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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26일 09시 36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1월 26일 14시 12분 KST

이상적으로 여기는 사람으로 나를 대체할 때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무엇일까요

산치오 라파엘로 자화상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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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도 알토비티 초상화 Portrait of Bindo Altoviti, 라파엘로,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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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 Self-portrait, 라파엘로, 1506


탐스러운 금발과 초록빛 눈, 신비로운 표정을 지닌 두 남성은 같은 인물일까요.

라파엘로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각각 라파엘로가 1514년경에 그린 피렌체의 젊은 은행가 빈도 알토비티의 초상화이고, 라파엘로 본인의 자화상입니다. 라파엘로 전기에 따르면 빈도 알토비티는 당시 부와 권력을 거머쥔 피렌체 상류층이었습니다. 라파엘로는 자신이 상상할 수 있는 범위에서 가장 부드럽고 아름다우며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매력적인 청년을 그렸지요. 그리고 이 작품을 자신의 최고 걸작 중의 하나로 아꼈다고 합니다.

놀라운 점은 분명히 다른 인물의 이미지인데도 어떻게 이렇게 비슷하게 구현되었느냐는 것이지요. 이는 라파엘로 스스로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 또는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은 자신의 모습이 그대로 투사되었기 때문입니다. 자의식이 강한 예술가가 아니라도 인물화를 그리다 보면 자신과 비슷한 점들을 그림에 투사합니다. 그림을 감상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이 성화를 보면서 예수의 품에 안긴 양을 자신이라고 생각하며 평화를 느끼는 것처럼 말이죠. 예를 들면, 충동적인 감정이 들었을 때는 이를 부정하는 대신에 그 충동을 지닌 누군가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입니다. 프로이트가 주장한 오이디푸스 갈등기에 유아는 동성의 부모를 자신과 동일시함으로써 이성의 부모를 간접적으로 소유합니다. 이 과정에서 아이는 부모를 비롯해서 형, 동생, 친구 등 밀접한 주변 인물들의 태도와 행동을 닮아가지요.

장기간에 걸친 성공적인 동일시는 아이가 성인이 되어 부모로부터 분리되고 독립적인 개체로 자신의 삶을 영위해나갈 수 있는 개별화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칩니다. 각기 달리 이루어지는 주관적인 과정으로 아동의 성격 발달에 주효합니다. 동일시 과정 그 자체보다는 아동이 양육자의 어떤 부분을 자신과 동일시하는가를 봐야 합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과의 동일시는 열등감을 피하기 위해 유능한 타인의 바람직한 특성을 마치 자신의 것처럼 끌어들임으로써 심리적 안정을 얻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유명인들의 패션과 심지어 말투까지 인기를 끄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유명인이 되기를 바라면서 그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심리적 기제 때문입니다. 라파엘로 역시 자신이 아름답고 자신감 넘치며 부드럽고 당당한 매력을 가진 사람으로 보이기를 원했을지도 모릅니다 .

자화상은 23세의 라파엘로가 피렌체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명암법을 배운 뒤 그린 것입니다. 온화하고 청순한 외모와 부드러운 눈길은 라파엘로의 청년기 작품에 나타나는 공통된 특징입니다. 무늬가 없는 어두운 톤의 옷과 모자, 낮은 채도의 배경은 라파엘로의 흰 얼굴을 더욱 부드럽고 환하게 부각시킵니다. 단조로운 색조의 배경과 단일한 검은색의 채색은 꾸밈없는 자신의 참된 모습을 나타내기 위한 표현 방법이지요. 작품은 전반적으로 차분한 색조인데도 인물의 표정과 인품까지 선명하게 부각되고 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중세와는 달리 인간의 개성과 존엄성이 인정받았기 때문에 개개인의 창조성을 부각시키는 근대적 자아 개념이 생겨났습니다. 이 때문에 자기 고백적이거나 자아 분석적인 모습보다는 개인의 사회적 지위와 직함을 드러내기 위한 자화상이 늘어났지요. 화가가 자신의 모습을 화폭 속 군상 가운데 등장시키는 입회 자화상이나 화폭 속의 의식이나 행사에 직접 참가시키는 참여 자화상 역시 이러한 목적을 띠고 있습니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라파엘로의 자화상은 순수하게 자신의 모습에만 열중했습니다. 그의 많은 작품 중에 이 자화상만큼 인간미를 이상적으로 표현한 작품도 드물지요. 이 작품 안에서 라파엘로는 부드럽지만 당당해 보입니다. 고갱과 고흐가 자신들이 어떤 사람인지를 철저하게 찾아내고 탐구하는 과정을 자화상으로 드러냈다면 라파엘로는 자신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인간상을 자화상으로 남기는 일에 좀 더 초점을 맞췄습니다. 공주가 궁정 화가를 통해 인물 그 자체보다는 화려한 배경을 강조한 초상화를 남겼던 것처럼, 우리가 아무리 많은 사진을 찍어도 가장 잘 찍힌 1장만을 고르고 골라서 남기는 것처럼 말이죠.

* 이 글은 필자의 저서 <그림과 나>의 내용 중 일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