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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9월 28일 05시 52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9월 28일 14시 12분 KST

애니메이션의 질감 과시와 '불쾌한 골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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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관람에 두 번 울었다.

디즈니와 픽사가 합쳐진 지 꽤 됐는데도 스토리 아티스트는 여전히 따로인 모양이다.

디즈니 쪽의 내러티브들은 비교적 단선적인 '스토리'가 대부분인 반면, 픽사 쪽은 확실히 제대로 구성이 이루어진 '플롯'에 가깝다.

런닝타임 내내 요소 하나하나가 군더더기 없이 유기적으로 내용을 이루어 나가는 과정을 보노라면, 그 치밀한 호흡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잘 짜여진 내러티브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신나는데, 내러티브와는 아무런 관계 없이 군데군데 자리 잡은 잔재미들도 쉴 틈을 주지 않는다.

<인사이드 아웃>의 경우 '앵거'가 시종 읽고 있는 신문이라든지, 트리플덴껌 CM송, 브라질 헬기 조종사처럼 패턴화의 묘미를 제대로 살린 요소들과,

또 뇌 속 모험 중 '데자뷰'라든지 '사실과 의견'을 묘사하는 방식 등은 빠져도 내러티브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는 조각들인데

오히려 그 속에서 더욱 제작진의 기지가 돋보인다.

사실 픽사의 작품들은 저런 디테일을 보는 즐거움이 굉장히 큰 지분을 차지한다.

이런 디테일들을 보고 있노라면 제작진이 회의실에서 이런 요소들을 꺼내 놓으며 낄낄거렸을 모습이 상상되어 어쩐지 더 즐거워진다.

디테일, 그래 디테일.

솔직히 <인사이드 아웃>의 아주 초기 제작 소식을 들었을 때 기획 자체는 굉장히 흥미롭다고 생각했지만, 캐릭터는 참 성의 없어 보였다.

저게 어디가 21세기 픽사 애니메이션의 캐릭터 디자인인가. 아무리 감정들이라지만 전형성이 좀 지나친 것이 너무 고전적인 것 같았다.

그동안 나온 디즈니X픽사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인사이드 아웃> 피규어의 인물 재현이 굉장히 충실한 것도,

애초에 질감이나 형태 자체가 플라스틱으로 만들기에 굉장히 유리한, 단순하기 짝이 없는 디자인이라서 그런 것 같다.

게다가 일관성도 없어.

여성형 캐릭터 셋은 이래저래 꽤 신경을 쓴 티가 나는데, 남성형 둘은 너무 성의 없잖아... 너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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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인 캐릭터 디자인은 단순하기 짝이 없지만 결국 디테일이다.

표정 묘사 하나하나마다, 입매며 눈썹이 관습적으로 움직이는 법이 없다.

픽사의 디테일 보는 즐거움이 가장 살아나는 지점이 바로 캐릭터의 표정 묘사인데, 동공 크기에 눈밑 애교살까지 감정에 맞춰 살아 움직인다.

더불어 영화 보는 내내 '조이'의 입술색이 참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저 단순한 디자인 안에서도 입술색 하나까지 세심하게 신경 쓴 흔적들이 눈에 띈다.

화장을 빡쎄게 한 '디스거스트'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새드니스'도 입술색이 살짝 들어가 있다.

눈동자하며 머릿결은 어떤가. '신경세포' 혹은 '분자'를 연상시키는 캐릭터들의 표면질감도 단순한 캐릭터 디자인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물론 저 성의 없기 짝이 없는 남성형 캐릭터들은 입술도, 머릿결도 없다. 눈동자도 작아서 효과가 반감 됐다.

공평무사하게 적용된 디테일은 오직 질감 하나 뿐이다.

그래, 질감.

꽤 많은 관객들이 바로 이 묘한 질감을 인상적으로 기억한다. 제작진의 고심이 그대로 먹혀 들어갔다는 증거다.

처음에 제작진은 이 감정들이 일종의 에너지로 이루어진 존재, 즉 물리적 실체와는 다른 존재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

아직 디자인이 전부 완성되지 않은 단계의 '조이'를 모델로, 마치 '거품'을 연상시키는 텍스쳐를 적용하려 시도했다.

제작진의 표현을 빌리면, '샴페인 거품'처럼 '스파클링'하게 만드는 것이 의도였다고.

그리고 그걸 지금의 형태로 완성하는데 8개월이 걸렸다고 한다. ...미쳤어.

8개월에 걸친 결과를 다른 감정들 모두에게 적용하기란 기술 스탭들에게 지옥과도 같은 일이었고,

비용의 상승도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 될 모양이라 내부적으로는 포기하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는데

픽사 사장인 존 레세터가 보더니 "와, 이거 멋진데! 캐릭터 전부 다 이렇게 만들자!"라고 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적용하기로 했댄다.

