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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4월 04일 05시 50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06월 04일 14시 12분 KST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듣고 있습니까?

대륙에서 라디오를 켜 놓은 채 국경을 넘을 때면 점점 소리가 아득해졌다가 한참 후 다른 언어의 방송이 잡히는 순간이 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전파 속을 헤매는 미아가 되었다가 다시 길을 찾고 안심하는 소심한 여행자가 되기를 반복했다.여행할 때마다 그 지역의 라디오는 언제나 벗이자 선생님이었다.

Getty Images/Vetta

딱 10년 전, 군 제대 후 무작정 런던으로 떠나 반년 정도 머물렀다.

돈이 없어 거지처럼 지내면서도 마냥 좋았던 시절이었는데,

라디오 키드였던 나는 주파수마다 음악적인 색깔이 뚜렷한 영국 라디오를

실컷 들을 수 있다는 게 무엇보다도 참 좋았다.

그 중에서도 102.2 Jazz FM을 귀에 달고 다녔는데,

재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즐겨 들을 만한 팝과 일렉트로닉까지도 아우르는

아주 넓은 의미의 재즈 전문 라디오였다.

익숙해서 반가운 곡과 생소한데 좋은 곡들의 비중이 적절해서

하루 종일 들어도 지루하지 않았고,

DJ들이 말을 많이 안 한다는 점이 특히 맘에 들었다.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날 때에도 늘 라디오와 함께 했다.

시차에 따라 시계바늘을 고쳐 돌리는 것처럼

라디오는 현지를 경험하는 일종의 의식과도 같았다.

공항에서 숙소로 향하는 길에

주파수를 이리 저리 돌리다 낯선 말과 음악을 접하는 순간

비로소 이국이란 느낌이 생생한 현실감과 기분 좋은 이질감으로 와 닿았다.

대륙에서 라디오를 켜 놓은 채 국경을 넘을 때면

점점 소리가 아득해졌다가 한참 후 다른 언어의 방송이 잡히는 순간이 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전파 속을 헤매는 미아가 되었다가

다시 길을 찾고 안심하는 소심한 여행자가 되기를 반복했다.

그 끊어짐과 이어짐의 반복은

모든 낯선 곳으로의 여행에는 다소 불안하고 긴장되는 순간들이 있지만

그런 순간들이 결국은 내 좁은 세계를 확장하는 유쾌한 경험으로 귀결된다는

여행 고유의 미덕을 늘 새삼스레 확인시켜 주었다.

여행할 때마다 그 지역의 라디오는 언제나 벗이자 선생님이었다.

지금 여기는 2014년의 서울.

글로벌시대라더니 적어도 방송에서만큼은 그 말이 맞다 싶은 게

각 방송사별, 지역별 방송을 즐길 수 있는 앱이 나와있을 뿐만 아니라

TuneIn Radio라는 스마트폰 앱 하나만으로도

거의 전 세계 모든 나라의 라디오를 언제 어디서나 들을 수 있다.

점심시간에 여의도 공원을 걸으며 영국 Jazz FM의 새벽 방송을 듣게 되다니!

예전에는 정말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요즘 핫한 모던록이 궁금할 땐 BBC 6 Music..

일렉트로닉으로 적당히 각성하고 싶을 땐 네덜란드의 Deep FM..

브라질 음악이 듣고플 땐 Mundo Livre 102.5..

손가락질 한번에 순간이동 하듯이

몸은 서울에 있지만 다른 나라의 다른 시간대를 느끼며

나의 하루는 조금 더 입체적이고 재미있어졌다.

언젠가부터 음악을 좋아하는 내 주변 사람들은

한국에는 들을 만한 라디오가 없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듣고 싶은 음악이 다양하게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약간의 정성만 들이면 이 지구상 어디에 있든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것을 찾아 즐길 수 있는 시대에

'보편적인 한국인'을 위한 라디오를 만드는 공중파 방송의 프로듀서인 나는

딱히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음악을 찾아 듣는 사람들은 이미 미련 없이 라디오를 떠났다.

유튜브와 아이튠즈, 스트리밍 사이트, 그리고 이젠 해외 라디오로까지..

한국에서 라디오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BBC와 Jazz FM과 Deep FM과 경쟁하게 될 거라고는 상상조차 해보지 못했다.

여전히 나는 라디오라는 고전적인 형식을 통해

사람들과 음악을 함께 듣는 것을 좋아한다.

무엇이 보편적이고 무엇이 보편적이지 않은 건지도 헷갈리지만

어쨌든 '보편적이지 않은 한국인'을 위한 라디오도 만들고 싶다.

이렇게 많은 주파수에 꼭 이렇게 비슷비슷한 것들을 하고 있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라디오라는 울타리 안에서

점점 의미가 약해지는 음악을 여전히 붙들고 선 채

나는 이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듣고 있습니까? 아직 듣고 있다면...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듣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