 이 글은 필자의 저서 <그림과 나>의 내용 중 일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