결과적으로 우리한테야 기쁜 일이 됐지만, 아마 당시 기술 스탭들은 쌍욕을 했으리라.

원래 영웅은 주변을 피곤하게 만드는 법이다.

늘 하는 말이지만 이순신 부하들은 이순신 학을 떼고 싫어했을 거다. ("뭔 배에 철갑을 두르래! 미친 거 아냐")

결국 어찌어찌 머리를 굴려서, 비용상승과 노가다 없이도 만들어 놓은 텍스쳐를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서 지금의 결과물을 만들어냈다고.

그러니까 이게 문제다. 막 굴리면 다 하거든 또.

우리가 늘 개고생을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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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인사이드 아웃>의 이 질감 효과는, 아마 없었어도 우리가 영화로부터 느낀 감동은 크게 영향 받지 않았을 게다.

물론 저 놀라운 시각효과가 주는 따스한 느낌이 정서적으로 큰 영향을 주긴 했지만, 어쨌든 내러티브랑은 아무 상관이 없는 영역이니까.

그러니 제작진도 처음에는 이 효과를 빼기로 잠정적인 합의를 봤던 거고.

그러니까 이 질감 효과는, 애니메이터들의 일종의 '과시'다. 사슴 뿔이라든지, 공작새 꼬리 같은 그런 거.

진화론적으로 생존에는 아무런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지만, 주로 성선택에 의해서 꾸준히 발전해온 요소 같은 그런 거다.

애니메이션이 발전해 온 역사마다 이런 장면들이 꼬박꼬박 등장하는데, 이는 고스란히 애니메이팅 기술의 발전과 맥을 함께 한다.

말하자면, "봐봐! 우린 여기까지 할 수 있어! 이 정도까지 할 수 있다고!"를 열렬하게 외치는 목소리나 마찬가지다.

처음 애니메이팅 기술이 발달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러운 묘사가 가장 어려운 요소가 바로 '질감'과 '물리력'의 적용이었다.

단순하고 매끈한 질감일수록 표현하기 쉬웠고, 물리력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단단한 고체일수록 쉬웠다.

그러니 극장에서 개봉한 최초의 풀3D 장편 애니메이션은 95년에 개봉한 <토이스토리>일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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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예상컨대, <토이스토리>의 기획은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가'가 먼저가 아니라,

'지금 3D 기술로 뭘 제일 자연스럽게 구현할 수 있는가'하는 질문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완벽하진 않아도 3D기술이 장편 애니메이션 한 편 제작할 수 있을 정도는 됐고, 픽사의 입장에서는 어쨌든 얼른 깃발을 꼽긴 해야했을 터.

그러니 3D로 만들긴 만들되 현재 기술로 썩 무리가 아닌 수준의 소재를 찾는 것이 먼저, 그에 어울리는 스토리를 갖추는 것이 나중이었을 것이다.

물리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단단한 고체, 질감 구현이 크게 중요하지 않은 플라스틱 소재라는 제한은 자연스럽게 '장난감'으로 귀결된다.

주로 로봇들이 등장하는 미래물로 갈 수도 있었겠지만, 역시 애니메이션의 주 타깃은 아동이니까.

픽사는 이미 이러한 소재에 대한 실험을 <틴 토이>라는 자사의 단편 애니메이션을 통해 끝낸 바 있었다.

그러니 95년에 개봉한 <토이스토리>를 보면, 등장하는 장난감은 죄다 질감 구현이 쉬운 플라스틱 소재다.

주인공 '우디'의 몸은 봉제인형이긴 하지만 질감 표현이 그리 섬세하진 않고, 메인이 되는 얼굴은 역시나 플라스틱.

괜히 엄하게 곰인형 이런 거 안 나온다. 머리카락이 찰랑거리는 장난감도 등장하지 않는다.

장난감이 아닌 사람 캐릭터들이 주로 발이나 몸통 위주로 등장하는 것도, 연출상으로는 장난감의 시야에서 본다는 이유이긴 하지만,

사실 당시의 기술력으로 사람을 자연스럽게 구현하는데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최대한 등장을 안시키는 게 몰입하기 좋으니까.

이런 기술적 제약들로 인한 어쩔 수 없는 선택들을, 마치 어쩔 수 없지 않은 것처럼 너무너무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픽사의 연출력이 기똥찰 따름이다.

그러니 4년 뒤 개봉한 2편에서는 좀 더 헝겁과 가죽의 질감을 살린 '우디'와 함께, 봉제인형의 질감을 제대로 구현한 말을 타고 다니는 '제시'가 등장하고,

1편으로부터 15년의 세월을 넘어온 3편에서는 무려 러그 소재의(!) 곰인형 '랏쏘'까지 나오는데다 찰랑거리는 머릿결을 자랑하는 바비인형도 나다닌다.

