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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7월 19일 07시 53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7월 19일 14시 12분 KST

'나쁜 표현' 앞 새로운 전선

가장 큰 문제는 '비일관성'이다. 진보와 보수 할 것 없이 표현의 자유를 일관성 없이 정략적으로 이용한다는 혐의가 있다. 자기 편이 하는 말에는 무제한적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고 상대편이 하는 말에는 그 위험을 과장해 처벌을 주장하곤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부당하게 종북 시비를 거는 자를 처벌하자고 하면, 똑같은 논리에서 천안함 의혹을 제기하는 것이나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통성에 대한 문제제기도 '그만큼' 위험하니 처벌해야 한다는 반론에 부딪히게 된다. 이러한 논란은 '서로 건드리지 말자'가 아니라, '이것도 규제하고 저것도 규제하자'는 식으로 발전하기 십상이다.

홍성수의 혐오시대유감

일베 하는 기자, 일베 하는 스포츠 선수, 막말 게시물을 올린 판사, 여성·참사피해자를 비하한 연예인, 대북전단 살포, 대통령 비판 전단 살포, 폭식투쟁, 종북콘서트, 서북청년단, 서울시민인권헌장과 성소수자 혐오, 황산테러, 서울시교육감 허위사실 유포 유죄판결.... 지난 1년 동안 '표현의 자유'를 둘러싸고 쟁점이 되었던 사건들이다. 단지 표현의 자유 문제일 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를 들었다 놨다 한 사회적·정치적 문제들이었다.

KBS의 기자협회, PD협회, 아나운서협회 등 11개 직능단체들이 30일 기자회견을 열어 '일베 기자' 임용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다.

'표현의 자유' 둘러싼 구도의 변화들

이제 한국 사회에서도 '표현의 자유'가 본격적인 이슈로 떠올랐다.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엄혹했던 그때 그 시절에도 언론의 자유, 사상의 자유, 양심의 자유 등 표현의 자유에 관한 이슈가 있기는 했지만, '민주화'라는 대의의 보조 역할을 하는 것에 불과했다.

표현의 자유가 새로운 전선이 된 것은 이명박 정부 들어서다. 촛불시위 진압, 국가의 대시민 소송 증가, 명예훼손죄·모욕죄 남용, 인터넷 행정심의, 교사·공무원 시국선언, 선거 기간 허위사실 유포, 게임·가요·영화 심의 등의 문제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져나오면서, 이것을 '표현의 자유'라는 키워드로 묶어낼 필요가 생긴 것이다. 2010년 유엔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이 '한국 표현의 자유 보고서' 작성을 위해 한국을 방문한 것과 2011년 주요 인권·시민사회단체가 '표현의 자유를 위한 연대'를 결성해 공동 대응에 나선 것도 이즈음이다.

2012년 이 연대기구에서 발간한 '표현의 자유를 위한 정책제안' 보고서에는 국가보안법, 명예훼손죄와 모욕죄, 청소년 보호와 매체 심의, 방송, 인터넷, 영화, 공직선거법 등 총 23개 분야에 걸쳐 표현의 자유에 관한 입법·정책과제가 담겨 있다. '표현의 자유'라는 키워드로 얼마나 많은 문제를 포괄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에는 또 다른 양상이 나타났다. 무엇보다 표현의 자유 문제가 '보수 vs 진보'의 단순 대립 구도에서 벗어났다는 것이 눈에 띈다. 이전에는 보수가 표현의 자유를 (주로 국가에 의해) 제한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라면, 진보는 표현의 자유를 거의 무제한으로 옹호하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이런 단순한 대립은 통용되지 않는다.

진보는 전통적으로 명백·현존 위험의 법칙, 사상의 자유시장론, 내용규제 금지원칙 등을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핵심 원칙으로 제시해왔다. '표현'이 물리적 해악을 야기하지 않는 한 규제 대상이 아니며, 설사 그 표현이 옳지 않더라도 자율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어느덧 진보 진영에서도 어떤 표현에 대해서는 규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를 중심으로 여성, 외국인, 호남에 대한 혐오가 극단적으로 확대된 것이 중요한 계기였다. 진보 진영은 더 이상 이러한 표현을 '자유'의 영역에 두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실제로 현재 명예훼손죄나 모욕죄 등 기존 법률을 활용해 소송을 불사하기도 하고, 효과적인 규제를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법률을 제안하기도 한다.

보수 진영도 변신을 거듭했다. 일베 관계자들이 소송을 당하거나 징계를 받을 때, 보수 진영에서도 '표현의 자유'를 언급하곤 한다. 진보 진영의 전가의 보도였던 바로 그 '표현의 자유'를 보수 진영에서도 방어 논리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일베 하는 기자'나 '막말 댓글을 다는 판사', '대북전단 살포'가 논란이 될 때도 '표현의 자유론'은 어김없이 등장했다. 그들은 한편으로 스스로 표현의 자유를 주장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이중성을 보이는 진보 진영을 조롱하기도 했다.

