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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1월 18일 17시 40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1월 18일 17시 41분 KST

비혼 선택한 친구들이 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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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청년들 사이에선 결혼도 아니고 미혼도 아닌 '비혼'을 선택하는 청년들이 많이 늘었다.

비혼은 결혼포기와는 또 다른 양상을 띤다. 포기란 하려던 일을 도중에 그만둬버리는 것을 뜻하지만, 비혼은 결혼 자체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청년들은 왜 비혼을 선택하는 걸까?

'혼자 사는 게 좋아서', '결혼시기를 놓쳐서'와 같은 이유들도 분명 있지만 최근엔 결혼 비용, 육아, 사회적 차별 등으로 비혼을 선택하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내 주위에 비혼 의사를 밝힌 친구들 중엔 남자보단 여자가 많았다. 이들은 하나 같이 "한국 사회에서 결혼은 여성에게 메리트보다 단점이 더 많다."라고 얘기했다. 결혼이란 1+1=2 이상의 시너지를 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남녀 한 쌍이 함께 삶으로서 혼자 살 때보다 더 많은 행복을 누려야 하는 것이 결혼이어야 하는데, 요즘 청년들은 결혼이 혼자 사는 것만 못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비혼을 선언하는 것이다. 이들의 비혼 선언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직장과, 결혼제도가 여성에게 요구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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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고 아이를 갖게 되면 그것으로 인생이 거의 끝이 난다. 회사를 그만둬야 하는 상황이 생기거나, 육아휴직을 쓴다고 하더라도 복직할 때가 오면 처음부터 다시 커리어를 쌓아야 하거나, 승진에 제약이 생기기 십상이다. 또 퇴근 후 집에선 혼자 애 돌보기 바쁘다. 한 친구는 최근 회사에서 어처구니없는 경험을 했다며 단톡방에 서러움을 토로했다. 사수가 퇴근을 안 해서 자신도 퇴근을 못 하고 있는데 그 이유가 집 가면 애 봐야 하니까 안 한다는 것이었다. 다른 친구는 회사 내 임신한 선배들의 처지를 보니 자신도 그렇게 될까 두렵다고 말했다.

어디 그뿐이랴. 주말이나 명절이면 남편과 시댁 눈치 보기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인사도 드리러 가야 하고, 설과 추석엔 음식과 설거지와 청소에 이게 명절인지 직장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다. 비혼을 선언한 친구들은 "우리나라에서 결혼하면 남편 이외에 딸려오는 것들이 너무 많다."라고 얘기한다. 이 남자와 함께 살려고 결혼한 것이지, 남자의 가족들과 함께 살려고 한 것이 아니란 얘기다. 여성들의 명절 스트레스가 얼마나 많은지는 엄마나 누나를 보면 아마 알 것이다. 또 매년 명절 때마다 쏟아지는 기사와 그에 달린 댓글들만 보더라도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조상 덕 본 사람들은 명절에 해외여행 가고, 못난 조상 만난 덕에 명절 내내 전만 부친다."는 한탄은 이미 오래전부터 나온 얘기다. 명절에 일만 하고 가는 며느리들을 위해 어느 시골마을에서는 '올해 설거지는 시아버지가 다 해주마!'라는 현수막을 내걸었는데 요즘 청년들이 원하는 것은 비단 설거지만이 아니다.

요즘 청년들의 남녀평등의식은 과거에 비하면 매우 높아졌다. 과거엔 여자라는 이유로 모진 일을 해야 했다. 대학교는커녕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비율도 현저히 적었으며, 남동생과 오빠의 미래를 위해 뒷바라지를 해야 했다. 결혼하기 전엔 아버지를, 결혼 후엔 남편을 따르면서 살아야 했다. 그러나 오늘날엔 중등교육까지는 모두가 받아야 하는 의무교육이 됐고, 남녀 간 구분 없이 대학에 진학하여 교육을 받는다. 아직도 옛 습관이 배여 생활 곳곳에서 성차별을 목격하게 되지만 대학교육이 마치는 23~25세까지는 임금격차나 유리 장벽과 같은 사회적 차별 없이 자란다. 또 아들의 역할이 중요했던 과거와 달리 요즘엔 또 그렇지도 않다. 이처럼 거의 20여 년을 평등한 존재로 교육받고, 부모의 사랑도 남녀 구분 없이 받아왔기에 취업 후나 결혼 후에 마주하는 차별들이 지금의 청년들로서는 불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설거지만 해줘서는 안 된다. 음식도 같이 해야 하고, 설에 시댁에 먼저 갔다면 추석엔 처가에 먼저 가야 한다. 언제 누구 집에 먼저 갈 건지도 여성에게 선택권이 있어야 한다. 명절 때 부리는 몸종이 아니라, 내 아들이 사랑하는 여자로서의 마땅한 대우가 있어야 한다. 직장에서 겪는 차별에도 모자라 집에서 겪는 차별들 때문에 이럴 바엔 결혼을 안 하고 말겠다는 친구들이 최근 들어 늘어나고 있다. 이처럼 세대 간 문화 차이에서 오는 사회문제는 해결하기가 어렵다. 그저 서로 간의 차이에 대한 존중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뿐이다. 남자가 주방에 들어가면 혼나야 했던 과거 문화의 존재를 우리도 인정하고, 그 어느 때보다 남녀 간의 평등의식이 높은 지금의 청년들을 이해하려 할 때,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을까?

비혼이라는 개인의 의사는 당연히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요즘 비혼을 선언하는 친구들을 보면 정말 자신이 원해서라기보단, 위와 같은 요소들 때문이 많았다. 이건 너무 슬프지 않은가.

* 이 글은 필자의 브런치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