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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2월 23일 05시 31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2월 23일 14시 12분 KST

그 많은 등록금은 다 어디로 갔을까

Gettyimage/이매진스

서른에 대학에서 강의를 맡게 될 줄이야. 게다가 주변의 어떤 이들은 그곳이 '여대'라는 사실을 몹시 부러워했다. 확실히 남녀가 섞여서 강의를 듣던 내 대학시절의 강의실보다 훨씬 활기찬 분위기다. 이런저런 질문에도 대답이 곧잘 나오고 시답잖은 우스개에도 웃음소리가 요란하다. 같은 수업의 분반을 맡은 다른 교수님은 "여고에 수업하러 오는 기분이다"라며 싫지 않은 내색을 하셨는데, 이제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한 해가 채 되지 않은 1학년의 전공수업이라 그 말이 더 실감난다.

"여대라니 부럽다"라는 농은 가벼운 웃음으로 넘기기를 버릇했지만, 혼자 앉아서 작업할 일이 대부분인 생활 중에 스무 살 새내기들이 영상과 씨름하는 것을 구경하는 것은 꽤 즐거운 활력소이긴 했다. 한 학기 내내 한 번의 결석도 과제누락도 없이 매시간 반짝이는 수십 개의 눈동자 앞에 서는 것도 대단히 고무적인 일이다. 공부를 좋아했던 나도 1학년 때 저렇게까지 열심히 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혹자는 여대에 출강한 젊은 남자 강사가 누리는 특수상황이라 말했지만, 제작실습을 향한 학생들의 열렬한 탐구열을 그런 소녀 마음 정도로 깎아내리진 않으련다.

한 한기 동안 맡은 강의는 미디어학부 전공생들의 영상제작실습 수업이었다. 지식보다는 기술을 가르치는 제작실습 수업이라 달랑 학부 졸업장 한 장 밖에 없는 나도 강단에 설 수 있는 모양이다. 영상제작 기술은 해가 다르게 변하기 때문에, 학생들 입장에서는 가장 근래에 사용되고 있는 제작기술을 익히는 것이 유용한 것은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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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상시장 대부분이 디지털 장비로 전환되고 몸집이 커서 느린 방송사까지도 테입리스(tapeless) 시스템이 정착되어가는 마당에, 학교 실습실에 있는 장비는 8mm SD급 비디오 카메라였다. ⓒpixabay

그런데 제작 일선에서 가장 활발하게 뛰고 있는 연차의 현직자들은 어쩌다 특강 한두 번이면 모를까, 한 학기 정규 강의를 맡는다는 건 꿈도 못 꿀 일이다. 병나서 몸져눕지 않을 만큼만 잠을 챙기는 것도 버겁기가 일쑤이니. 해서 대개 대학 강의실에서 만나게 되는 '현직출신' 강사들이란 제작 일선에서 물러나 시간적 여유가 생긴 분들, 그러니까 편집 장비를 마지막으로 만져본 해를 곰곰이 헤아려봐야 얘기할 수 있는 분들이 많다. 테이프를 꽂아 넣고 조그셔틀을 돌리던 분들이, 스마트폰 영상편집 앱을 취미로 쓰는 학생들과 만나야 하는 것이다. 물론 기술은 제작의 일부일 뿐이고, 기술적 구현을 아우르는 구성과 문법을 알려주는 것이 더 좋은 제작수업일 수도 있다. 하지만 동시대의 기술을 활용하는 강사가 워낙 없다보니, 학교 입장에서는 한창 제작하다가 별안간 자유 시장에 튀어나온 4년차 해직PD가 반가웠지 싶다.

