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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1월 17일 12시 17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1월 17일 12시 17분 KST

4차 산업혁명이 만드는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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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독학한 엔지니어예요. 해커고요, 메이커이기도 하고, 전자제품에 열광하지요. 캘리포니아 롱비치 출신이고요. 뭔가를 만드는 것을 좋아해요. 아빠는 자동차 세일즈맨이고, 엄마는 주부예요. 오랫동안 홈스쿨을 했어요. 2010년에 캘리포니아 주립대에 갔고, 저널리즘을 전공으로 했어요."

2010년 17살 때 아버지의 차고 안에서 연구를 거듭하며 휴대성이 높은 가상현실(VR) 기기를 만든 팔머 럭키는 유로게이머라는 이름의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1992년 미국 태생인 팔머는 페이스북으로부터 23억달러(2조6000억원)에 인수된 VR 제조사 오큘러스의 공동 창업자다. 그는 '이상한' 천재도 아니고, 틀에 박힌 괴상한 발명가도 아니고 은둔형의 사람도 아니다. 대학 이전까지 권위 있는 기관에서 배우지도 않았다.

어찌 보면 평범하기 그지없는 젊은이가 어떻게 VR이라는 새 시대를 여는 신기술을 발명했을까? 그 해답은 스마트폰에 있다. 애플이 2007년 1월9일 처음 선보인 스마트폰은 수많은 대중을 타깃으로 제품을 생산했고 대중화에 성공했다. 이에 따라 중력감지 장치 등 이전까지 가격이 비쌌던 주요 부품들을 손쉽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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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VR은 오래된 기술이다. 단지 휴대성을 확보하기 위한 부품 가격의 장벽에 가로막혀 있었을 뿐이다. 럭키는 스마트폰의 기술을 VR 기기에 적용했고, 이전까지 난제로 꼽혔던 휴대성을 해결하면서 단숨에 새로운 시장을 열어냈다. 이전까지 전문가들이 생각지 못했던 '융합'을 평범한 개인이 성공해낸 셈이다.

평범한 개인이 전문가를 넘어설 수 있는 시대다. 스마트폰이 만들어 놓은 새 산업 혁명의 시대가 바로 4차 산업혁명과 함께 도래했다. 한국에서 유독 인기를 끌고 있는 용어인 4차 산업혁명은 세계경제포럼의 클라우스 슈밥 회장이 제안했던 내용을 바탕으로 한다. 슈밥 회장은 자신의 책 '4차 산업혁명'에서 인공지능(AI)과 유전학, 나노 기술, 3차원(3D) 프린팅 등의 새로운 기술이 서로 증폭시키면서 만들어내는 생산 체제라고 설명한다.

이 같은 해석이 복잡하고 어려웠는지, 많은 이들은 그저 AI와 3D 프린팅 등 첨단기술과 관련해 4차 산업혁명이란 단어를 빌려 쓰는 때가 많다. 지난해 구글의 '알파고'가 놀라운 바둑 실력을 뽐내며 AI의 위력을 보여주며 4차 산업혁명의 개념이 한국에 도입되었던 영향도 있어 보인다.

4차 산업혁명은 외국에서는 전혀 사용하지 않는 말이라는 비아냥도 많이 듣지만, 의미가 없는 용어는 아니며 오히려 중요한 시사점을 내포한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개념 아래에서 이뤄지는 대다수의 기술에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개인'이다. 팔머 럭키 같은 평범한 개인도 얼마든지 혁신의 대열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게 바로 4차 산업혁명의 시대다. 3차 산업혁명이 인터넷과 정보통신을 기반으로 하는 정보혁명이었다면 4차 산업혁명은 애플의 스마트폰 등장 후 나타난 개인의 시대를 말한다.