물론 인간들의 얼굴도 훨씬 자주 나오고.

그러니까 이 녀석들이 <토이스토리> 시리즈의 '과시'인 셈이다. 우리 기술력이 여기까지 발전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캐릭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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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콘텐츠의 역사에는, 기술적 제약이 콘텐츠의 정체성까지 결정해버리는 일이 자주 있다.

아주 오래된 예로는 조명 칠 예산이 부족해서 시종일관 어두침침한 현장에서 촬영할 수 밖에 없다 보니,

내용마저 그런 그림에 걸맞는 범죄 소재로 굳어지며 하나의 장르가 되어 버린 '느와르(Noir, 불어로 '검다'는 뜻) 필름'이 있고,

컬러 출력의 감도가 열악하니 선명한 원색 위주로 쓰라는 출판사의 요구에 따라 빨강노랑파랑 원색의 스판텍스를 입고 활약할 수 밖에 없었던

미국의 히어로 코믹스가 그러하며,

그마저도 얘는 옷이 찢어졌으니까 살색을 써야겠다고 썼는데, 잉크가 엉망으로 나와 갈색이 됐다가 결국 녹색 괴물로 굳어진 '헐크'가 그러하다.

<토이스토리>에 이은 픽사의 3D 차기작은 <벅스라이프>.

역시 마찬가지로, 주인공은 매끈한 표면을 자랑하는 개미이며, 함께 다니는 풍뎅이, 무당벌레, 거미도 플라스틱 같은 표면을 입었다.

송충이가 하나 나오긴 하지만 마찬가지로 털이 없는 매끈한 표면이다.

사실상 <토이스토리> 때와 다를 바 없는 기술적 한계를 고스란히 가져온 걸로 보이는데,

그래도 악역으로 등장하는 메뚜기의 질감에서 3년 사이에 비약적으로 발전한 표현력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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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시기에, 새로 태어난 스튜디오 드림웍스에는 디즈니의 천편일률적인 태도로부터 염증을 느끼고 나온 애니메이터들이 대거 유입됐는데,

원래 디즈니의 중역이었다가 드림웍스의 창시자로 나온 제프리 카젠버그가 퇴사 이후에도 존 레세터(아까 그 미운 픽사 사장)와 친하게 지내다가,

디즈니의 차기작이 개미가 주인공인 <벅스라이프>라는 얘길 듣고, <벅스라이프> 개봉 한 달 전에 <개미>를 후려쳐 개봉한 건 유명한 이야기다.

디즈니나 드림웍스 쯤 되면 이 정도 스케일로 "엿 먹어라!"를 시전한다.

(이 블로그의 다른 글에서 이 얘기를 한 적이 있다 http://blog.cyworld.com/miracleofgiving/8355089)

원래 디즈니에 대한 '엑소더스'의 상징처럼 제작 중이던 <이집트 왕자>는 자사의 <개미> 개봉 이후 두 달만에 극장에 걸리는데,

말인즉슨, 주력으로 제작 중이던 <이집트 왕자>와 별도로 "엿 먹어라"를 시전하기 위해 <개미> 제작진을 따로 꾸렸다는 얘기 아닌가.

그것도 <벅스라이프>보다 더 빨리 개봉하기 위해 제작기간도 후려쳤을 터.

그런데 심지어 <이집트 왕자>, <개미> 두 편 다 훌륭한 완성도를 보여준다.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벅스라이프>보다 <개미>가 더 재미있기까지 하다.

(<개미>의 주인공이 심하게 못 생겨서 E.T를 연상시킨다는 점만 빼면.)

이래저래 이 동네에는 미친 놈들이 많다.

드림웍스가 디즈니를 뛰쳐 나오면서, 예정에 없었던 <개미>만 아니었다면 사실상 출사표에 해당했을 작품인,

그래서 내용도 '엑소더스'인 <이집트 왕자>야 말로 '과시'의 총본산이다.

98년 작품이지만 지금 들어도 손색이 없는 전무후무한 초호화 OST에, 기술적으로도 나 좀 보라고 아주 소리 소리를 지르는데,

애니메이션 역사에 길이 남는 이 과시적 장면이 바로 모세가 홍해를 가르는 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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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했듯, 자연스런 표현에 있어 가장 어려움을 주는 두 요소가 질감과 물리력의 작용이었는데,

이 둘이 한데 섞여 애니메이터들을 가장 난감하게 만들던 요소가 바로 '물'이었다.

