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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4월 15일 13시 10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4월 16일 14시 12분 KST

정치적 파산

연합뉴스

많은 사람을 잠깐 동안 현혹시킬 수 있고, 일부를 평생토록 기만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 지난 4월 13일 선거 결과를 보면서 이 교훈을 생각했다.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이 주도했던 지난 몇 년에 대한 국민 배심원의 최종 판결은 한마디로 "정치적 파산' 선고였다.

정치자본(Political Capital)이라는 말은 미국의 조지 부시 2세 대통령이 연임에 성공한 직후 발표한 연설문을 통해 잘 알려졌다. 경제적 능력을 뜻하는 금융자본이나 사회적 인맥이나 권위를 포괄하는 사회자본과 함께 쓰인다. 민주주의는 국민이라는 주주가 '정치'라는 자본을 투자한 다음, 선거를 통해 경영 성과를 평가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국민이 이번 선거를 통해 '정치적 파산'을 선고했다는 것은 따라서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라'는 통보로 보면 된다.

4.13 총선 결과에 대한 해석은 자유다. 그러나 본질에 대한 규정은 한가한 말장난과는 거리가 멀다. 꽃을 꽃이라고 하는 것과 식물의 하나라고 규정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결과로 이어진다. 일물일어(一物一語) 법칙이란 말이 있는 것처럼 특정한 사건이나 이슈에 대한 '정의'하기 또는 '규정'짓기는 그 자체가 전쟁이다. 의사가 병원을 찾은 환자에게 단순한 감기라고 하는 것과 폐렴이라고 진단하는 것에 따라 처방전은 물론 그 이후의 생활 전반이 변하는 것과 비슷하다. 명확하게 의식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언론, 정치인, 청와대 모두 이번 일을 어떤 식으로든 '규정'하는 경쟁에 참가하고 있다.

"민생을 챙기고 국민을 위해 일하는 새로운 국회가 되길 바란다." 청와대가 내놓은 첫 반응이다. 총선의 결과가 '민생'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 것과 낡은 정치권에 대한 심판이라고 정의를 내린 셈이다. 원유철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말한 "친박, 비박으로 나누어서 계파 갈등하는 모습을 보여드렸기 때문"에 패배했다는 것도 일종의 규정이다. 일부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정권'에 대한 심판이 아니라 '당내 갈등에 대한 실망'의 결과라는 해석이다. "상대편의 교만하고 큰 실수 때문에 우리가 어부지리로 얻었다"는 김부겸 당선자의 인터뷰도 정의를 둘러싼 경쟁이다. 만약 새누리당이 공천파동과 같은 실수를 하지 않았다면 원내 제1당을 차지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해석이 깔려 있다. 권력도 있고, 정보도 많고, 또 민초보다는 훨씬 많이 아시는 분들이 하는 말이라 이의를 제기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정치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굳이 규정하는 경쟁에 뛰어드는 것은 그렇게라도 해야 이번 선거에 대한 '실체적 진실'이 드러날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다.

정치적 파산 선고는 국가의 지도자들에게 위임했던 정치자본의 회수를 뜻한다. 당연히 이런 판결을 하게 된 이유가 있다. 많은 사람의 피를 먹고 자랐던 민주주의가 훼손되었다. 언론의 자유는 억압되고 일부 언론사는 더 이상 언론이 아닌 정치권력이 되었다. 국가의 존망을 결정짓는 지도자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 현장에서, 메르스 풍파 속에서, 한반도 전쟁 위기에서, 민족의 미래를 준비하는 현안에서 대통령에 걸맞은 인물은 안 보였다. 집권여당의 원내대표가 볼썽사납게 쫒겨났다. 청와대, 국정원과 언론의 놀라운 협업을 통해 현직 검찰총장이 옷을 벗었다. 자고나면 치솟는 전월세 덕분에 극소수는 불로소득을 누리고 대다수는 허리띠를 졸라맸다. 평소 조금이라도 입바른 소리를 하던 사람들 중 상당수는 자신도 모르게 속된 말로 '털렸다.' 국민의 판결이 행여 '집권여당의 집안싸움' 때문이라든가 '먹고 사는 문제' 혹은 정치권의 '홍보전략'이 먹힌 결과라는 해석은 따라서 '전체'가 아닌 '파편적인 진실'일 뿐이다.