평범했던 이들은 스마트폰이라는 놀라운 컴퓨팅 파워를 가진 기기를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언제든지 인터넷으로 연결된 세상의 전면에 나설 수 있게 되었다. 이들 새로운 대중의 등장은 놀라운 혁신을 가능케 했다. 뉴욕대 언론대학원 교수인 클레이 셔키는 저서 '많아지면 달라진다'에서 대중의 시간을 모두 더하며 "아무 대가 없이 창조하고 공유하는 새로운 대중과 그들이 가진 1조 시간의 놀라운 변화"라고 강조했다.

1조 시간을 가진 대중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 어떤 혁신이든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 바로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요소다. 3D 프린터도 바로 대중이 만들어낸 혁신의 한 사례다. 사실 3D 프린팅은 1984년에 개발된 오래된 기술이다. 제품 모형이나 시제품 제작을 위한 도구로 꾸준히 사용돼 왔지만 그 외의 용도로 쓸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2004년부터 시작된 '렙랩 프로젝트'와 2009년의 원료압출(ME) 방식의 특허권 만료는 새 시도를 배양하는 토대가 됐다. 그러다 보니 각종 개인용 제품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최근 미국에서 뜨고 있는 '메이커봇'이나 네덜란드의 '얼티메이커', 국내의 '오픈크리에이터즈' 모두 렙랩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개인용 3D프린터를 만들어 상품으로 내놓은 사례들이다.

3D 프린터와 무관했던 여러 업계에서도 이 기술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복잡한 구조를 쉽게 만들 수 있는 3D 프린터의 특성을 활용해 놀라울 정도로 가벼운 구조체를 개발해 가벼운 오토바이를 만드는 등 이전까지와 다른 제품이 나타났고, 의료계에서는 개개인의 필요를 충족시켜주는 맞춤형 상품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지구에서 건설 자재를 싣고 가는 문제를 두고 고민하던 우주 탐사 분야에서는 달이나 화성의 원료를 그대로 이용해 우주기지를 건설하는 시도가 시작됐다.

클레이 셔키가 주장하듯 이전까지 전문가만 접할 수 있던 기술을 평범한 개인도 쉽게 활용할 수 있게 되면서 생각지 못했던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게 된 사례이다. 실제 제품으로 구현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다는 것 자체가 혁신의 토양이다. 소수의 전문가보다 수많은 이들의 아이디어가 더 뛰어날 때가 많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태양 입자와 관련해 35년간 풀지 못했던 난제를 대중에게 공개해 해결했었다. 그 문제를 해결한 이는 천체물리학계 인물이 아니라 은퇴한 무선주파수 기술자였다. 구글도 기계학습을 위한 오픈소스 라이브러리인 '텐서플로우'를 대중에 공개했다. 그 이유는 "텐서플로우가 잠재적으로 선호하는 딥 러닝(심화 학습) 프레임 워크가 되면 앞으로 AI 산업의 흐름을 선도할 수 있으리라는 계산"(인공지능학회) 때문이다. 전문가가 생각지 못한 방식으로 만들어내는 개인의 혁신을 그대로 자신들의 플랫폼 안에 포함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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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프리카에서 찾아볼 수 있는 에어비앤비 리스팅(숙소)의 모습. 특정 지역의 주민만 알고 있는 훌륭한 자원이 플랫폼에 올라오면서 전세계 누구든 접근할 수 있게 됐다.

에어비앤비 역시 대중이 가진 혁신에 기대 사업을 펼치고 있다. 수많은 개인은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과 공간의 매력에 대해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것을 누군가에게 소개할 기회가 없던 이들은 에어비앤비라는 플랫폼을 만나 세상에 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미국 말리부의 한 호스트는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느낄 수 있는 곳에서 캠핑카를 숙소로 이용할 수 있도록 새로운 기회를 만들었다. 기존의 전통적인 숙박업에서는 생각지 못했던 혁신적 서비스가 지역 기반의 개인에 의해 탄생한 것이다.

에어비앤비는 그래서 자신을 설명하는 문구를 이렇게 내놓는다.

"Magical travel powered by people."(시민들이 만들어낸 마법 같은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