문제는 정작 학교에서 제공하는 실습 장비가 스마트폰보다는 조그셔틀 세대에 가깝다는 거다. 이미 영상시장 대부분이 디지털 장비로 전환되고 몸집이 커서 느린 방송사까지도 테입리스(tapeless) 시스템이 정착되어가는 마당에, 학교 실습실에 있는 장비는 6mm SD급 비디오 카메라였다. 최소한 지각을 가지고 영상을 보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HD 영상이었을 학생들에게 아이폰 카메라 화질만도 못한 장비를 쥐어주고 영상을 찍으라고 하자니 성에 안차는 건 물론이거니와 더 심각한 건 이 친구들, 테이프라는 걸 써본 적이 없는 세대다. 연필과 카세트테이프의 연관성을 추론할 수 있는지의 여부로 그 사람의 세대를 알 수 있다. 태어날 때부터 모든 음반을 CD로 만났던 이들은 카세트테이프 구멍에 연필을 끼워넣고 뱅글뱅글 돌리는 '수동 되감기'를 떠올릴 재간은 없으니까. 심지어 이 96년생들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부터 MP3를 듣던 세대다. 동네에 비디오가게가 자취를 감출 즈음이었고, 잠시 반짝했던 DVD를 지나 동영상 파일로 영화를 보는 것이 처음부터 익숙했던 세대. 태어나 비디오테이프라는 물건을 처음 만져보는 친구들도 적지 않았을 거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종종 생각지도 못했던 질문들을 받게 된다. 강의 시간이 아니어도 궁금한 게 생기면 문자로든 메일이든 아무 때나 물어보라 일러두었는데, 한 번은 학생에게 전화가 와서 받았더니 몹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저희가 이거 찍다가 배터리 나가서 카메라가 꺼졌는데 찍은 거 다 날아간 거 아니죠!" "저희 촬영한 거 뒤로 돌려서 보고 싶은데 이거 돌리면 지워질까봐 무서워서 못 보겠어요!" 상상도 못한 발상의 걱정들을 들으면서, 아 이 친구들은 전자기식 기록매체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구나 새삼 깨달았다. 고작 10년 차이인데, 그 사이에 기술은 참 빨리도 바뀌는구나. 그러고 보니 디지털 영상은 찍다가 카메라가 꺼지면 날아가지. 자칫 실수로 영상파일을 덮어써 버리기도 훨씬 쉽다. 어떤 면에서는 옛날 방식이 더 안전한 부분들이 있는 것이다. 방송사에서 테입리스(tapeless) 시스템을 도입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테이프를 버리지 못한 채 병행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단 PD들 스스로도 테이프가 없으면 불안해하는 이들이 많다. 그렇다고 설마하니 학교에서 학생들의 그런 불안감을 덜어주기 위해 일부러 테이프 장비로 준비했을 리는 없지 않은가. 미디어학부 학생들은 실습장비 때문에 등록금을 더 낸다는데, 어째서 아직도 10년 전에나 썼을 장비들을 써야하는 걸까. 그나마도 그중에 제대로 된 장비가 부족해 대여 경쟁도 만만치 않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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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강사들의 처우가 열악하다는 얘기는 줄곧 들어왔지만, 직접 액수를 보니 이건 그냥 생업으로 삼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pixabay

열악함을 실감한 부분은 또 있다. 어쨌든 비싼 등록금을 내고 수강하는 학생들에게는 양질의 강의와 피드백을 받을 권리가 있다. 해서 학생들이 제출하는 과제에는 모두 상세한 피드백을 달아주고, 각자가 받은 점수를 납득할 수 있도록 그 이유도 최대한 설명하려 노력했다. 질문도 수시로 답해주었다. 시간이 많이 드는 제작 실습인데, 기술적인 부분을 모르면 진행 자체가 어려운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과제에 대한 상세한 피드백, 질문에 대한 성의 있는 답변은 내가 학생일 때도 수강생이 요구할 수 있는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공급자로서도 이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 것이다. 의외로 이 부분이 강의 자체보다 품이 더 든다. 강의는 수십 명에게 한꺼번에 하지만, 피드백은 학생마다 개별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사가 받는 강의료에는 오로지 수업 시수만이 계산되어 있을 뿐, 이 노동은 포함되지 않는다.

나는 지난 학기의 강의를 생업으로써 맡은 게 아니다. 부당해고 소송과정에 있는 해직자로서 노동조합의 경제적 지원이 있고, 프리랜서 자격으로 하는 다른 일들도 심심찮게 있다. 대학 강의는 강의실에서 학생들을 만나고, 강의를 준비하며 관련 지식들을 모처럼 다시 정비하는데서 즐거움을 느꼈을 따름이다. 때문에 그리 신경 쓰지 않고 있었던 강의료를 후일 확인했을 때는 어딘지 기분이 서늘해졌다. 주 2회의 강의를 준비하고, 수시로 학생들의 질문을 받고, 과제 하나하나 채점하며 피드백을 달아주는 노동의 대가로 받는 돈은, 대학생 때 했던 과외 아르바이트 두 명 어치 보수에 못 미쳤다. 그나마도 내가 출강한 학교는 평균보다는 많이 주는 모양이었다. 지방과 서울 사이의 차이도 꽤 크다고 한다. 시간강사들의 처우가 열악하다는 얘기는 줄곧 들어왔지만, 직접 액수를 보니 이건 그냥 생업으로 삼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차라리 편의점 아르바이트가 벌이는 낫겠다. 비싼 등록금을 내는 학생 입장에서는 과제에 대한 풍부한 피드백을 요구할 권리가 있지만, 강사에게는 피드백을 제공하는 노동의 대가는 주어지지 않는다. 강사의 급여는 오직 강단에 선 시간으로만 계산된다. 등록금을 낸 학생에겐 당연한 권리가, 강의료를 받는 강사에겐 무리한 요구가 되는 것이다. 사회 곳곳에서 수없이 만나는 이 간극을 여기서 또 보게 된다. 이 간극은 매번 누가 만드는 것일까. 그 많은 등록금은 다 어디로 갔을까.

* 이 글은 PD저널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