대한민국 유권자는 왜 이런 판결을 했을까? 대표이사에 해당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이 단연 돋보인다. 모든 게 내 탓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 아량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주주의 한 사람으로서 근거를 제시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라고 본다. "독선적인 너무도 독선적인." 현 정부를 가장 잘 표현하는 말이다. "일의 시작과 끝은 모두 아는 현자는 없다"라는 말이 있다. 지구촌이 시간과 공간의 구분 없이 얽히고설킨 이 시대에 한 개인이 혼자서 모두 헤아릴 수도 없고 전지전능한 지혜를 뽐낼 수도 없다. 그래서 집단지성이라는 말이 있다. 각자가 가진 작은 지혜와 재능을 모아서 최선을 방안을 찾자는 노력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이런 집단지성은 본 적이 없다. 국가의 미래라는 관점에서 그 파급효과를 가늠할 수도 없는 개성공단의 폐쇄나 사드와 같은 결정을 그렇게 쉽게 하는 무모함은 상상도 못했다. "짐이 곧 법이다"고 했던 절대왕조 시대가 아님에도 '내가 말하는 것이 법이요 진리다'는 교만도 빼놓을 수 없다.

국가를 사랑하는 마음. 공동체의 안정과 번영을 바라는 마음. 모두 함께 행복하기를 소망하는 것. 국민의 녹을 먹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가져야 할 책임과 의무에 해당한다. 꽃은 말하지 않아도 벌과 나비가 찾아오듯 제 역할만 다한다면 굳이 알릴 필요도 없다. 군대에 가고, 정당한 세금을 내고, 주어진 노동을 감당하는 것에서 현 정부가 특별히 대단할 수는 없다. 오히려 정반대였다. 애국가를 4절까지 외우고 태극기로 주변을 도배한다는 것과 진정한 애국은 다르다. 모든 콤플렉스가 그렇듯 입버릇처럼 애국을 말하는 사람일수록 공동체에 기여한 게 별로 없다는 말도 틀리지 않다. 자신들은 절대 틀릴 수 없고 비판하는 것을 적대시하는 것 역시 교만한 자의 특징이다. 지도자의 결정은 위임된 것으로 그 파급효과로 인해 결코 '불가침'의 영역이 아니다.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중요한 결정에 모든 사람이 참여할 수는 없으니까 잘할 수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대신 처리하게 한 것일 뿐이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너희는 잠자코 따라와"라고 말하고 싶다면 책임을 어떻게 질 것인지에 대해서도 분명히 밝혀야 한다. 단 한번 밖에 없는 생명을 독선적이고 교만한 지도자에 전적으로 맡길 바보는 없다.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도 없었다는 점도 반드시 짚어야 할 부분이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배를 엎을 수도 있다. 대통령은 왕일 수 없고 정부의 고위관료와 정치인도 조선시대의 양반은 아니다. 공적인 일을 할 때는 늘 감시를 받아야 하고, 잘못된 일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하며, 결코 국민의 기본적인 인권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현 정부의 행태나 새누리당의 공천 논란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추태였다. < TV조선 >과 < 채널A >와 같은 정치적 이익집단을 비롯해 정부의 통제권에 있는 < KBS >와 < MBC >를 손에 쥐고 있다고 하더라도 정도가 너무 심했다. 건전한 상식을 가진 시민이면 누구나 눈살을 찌푸리는 천박한 정치쇼를 하면서도 "그래도 너희가 나를 찍지 별 수 있어"라고 놀리는 것에 비유할 수 있었다. 일부 먹물들만이 그렇게 느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번 선거는 잘 보여줬다.

만약 이번 선거가 현 정부와 그 추종세력에 대한 '정치적 파산' 선고라고 한다면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명확하다. 불신임을 받은 경영진은 일선에서 물러나야 한다. 배에 앉은 자리만 바꾸는 것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행여 한 번 더 기회를 주면 잘 할 것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으면 한다. 멍석을 펴고 석고대죄 하던 식상한 쇼를 다시 볼 국민은 없다. 파산을 선고하기 위해 할 수 없이 손을 들어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도 예외일 수 없다. 냉정하게 말하면, 소위 야당이라고 불리는 분들도 정부의 독선, 교만과 주권자 경멸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 큰 고비는 넘겼으니 적당히 눈치만 보면서 4년을 채우면 된다는 생각은 꿈에서도 하지 않기를 바란다. 지금은 종이짱돌을 들었지만 다음에는 무엇이 될 지 알 수 없다. 엄혹했던 유신시절도 전두환 정부의 폭압적인 독재도 뚫고 나왔던 국민이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김수영 시인은 그 강인함을 <풀>이라는 시를 통해 이미 밝힌 바 있다.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눞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눞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흘리고 풀뿌리가 눕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