<이집트 왕자>와 비슷한 시기에 개봉했던, 한국영화 CG의 놀라운 발전을 이루었다고 홍보하던 <자귀모>에서도

가장 공들여 자랑했던 CG가 물을 자연스럽게 구현했다는 거였는데, 지금 보면 당연히 그렇지만 그 당시에도 사실 별로 안 자연스러워 보였다...

원래 물은 자연스럽기가 정말 힘든 게, 저수지에 앉아 찰랑거리는 수면을 가만 보고 있노라면 가끔은 진짜 물도 CG처럼 보일 지경이거든.

그만큼 물은 질감도 일정하지가 않고, 물리력의 작용을 받는 움직임도 심각하게 복잡하다.

드림웍스는 <이집트 왕자>의 홍해 씬에서, 애니메이팅의 가장 큰 난제였던 물이 장엄하게 갈라지는 장면을 묘사하는데 총력을 기울인다.

이 장면을 구현하기 위해 애니메이팅과는 별개로 영화 <트위스터>의 특수효과팀을 데려와 따로 꾸렸을 정도다.

이렇게 특수효과가 결집된 씬이 장장 7분 내내 이어지는 사례는 당시만 해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모르긴 몰라도 영화 전체의 예산에서 이 장면이 차지하는 비율이 만만치 않았으리라.

결과는 실로 놀라운데, 17년이 지난 지금 다시 봐도 여전히 훌륭한 시각 효과다.

세월을 거슬러도 재미있는 영화는 적지 않지만, 시각효과의 기술은 세월이 흐른만큼 고스란히 퇴보하기 마련이다.

이건 말 그대로 '기술'의 영역이기에, 당시에는 아무리 혁신적인 효과였다 해도 시간이 지나면 빛이 바랠 수 밖에 없는데,

이 장면만큼은 시간의 녹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만큼 기술적으로 뿐 아니라 예술적으로도 훌륭한 성취를 이루었다는 뜻이다.

뿐만 아니라 바다를 가르는 모세 뒤에 서있는 히브리 군중들의 묘사도 당시 제작진이 자랑하던 새로운 형태의 기술이 반영 됐는데,

그림을 하나하나 그리던 셀 애니메이션의 특성상 저런 거대한 규모의 군중을 묘사하는 것은 시도할 엄두도 못내던 일이었다.

드림웍스에서는 저 규모의 군중을 묘사하기 위해 독자적인 툴을 개발해서, 단순히 복사-붙여넣기가 아니라,

각각의 인물들이 독립적인 형태와 움직임을 유지하고 있는 거대한 군중을 그려내는데 성공했다고 한다.

사실 <이집트 왕자>는 모든 면에서 과시로 가득찬 작품이었다.

시각효과로만 따져도 저 장면 외에, 거룩한 가시나무, 열 가지 재앙이 묘사되는 장면들 하나하나가 기술적ㆍ예술적으로 대단히 혁신적이고,

당대 이집트 미술과 건축에 대한 놀라운 고증과 함께, 기독교 국가인 미국 관객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을만큼 성경적 정서에 충실하면서도

단순히 '이집트 나쁜 놈, 히브리 착한 놈'의 평면적 묘사에 그치지 않고 모든 등장인물들의 고뇌를 살린 입체적인 내러티브까지,

그야말로 디즈니에 대한 드림웍스의 엑소더스적 선언이 웅장하게 울려퍼지는 기념비적 작품인 셈이다.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사실상 2D 애니메이션의 시대가 저물면서 그 선언은 좀 맥이 빠지게 되긴 했지만 말이다.

말하자면, 문 닫고 나온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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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나올 기술은 거의 다 나왔던 2D 애니메이션과는 달리 본격적인 3D 애니메이션의 시대가 되면서,

3D기술의 발전과 함께 <토이스토리>와 <벅스라이프>가 그랬듯 소재의 제한과 과시가 함께 나타나는 장면들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드림웍스와 픽사의 등살에 밀린 좀 더 작은 제작사였던만큼,

기술에 큰 욕심 안부리고 캐릭터와 연출에 승부를 걸었던 <아이스 에이지>가 빙하기를 배경으로 했던 것도 기술적인 이유가 컸던 걸로 보인다.

상대적으로 얼음은 굉장히 묘사하기 쉬운 질감에 속했고, 더구나 그냥 허연 얼음산, 눈 산이 배경이면 훨씬 제작이 수월해진다.

눈의 경우는 그 질감을 정말 현실적으로 묘사할 수 있게 된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지만,

그냥 허연 덩어리로 만들어 놓아도 관객들이 눈으로 인식하는데는 큰 무리가 없었다.

한국에서는 열풍을 일으켰지만, <겨울왕국 Frozen>이 나에겐 꽤나 실망스러웠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픽사에 비해 훨씬 단조롭고 빈틈이 많은 단선적 스토리야 디즈니스럽다 하더라도, 그럼 눈이라도 훨씬 즐거워야 할 것 아닌가.

