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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1월 05일 10시 13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1월 05일 10시 14분 KST

"어디 버르장머리 없게!" 일상생활 속 갑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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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 문화가 회사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일상생활 속에서도 '권위'를 내세워 아랫사람을 갈구는 일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학가만 봐도 그렇지 않나. 매년 학기초 대학교에서 일어나는 '군기 문화'가 대표적인 갑질이다. 오히려 직장보다 대학교 안에서의 서열문화가 더 강하게 뿌리 잡혀있다. 한 학번만 높아도 "선배님, 선배님" 하며 후배들은 굽신거려야만 한다. 후배들이 혼나는 이유들을 보면 더 가관이다. "인사를 제대로 안 했다.", "대답을 제대로 안 했다.", "뒤풀이 안 하고 집에 일찍 들어간다." 등등이 선배들에게 뺨을 맞거나, 머리를 박아야 하거나, 벌거벗은 채 오리 뛰기를 해야 하는 이유이다. 이런 걸 '전통'이라며 자랑스럽게 얘기하는 선배들도 있다. 회사 갑질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학생들에게 가해지는 교수님들의 갑질도 만만치 않다. 교수의 권위를 앞세워 학생의 통장을 관리한다거나, 자녀 결혼식에 동원한다거나 말이다.

중·고등학교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체벌이 없어졌지만 불과 6~7년 전만에도 체벌이 가능했었다. 특정 점수 이상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학생들은 맞아야 했고, 가끔은 터무니없는 이유로 온갖 기합을 받아야 했다. 뺨을 때리거나 성희롱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지금 막 쏟아져 나오는 회사 갑질이나 그때 당시 체벌이나 결코 다르지 않다. 직장인들이 승진에 있어 불이익을 받을까 봐 고발하지 못했듯이, 학생들도 생활기록부에 나쁘게 적힐까 봐 꺼내지 않았다. 시퍼렇게 든 멍이나, 겪어야 했던 치욕은 혼자 삭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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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에서의 갑질은 어른과 아이의 관계, 남자와 여자관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어렸을 때 "어른들 얘기에 애들은 끼는 거 아니야"라는 말을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도대체 어른들의 대화란 무엇이길래 아이들은 껴선 안 되는 것이었을까? 어른들 얘기 중에서도 특히나 '집안일'의 경우엔 더욱더 대화에 참여하기란 쉽지 않다. 아이도 가족이라는 공동체의 한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의사를 표명할 수 있다면 함께 대화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 그 밖에도 여러개가 있는데 "어른이 하는 말에 말대꾸하지 않는다."는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대화할 때 아랫사람의 말을 막는 만병통치약처럼 쓰이곤 한다. '어른의 말'이어도 잘못되거나, 불합리하다면 아랫사람 누구라도 '말대꾸' 할 수 있어야 한다. 설령 그 말이 잘못되지 않았더라도, 우리가 민주주의 사회에서 산다면 나이와 상관없이 자신의 의사는 표출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나. 어른의 말에 '말대답하지 않는다.'처럼 비민주적이고,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말이 어디에 있는가. 단어만 바꾸면 "어린애는 말하지 말라"라는 말인 셈이다. 남녀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걸크러쉬가 대세인 요즘이지만 '여자는 순종적이어야 한다.', '부인은 남편의 뜻을 따라야 한다.', '여자는 집에서 애기나 보고 있어라.'는 말들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연스럽게 통용되는 말이었고, 우리 저변에 깔려있는 정서이기도 했다.

집에선 부모와 자식, 학교에선 선생님과 학생, 사회에선 사장과 부하직원, 성별로는 남자와 여자, 나이로는 어른과 아이의 구도속에 우리는 알게 모르게 권위 있는 사람들의 갑질을 경험한다. 우리는 지위나 나이가 낮다는 이유로 부당하다고 생각한 일을 그냥 참으며 겪어야만 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우리도 내재화된 건 아닌지 의심스러울 때가 가끔 있다. "난 지위도 낮고, 어리니까 당연히 참아야지"하고 말이다. 장유유서는 어른과 어린이 또는 윗사람과 아랫사람 사이에는 지켜야 할 차례와 질서가 있음을 뜻한다. 웃어른을 공경하고 아랫사람을 배려하는 문화는 좋은 것이다. 그러나 서로가 지켜야 할 차례와 질서에 부당함이 있다면 그것이 진정 장유유서인지는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어디까지나 서로가 지켜야 할 차례와 질서를 유지한 상태에서 공경과 배려가 있어야 한다.

진정한 갑질 문화를 해소하기 위해선 우리 사회 구성원의 동의와 노력이 필요하다. 나이를 떠나 모두가 평등하다고 한 사람의 인격체로 존중해야 한다는 사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위치를 떠나 하고 싶은 말은 할 수 있어야 있다는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유교와 권위주의는 다른 것이며, 유교문화 속에서도 민주주의는 실현될 수 있어야 한다.

* 이 글은 필자의 브런치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