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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1월 18일 10시 55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1월 18일 11시 10분 KST

적폐청산vs. 정치보복, 무엇인 진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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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정부의 여러 비위 사실들(댓글 공작,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국정원 특활비 유용, 다스 등)이 그 민낯을 드러내고 있는 요즘 MB와 자유한국당 측은 그런 비위 사실들에 대한 조사가 "정치보복"이라는 여론을 형성하기 위해 안간힘이다. 어제는 MB가 직접 기자회견에 나서기도 했다. 정치보복이란 어떠한 법적〮도덕적 정당성도 없고 종국에는 보복의 악순환만을 가져올 뿐이라는 우리의 상식에 호소하려는 의도이다. 그럼 현재 진행되고 있는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 작업이 정말 정치보복인가? "보복"이 무엇인지에 대한 원론적인 이야기로부터 시작해서 한번 찬찬히 따져 보기로 하자.

보복은 상당히 흥미로운 도덕철학적 현상이다. 내게 어떤 부당한 위해가 가해졌다고 판단할 때 나는 그 가해자에게 보복하고픈 강렬한 충동을 느낀다. 이런 충동을 느끼는 나는 그러한 보복을 통하여 과거 내가 당했던 위해를 되값는 것이 정의의 실현이라고 믿기 십상이다. 그래서 그런지 보복이 완성될 때 나는 묘한 통쾌함을 느끼게 마련이다. 비록 그런 보복에도 불구하고 내가 과거 부당한 위해를 당했다는 사실 자체에는 아무것도 달라지는 것이 없지만 말이다.

보복을 행하는 자와 보복을 당하는 자 사이의 롤러코스터 같은 극적인 감정의 쌍곡선 때문인지 보복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문학작품이나 영화의 모티브가 되었다. 우리나라의 『장화홍련전』이 그러하고 소설 『햄릿』이나 『모비딕』이 그러하며 영화 『올드보이』가 그러하다. 그 작품들 중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진 『올드보이』를 보면, 이우진(유지태)은 그가 친누나와 근친상간을 했다는 소문으로 인하여 친누나가 자살하는 비극을 겪게 된다. 이후 이우진은 그 비극의 진원지로 소문의 최초 유포자인 오대수(최민식)를 확인하고 자신이 당했던 것과 똑같은 방법, 즉 근친상간의 방법으로 오대수에게 보복한다.

이 영화는 보복의 몇 가지 중요한 특징을 잘 드러내는데,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이우진이 오대수에게 보복을 감행하는 동기가 일반적 도덕 혹은 법 규범과 거리가 멀다는 사실이다. 이우진은 오대수가 자신의 근친상간에 대하여 소문을 유포했고 그것이 자신의 비극을 불러왔다는 생각에서 오대수에게 보복을 감행한다. 이우진이 오대수에게 앙갚음을 한 유일한 동기나 정당성은 바로 오대수라는 특정인이 자신에게 심각한 가해 행위를 했다는 이우진의 믿음이라는 것이다. 철학자 로버트 노직(Robert Nozick)은 보복이 이런 의미에서 개인적인(personal) 성격을 띤다고 말한다. 어떤 일반적 수준의 도덕이나 법 원칙이 아니라 특정한 가해자의 특정한 가해 행위에 대한 되갚음이 보복의 유일한 동기라는 것이다.

노직이 강조한 보복의 개인적인 성격은 이우진이 자신과 자신의 누이의 명예를 훼손함으로써 누이의 자살이라는 비극을 초래한 오대수에게는 잔혹한 보복을 감행하지만 그와 유시한 비극을 초래한 다른 소문유포자들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심하다는 대목에서 명증해진다. 이우진은 오직 자신에게 피해를 준 오대수가 불행해지는 것만을 목표로 할 뿐, 소문에 의해 피해를 보는 일반적인 상황에서 정의가 구현되는 것에 대해서는 하등의 관심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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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복이 갖는 또 다른 중요한 특성은 그것의 과거지향적 성격이다. 영화 『올드보이』에서 이우진이 오대수에 대한 보복에 성공한 이후 자살을 선택하는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이우진이 오대수에 대한 보복을 위한 15년간의 프로젝트를 진행한 유일한 동기가 그가 과거에 당했던 피해에 대한 앙갚음이라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 15년 동안 이우진의 삶은 누나의 죽음이라는 자신의 아픈 과거로 향해 있었기에 오대수에 대한 보복 프로젝트가 완성되는 순간 삶을 더 이상 지속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이렇듯 보복을 꿈꾸는 개인은 자신의 보복이 자신의 혹은 타인의 삶에 장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오로지 과거 자신에게 가해진 상처와 고통을 그 가해자의 상처와 고통을 통해 보상받고자 하는 욕망만이 있을 뿐.