시종일관 눈밭이 나오는 배경은 그 스토리만큼이나 단조롭기 그지 없다.

섬세한 눈꽃의 묘사나, '엘사'가 만들어 내는 화려한 얼음의 향연은 분명 <겨울왕국>의 과시에 해당하지만,

<아이스 에이지>에서 제작의 용이성을 위해 선택했던 눈밭 배경의 밋밋함을 모두 상쇄하기엔 역부족으로 느껴졌다.

좋았던 건 노래 뿐.

한국에서 열풍을 일으켰던 이유도, 작품 자체의 완성도라기 보단 디즈니가 오랫동안 외면했던 뮤지컬의 부활이 가장 컸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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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 에이지>도, 4편까지 나온 지금은 등장하는 동물들의 털이나 가죽 질감이 대단히 현실적으로 발전했지만,

2002년에 개봉했던 1편 동물들의 털은 썩 실감나지 않는다.

물 이상으로 3D 구현이 어려운 소재가 바로 털이다.

그나마 <아이스 에이지>의 빙하기 동물들은 털이 짧으니까 다행이지, 한올 한올이 살아있어야 하는 경우라면

물리 작용의 구현에 있어 이보다 더할 수 없는 장벽에 부딪힌다.

2D 애니메이션에서 물리력의 작용을 묘사하는 건, 굉장히 고되긴 하지만 원리는 간단하다.

실제 물리현상을 잘 관찰한 다음 한 프레임씩 손으로 잘 그리면 된다.

하지만 3D 애니메이션은 그리는 게 아니다. 시뮬레이션 설계를 한다.

3D 모델링으로 캐릭터를 만들어 놓고, 이 캐릭터가 누비고 다닐 세계를 세팅하는 거다.

거기에 작용하는 광원 효과, 빛이 어느 소재에서는 반사가 되고 어느 소재에서는 먹는지,

중력에 따른 무게감은 개체마다 각각 어떻게 작용하고 또 관성은 어떻게 작용하는지 그 값을 입력해 놓는 거다.

여기서부터는 미술이 아니다. 그냥 코딩이다.

근데 구현해야 할 게 털뭉치라면 수천, 수만 가닥을 하나 하나 렌더링 해야 할 판이다. 컴퓨터 터진다.

이런 사정이 기술의 발전과 함께 고스란히 과시로 드러난 캐릭터가 바로 <몬스터 주식회사>의 '설리'였다.

<인사이드 아웃>을 보고 나온 사람들이 다들 감정 캐릭터의 질감 얘기를 하듯,

당시 <몬스터 주식회사>를 보고 나온 사람들은 '설리'의 복실복실한 털의 질감을 얘기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실 하나도 안 적절한 디자인이다.

주인공은 잠든 아이들에게 겁을 줘서 그 공포를 에너지로 삼는 괴물들이고, 심지어 '설리'는 꽤 베테랑이다.

그런데 저렇게 꼭 끌어안고 자고 싶은 질감이라니.

이건 순전히 "우리 이제 털도 이렇게까지 표현할 수 있어!!" 라고 외치는 픽사의 공작새 꼬리나 다름 아니다.

털은 가볍다. 그래서 공기 저항을 많이 받는다. 그러나 동시에 중력의 영향도 받는다.

그러니 그냥 단단한 고체가 운동할 때와는 달리, '설리'가 움직이면 털은 그보다 반박자 늦게 움직여야 나풀거리는 털의 느낌이 고스란히 살아난다.

한 가닥 한 가닥 제각기 나풀거리는 '설리'의 털을 보고 있으면, 저 모든 털들이 독립적인 물리값의 적용을 받아 렌더링 됐다는 걸 알 수 있고,

그 매커니즘을 구현하기 위해 날밤을 수도 없이 깠을 픽사의 기술 스탭들에 대한 숙연함이 절로 차오른다.

(그리고 그 '설리'가 주인공인 <몬스터 주식회사>의 감독은 아까 <인사이드 아웃>의 모든 캐릭터에게 8개월 짜리 텍스쳐를 입히라고 한 존 레세터였다.

이래저래 픽사 기술 스탭들에게는 재앙 같은 사람일 듯.)

<몬스터 주식회사>에서 '털 묘사'의 신기원을 연 디즈니는 <라푼젤 Tangled>에서 끝장을 보기로 한다.

'라푼젤'의 머리는 털은 털인데 겁나게 길다. 그러니 그 긴 머리 안에서도 위치에 따라 적용되는 관성이 다 다르다.

한 덩어리로 묶여 있으면 거기에 걸맞는 무게감이 구현되어야 하니, 또 그냥 털일 때랑은 다르다.