2014년 10월 탈북자 단체인 자유북한운동연합 회원들이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통일동산 주차장에서 대북전단 풍선을 날리는 모습. 한겨레 박종식 기자

가장 큰 문제는 '비일관성'

이로써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전통적인 전선은 무너졌다. '표현의 자유'가 진보를 상징하고, '표현의 자유에 대한 규제'가 보수를 상징하는 시대가 끝난 것이다. 한편으로는 바람직한 일이다. 역사적으로 표현의 자유는 구체제 타파와 소수자의 저항이라는 차원에서 등장한 이슈이긴 하지만, 그 자체로 강한 보편성을 가진 의제다. 정치적 입장과 무관하게 공정한 게임의 규칙을 마련한다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자유롭고 평등하게 사상의 경쟁을 펼쳐보자는 표현의 자유론이 진보의 전유물에서 인류의 보편적 가치로 발전하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실제 논의가 흘러가는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비일관성'이다. 진보와 보수 할 것 없이 표현의 자유를 일관성 없이 정략적으로 이용한다는 혐의가 있다. 자기 편이 하는 말에는 무제한적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고 상대편이 하는 말에는 그 위험을 과장해 처벌을 주장하곤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부당하게 종북 시비를 거는 자를 처벌하자고 하면, 똑같은 논리에서 천안함 의혹을 제기하는 것이나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통성에 대한 문제제기도 '그만큼' 위험하니 처벌해야 한다는 반론에 부딪히게 된다.

이러한 논란은 '서로 건드리지 말자'가 아니라, '이것도 규제하고 저것도 규제하자'는 식으로 발전하기 십상이다. 이것이 경쟁적으로 포퓰리즘적 입법을 하는 의회로 집결되면 결국 전반적 규제 확대와 강화로 이어지게 된다. 진보와 보수가 표현의 자유를 함께 외치게 된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 귀결이 서로의 자유를 좁히는 쪽으로 간다면, 그건 정말 최악의 상황이다.

2014년 9월6일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시민들의 단식농성장 앞에서 일베 회원과 자유대학생연합 소속 대학생들이 '폭식투쟁'을 했다.

강자에게만 유리할 최악의 상황

이 논쟁을 이렇게 방치할 수는 없다. 여전히 표현의 자유는 중요한 의제이기 때문이다. 표현의 자유는 권리 중의 권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권리 주장의 출발점이다. 부당노동과 저임금으로 고통받는 노동자, 부당한 차별에 시달리는 이주자, 고속버스 탈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장애인,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청년.... 이들이 자신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의 처지를 말하고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표현의 자유가 제대로 보호되지 않은 채, 다른 권리의 보장을 기대하긴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표현의 자유는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찾고자 하는 모든 이들의 문제, 특히 소수자의 문제다. 그래서 표현의 자유에 관한 논란이 '자유 확대'가 아니라 '자유 축소'로 귀결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설사 '아주 공평하게' 진보와 보수, 강자와 약자, 좌파와 우파의 표현의 자유를 모두 축소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서로 하고 싶은 말을 제약받는 정도가 커질수록 이득을 보는 것은 결국 강자다. 서로 할 말을 못하는 상황은 '현상 유지'를 바라는 강자의 입장에서 그리 나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수자의 입장은 정확히 그 반대다.

표현의 자유에 관한 새로운 전선이 표현의 자유 확대로 귀결되려면 좀더 차분하고 치밀하게 문제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일베를 잡겠다고 인터넷 행정심의를 강화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본래 의도와 달리 행정심의 강화가 일베에게'만' 향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행정심의 기구의 권한이 강화되면, 그 화살은 '모든' 표현을 향하게 되고, 결국 전반적 심의 강화로 이어질 것이 불 보듯 뻔하다.

명예훼손죄나 모욕죄를 광범위하게 적용해서 나쁜 표현들을 일소하는 것은 어떨까? 역시 문제는 그렇게 확장·강화된 국가 규제가 시민사회의 자율 영역을 전반적으로 축소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 있다. 게다가 표현에 대한 국가의 관할 범위가 확장되면 그 심판 권한이 검찰과 법원으로 넘어가게 된다. 정치철학적으로는 국가와 시민사회의 경계 획정 문제를 생각해야 하고, 과연 검찰과 법원이 공정하게 업무를 처리할지에 대한 현실적인 문제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이 복잡한 논의를 풀려면 '혐오 표현'(hate speech)이라는 논점에서부터 출발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쟁점들은 대개 혐오 표현이라는 이슈로 포괄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혐오 표현은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입장에서 거의 유일하게 '규제 대상'으로 인정하는 문제 영역이며, 국제적 합의 수준과 논의 수준도 상당히 높은 편이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우리가 모범 사례나 반면교사로 삼을 만한 사례가 풍부하게 쌓여 있다. 그 논리 구조와 실천적 사례들을 따라가다보면, 어떤 표현이 어떤 이유에서 그 자유를 보장받거나 규제되어야 하는지 가닥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더 많은 표현, 더 많은 자유를 위해

혐오 표현에 대한 규제는 필요하지만, 망치를 들고 휘두르려고 들면 안 된다. 그 망치를 국가권력의 손에 넘기는 것에 대해서도 경계심을 늦춰서는 안 된다. 망치보다는 메스가 제격이다. 먼저 시민사회가 어떤 표현이 문제인지를 치밀하게 분석하고 이에 대한 치열한 토론으로 공론적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그리고 정교하게 다듬은 메스로 문제가 되는 표현을 정확하게 도려내는 일에 착수해야 한다. 그래야 나쁜 표현에 대한 규제가 표현에 대한 전반적인 규제 강화로 귀결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해서는 더 많은 표현이 필요하고, 더 많은 표현을 위해서는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표현의 자유를 위해 어떤 이유에서 어떻게 '나쁜 표현'들을 규제할 것인지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이야기를 해야 한다. 더 많은 규제보다는 더 많은 자유를 위해!

* 이 글은 <한겨레21>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