보복(revenge)은 응보적 정의(retributive justice)와 명확히 구분되어야 한다. 분명 보복과 응보적 정의 모두 가해자의 가해 행위에 대한 무조건적 응징을 요구하지만,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보복은 개인적이고 과거지향적인데 반하여 응보적 정의는 보편적이고 미래지향적이다. 보복에 관한 글에서 흔히 언급되는 성경 구절, "눈에는 눈 이에는 이"는 엄밀한 의미에서 보복을 말하고 있다기 보단 응보적 정의를 말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왜냐하면 그것은 가해자의 처벌은 그 가해의 정도에 비례하여 이루어져야 한다는 보편적 원칙(눈에 대한 피해가 발생한 경우, 오직 가해자의 눈에 대한 처벌을 통해만 정의가 실현된다)을 세우는 동시에 그 원칙에 의거하여 미래의 범죄를 예방하는 의의를 지니기 때문이다. 보복과 응보적 정의 사이의 이러한 구분은 플라톤의 대화편 중 『프로타고라스(Protagoras)』에도 등장하는데, 저명한 고전철학자인 그레고리 블라스토스(Gregory Vlastos)는 그 구분을 인류의 역사 상 가장 중요한 발견 중 하나로 칭송한다.

현재 문재인 정부에 의해 진행되고 있는 적폐 청산은 MB에 대한 정치 보복인가? 두 말할 것도 없이 정치 보복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 청산은 개인적이지도 않고 과거지향적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먼저 그것이 개인적이지 않은 이유는 그것이 특정인의 특정 행위를 표적으로 삼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MB나 자유한국당 측은 적폐청산이 MB라는 특정인을 향해 있고, 그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해서 앙갚음이라고 주장한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이 보복 현상에서 특징적으로 보여지는 개인적인 성격을 갖는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최고권력자 혹은 그 측근들이 국민의 세금(국정원 특활비)을 유용하고, 국민을 기만하는 인터넷 댓글을 작성하여 여론을 조작하며, 은밀하게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문화예술인 탄압한 일은 법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비난을 면키 어려운 파렴치한 국헌문란범죄이다. MB나 자유한국당 측의 주장이 설득력이 있으려면 이런 범죄가 MB 정부가 아닌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에서 발생한 것으로 밝혀졌다면 지금과 같은 적폐청산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볼 합당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MB 정부 하의 여러 비위 사실들(국정원 특활비 유용, 다스 관련 사건, 문화계 블랙리스트 공작, 댓글 공작)들은 헌정을 유린하는 중범죄인 만큼, 그것이 어느 정부 하에서 이루어졌는지와 상관없이, 관련자들에 대한 엄정한 조사와 처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국민 여론이다. 설사 그것이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에서 발생했다 하더라도 말이다. 이처럼 문재인 정부의 적폐 청산은 MB라는 특정인의 특정 행위를 넘어서 보편적인 법과 원칙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이는 그것이 보복의 경우에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개인적인 성격을 띠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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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이 보복과 달리 과거지향적이지도 않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의 유일한 동기가 MB 정부에 대한 앙갚음인가? 그렇다고 보기 힘들다. 그것은 시간이 다소 걸리더라도 권력자의 범죄는 반드시 단죄된다는 분명한 시그널을 정치권력을 꿈꾸는 이들에게 줌으로써 향후 대한민국의 법치가 더욱 확고하게 뿌리내릴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한다는 명분을 지니고 있고, 그 명분을 부정할만한 어떤 근거도 존재하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이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지향하고 있다고 볼 이유이다.

이처럼 찬찬히 살펴보면 MB 정부의 위법 사실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이 정치보복이 아니라는 것에 이론의 여지가 없지만, MB와 자유한국당 측은 연일 "적폐청산은 정치보복"이라는 여론전에 나서고 있다. 그들의 여론전이 아주 작은 설득력이라도 지닌다면 그것은 아마도 그들이 정치보복과 응보적 정의를 (실수로 혹은 의도적으로) 혼동하고 있기 때문으로 사료된다. 그런데 응보적 정의의 관점에서 보자면 MB 정부 관계자들에 대한 응보를 정의롭게 요구할 수 있는 피해자는 문재인이나 민주당이 아닌 국민임을 명심해야 한다. MB 정부가 저지른 국기문란적 비위 행위의 가장 큰 피해자는 다른 누구도 아닌 국민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국민의 세금을 유용했고, 국민의 여론을 조작했고, 국민의 국가기관을 사익을 위해 남용했던 것이다. 하여 만약에라도 그 누가 MB 정부가 문재인 정부 하에서 정치보복을 당하고 있다고 끝까지 우긴다면 그 보복은 문재인에 의한 보복도, 친노에 의한 보복도, 민주당에 의한 보복도 아닌 다름 아닌 국민에 의한 보복임을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