그래도 그나마 묶여 있으면 다행인데, 저 머리를 풀어 헤치면 한 올 한 올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물리력을 다 구현해 내야 한다.

게다가 머릿결은 또 겁나게 좋아서, 그냥 복실복실 가볍기만 하면 되는 '설리'와는 달리

차르르- 한 질감과 가벼운 운동감까지 시뮬레이션 되어야 한다.

(모바일 링크: https://youtu.be/9K-Gv4XVb10)

제작진이 추후에 공개한 '라푼젤' 헤어 시뮬레이션의 실패 사례를 보고 있으면, 이 과정이 얼마나 미쳐버리는 과정이었을지 쉽게 실감할 수 있다.

영화 내내 제작진을 고생시킨 그녀의 길고 긴 머리를 마지막에 단발로 싹둑 잘라버릴 때 아마 기술 스탭들은 가히 카타르시스를 느꼈으리라.

그러니까, 여기까진 그래도 실제 물리 세상에 존재하는 대상의 재현이다.

그리고, 발달할 대로 발달해버린 3D 기술을 가진 픽사는 더 이상 모사할 질감이 존재하지 않게 되자,

<인사이드 아웃>에 와서는 세상에 없는 새로운 질감을 창조해내는데 이른다.

(표면이 샴페인 거품인 애들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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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애니메이션은 상상에 대한 동화적 표현이니 '예쁜' 수준이지, 현실적인 몰입감을 중요하게 여기는 게임에서의 3D 그래픽은 눈을 의심케 할 정도다.

파리를 배경으로 하는 게임 <어쌔신 크리드>의 배경과, 실제 사진을 붙여 놓은 저 이미지를 보고 있으면, 어째 게임 화면이 더 실제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근데 이 놀라운 표현의 기술을 보노라면 한 가지 의아한 지점이 생긴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실제를 뛰어넘는 그래픽을 구현할 수 있는데, 왜 꼭 '사람'은 <토이스토리> 때보다 썩 발전하지 않은 수준으로 묘사하는 걸까.

'라일리'를 비롯한 <인사이드 아웃>의 '인간' 등장인물들을 보고 있으면, 머리카락이나 옷의 질감은 놀라울 정도로 현실적인데 반해

신체 비율과 이목구비, 피부의 질감 등은 <심슨>과 비교해도 별로 월등하지 않은 현실감을 보여준다.

그냥 <찰리 브라운> 같은 카툰 속 캐릭터들을 단순히 3D로 만들어 놓은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털이니 인형이니 하는 소재의 질감에는 무시무시할 정도의 노력을 들여가며 과시용 캐릭터를 만들어 왔으면서,

가장 중요한 감정이입의 대상인 '인간'에게 만큼은 어째서 이렇게 기술력을 아끼는 걸까.

여기서 '불쾌한 골짜기'라는 이론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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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히 설명하면 이런 거다.

인간은 인간이 아닌 대상이 인간과 닮을수록 더 호감을 느끼는데,

인간을 더 많이 닮을수록 더 좋아하다가 어느 애매한 지점에서 갑자기 호감도가 급격히 떨어지면서 호감도 그래프상의 골짜기를 만든다는 얘기.

물론, 인간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똑같아지는 순간 떨어진 호감도는 다시 급속도로 회복 된다. 그건 그냥 인간에 대한 호감이나 마찬가지니까.

유독 인간하고 닮은 뭘 만드는 걸 좋아하는 나라답게, 일본의 로봇학자 모리 마사히로라는 사람의 이론이다.

엄밀한 과학적 방법론을 거쳐서 나온 건 아닌 모양인지, 서양의 주류 로봇 공학자들에게 굉장히 열심히 까이기도 하는 것 같은데

들으면 분명히 끄덕여지는 부분이 있긴 하다.

흔히 로봇이란 단어를 들으면 사람 형태의 로봇을 생각하게 되는데, 사실 기능적인 관점에서 로봇이 인간형이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기능을 수행하는 팔은 많을수록 유용할 테고, 눈 역할을 하는 렌즈는 굳이 두 개 있어야 할 필요가 없다.

굳이 두 개 달 거라면 사람 눈처럼 달 게 아니라 앞뒤로 다는 게 낫겠지.

무엇보다 달팽이관이 없는 로봇에게, 2족 보행은 참으로 의미 없는 사치이자 난제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 오랫동안 공학의 난제로 존재해 왔다는 거다. 굉장히 간단해 보이는데 이게 엄청 복잡하단 말이지.

그냥 바퀴 몇 개에 캐터필러 감아서 탱크처럼 다니는 게 훨씬 안정적이고 효율적이다.

결국 로봇에게 인간형태라는 건, 공작새 꼬리나 사슴 뿔처럼 기능적으로는 아무짝에 쓸모가 없다.

이걸 완벽하게 구현하는 건 오히려 공학자들의 '과시'에 해당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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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그렇게들 인간형 로봇을 만들고 싶어할까. 호감이 가니까. 사람과 닮아서 호감이 가니까.

오로지 기능을 위해 로봇팔만 있는 녀석보다는, 저 유명했던 '아시모'처럼 두 발로 걷고 머리도 있고 말도 하는 로봇이라면

어쩐지 귀엽기도 하고 감정적인 애착이 생겨 난다.

아톰이, 마징가 제트가, C-3PO가 인간형인 것도 전부 같은 이유다.

만들기나 활용하기는 C-3PO보다 R2-D2가 훨씬 훌륭하다.

실제로 <스타워즈>를 보면 C-3PO는 수다스럽게 뛰어다니기만 하지 예쁜 짓은 R2-D2가 다 한다.

그래도 처음에 눈에 들어오는 건 인간형의 C-3PO다. 다른 이유 없다. 사람이랑 닮았으니까.

이렇게 점점 사람에 가까울수록 신기하고 호감이 상승하다가,

최근 일본에서 자꾸 만들어보이는 실리콘 사람 가죽을 씌운 '휴머노이드'같은 걸 보면 갑자기 엄청 불쾌해진다.

닮기는 이쪽이 사람이랑 훨씬 더 닮았는데. 아우 쟤넨 왜 자꾸 저런걸 만드나 싶다.

왜 그럴까.

이론은 두 가지 이유를 설명하는데,

하나는 사람과 별로 안 닮은 수준에서는 오히려 사람과의 얼마 안되는 공통점이 더 눈에 띄지만, 닮을수록 차이점이 더 부각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사실 '아시모'는 인간형이라고는 하지만, 팔 두 개, 다리 두 개 달려서 걸어다닌다는 점 말고는 실제로 닮은 건 아무것도 없다.

쟤는 누가 봐도 기계인 거다.

그런데 저 실리콘을 씌워놓은 휴머노이드는 멀리서 언뜻 보면 그냥 사람인 줄 알게 생겼다. 근데 가까이서 보면 아니다.

정말 사람하고 비슷한데, 그렇기 때문에 그 미묘한 차이들이 부각되면서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에 소름이 끼친다는 말이다.

또 한 가지는 진화심리학적인 근거를 끌어온다.

저렇게 언뜻 인간하고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의 모양새를 갖췄는데, 미묘한 표정, 이목구비, 움직임 등이 다른 것이 눈에 띄는 경우는

인간을 재현하는 기술이 없었던 시절에는 질병이나 장애, 시체의 경우 말고는 없었다는 얘기다.

원래는 정상적인 인간이었으나, 이러한 이유에 의해서 외모에 변형이 생기거나 움직임이 제한되는 경우에만 그러한 차이가 발생했다 보니,

본능적으로 이러한 위험에 대한 거부감이 작동했다는 설명이다.

<프랑켄슈타인>에서 등장하는 피조물에 대해 사람들이 보내는 공포 역시 비슷한 맥락으로 받아 들여진다.

이러한 설명은, 과도한 성형수술로 인해 부자연스러워진 외모에 대해 사람들이 느끼는 거부감에 대한 설명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혹은, 도플갱어를 보면 공포를 느낀다는, 검증되진 않았으나 굳이 검증할 필요가 없는 공포의 원천처럼-

인간이라는 절대적 자의식에 대한 타자로부터의 위협을 느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침팬치나 고릴라의 영리한 행동을 감탄하고 귀여워하며 보다가도, 너무 사람 같이 행동하는 순간 소름이 끼치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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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에서 이 불쾌한 골짜기 현상은 비슷한 시기에 개봉했던 픽사의 <인크레더블>과 워너브라더스의 <폴라 익스프레스>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폴라 익스프레스>는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춰 대단히 서정적인 영상미에, '톰 행크스'를 성우로 섭외할 정도로 꽤 공을 들인 작품이었는데

엄마 손 잡고 영화 보러 온 아이들이 원인 모를 울음을 터뜨리며 무섭다고 중간에 극장을 나오는 일이 비일비재 했다고 한다.

굉장히 현실적인 그래픽으로 사람을 구현하긴 했는데, 아직 뭔가 어색한 그 미묘함 때문에 거부감을 불러 일으켰다는 게 지배적인 해석이다.

같은 달 <인크레더블>을 개봉한 픽사는 이러한 지점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작정하고 불쾌한 골짜기를 피한 <인크레더블>의 주인공들은 현실적인 신체비율 따위 개나 준 만화체의 인물들이었고,

결국 거부감이 들래야 들 수 없는 이 히어로들의 활약은 흥행에 있어서도 <폴라 익스프레스>를 압도했다.

굉장히 영리한 선택이었다.

어디서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구글이나 페이스북이 사용자 정보를 기반으로 가게나 책을 추천해주거나, 광고를 띄우는 매커니즘이

실제로는 지금보다 훨씬 일상에 밀접하고 정확한 수준까지 가능하지만,

거기까지가면 사용자들이 공포감과 위협을 느끼기 때문에 그거보단 훨씬 덜 영리한 수준에 일부러 시스템을 맞추고 있다고.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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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인크레더블>, <폴라 익스프레스> 두 작품 다 10년 전 기술의 이야기다.

인간형 로봇이라면 모를까 비디오 그래픽의 기술은 이미 불쾌한 골짜기를 뛰어 넘어 다시 호감도가 상승하는 영역으로 들어선 것 같다.

2010년에 <헤비레인>이라는, 당시로서는 굉장히 놀라운 그래픽의 추리 게임을 만들었던 '퀀틱드림'이란 제작사는

꽤 치밀한 플롯과 섬세한 인물묘사로 호평을 받았지만, 게임 캐릭터들이 뭔가 미묘하게 사람이랑 비슷한 듯 안 닮아서 소름 끼친다는 말을 들으며

불쾌한 골짜기의 대표 게임으로 거론되는 처지에 처한다.

그러더니 고작 3년 뒤에 <비욘드: 투 소울즈>라는 게임에서는 아예 헐리우드 배우 '엘렌 페이지'를 직접 섭외해서는,

표정캡쳐, 모션캡쳐를 통해 현실감 있는 인물을 담아 내는데 성공하는데, 나 역시 즐겁게 게임하는 동안 그 어떤 거부감도 느낄 수 없을 정도였다.

(심지어 게임 다 하고 나면 엘렌 페이지랑 친해진 기분이다...)

최근 출시된 한국의 <검은 사막> 같은 게임의 스크린샷을 보고 있노라면,

인간과 완전히 닮아서 호감도가 상승하는 지점을 넘어서서,

현실에는 없는 자기 취향을 디자인해 실제 인간보다 더 높은 호감도를 부여하기 시작하는 것 같다.

...이건 다른 의미로 좀 무섭다.

어쨌거나 기술의 발달로, 실물 로봇이 아닌 그래픽 분야에서의 불쾌한 골짜기는 사실상 의미가 없어졌다.

픽사 정도의 기술력이면 실제 사람과 구분하기 어려운 3D 주인공들을 데리고 이야기를 만들어 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그렇게 하지 않을 뿐이다. 그럴거면 이름 있는 진짜 배우들 데려다가 촬영하지 뭐하러 힘들여 3D 캐릭터를 디자인 하겠는가.

흥행성도 그게 훨씬 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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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진짜 배우들로 촬영을 하고, 하키섬이니 정직섬이니 뇌 속의 환상적인 배경들만 3D로 구현을 한다면 오히려 현실감은 더 떨어질 것이다.

관객과 처음 약속한 문법이 어긋나기 때문이다.

<인사이드 아웃>은 처음부터 동화적인 디자인의 인물들을 제시하며 관객과 세계관을 약속한다.

이 약속을 처음에 수용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고, 영화가 끝날 때까지 약속이 지켜지기만 하면

아무리 비현실적인 디자인이라 한들 처음 이 세계를 세팅한 관객은 이를 하나의 통일된 현실로 받아들이고 감정을 이입하기 편해진다.

하지만 실제 배우들이 출연했는데, CG로 만들어진 머릿속 환상적인 배경들이 현란하게 이어진다면?

두 개의 문법이 충돌하면서, 저 세계는 현실이 아니라는 사실이 강하게 부각 된다.

저 배우들은 내가 사는 현실에서 볼 수 있는 사람들인데, 저 배경은 아니거든.

그럼 오히려 동화적 인물들이 일관 되게 뛰어다니는 애니메이션보다 감정을 이입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팀 버튼 류의 영화들이 예쁘고 스타일리시하지만 감정적으로 몰입하기 어려운 부분은 이러한 문법의 어긋남 때문일 것이다.

동화적인 상상력의 세계를 관객에게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서는, 동화적인 세계에 대한 약속이 필요하다.

얼마든지 실제에 가까운 사람을 모델링 할 수 있는 기술을 가졌음에도 여전히 20년 전 <토이스토리> 때와 큰 차이 없는 사람 캐릭터를 쓰는 대신,

머릿속 감정 캐릭터들에게 '샴페인 거품' 같은 텍스쳐를 입히는데 더 공을 들이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역시 '과시'는 적절한 곳에 적절하게 써야 빛이 나는 법이다.

잘난 척도 똑똑해야 해먹고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