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2016년 04월 12일 13시 24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4월 13일 14시 12분 KST

소수자를 배신하는 정치에 지친 나의 선택

나는 녹색당원이다. 녹색당은 2012년에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겪은 사람들이 경각심을 느껴 한국에서도 창당하였다. 전 세계 90여개의 국가에 녹색당이 있다. 그런데 내가 녹색당을 지지하고 당원이 된 것은 조금 특별한 의미가 있다.

나의 기억 속에 짜릿했던 선거의 경험은, 2002년 대통령 선거였다. 당시 나는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자였다. 친구와 밤새 개표 결과를 지켜보면서 비주류 출신의 정치인이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것을 응원하였다. 그리고 두 번째 기억은, 2011년 서울특별시장 보궐선거였다. 평생 정치인이 되지 않을 것 같았던 박원순 변호사가 출마한 것이다. 나는 선거당일까지 주변 사람들에게 투표를 독려하던 박원순의 열렬한 지지자였다.

그런데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이후에 MB정부와 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반동(백래쉬)이 시작되었다. 그 반동은 내 삶에 직격탄으로 날라 왔다. 노무현 대통령이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며 공약했던 차별금지법에 대하여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은 "반대한다"고 공표하였다. 나아가 "동성애법, 이것은 자연의 섭리와 하느님의 섭리를 어긋나게 하는 법이다"라고 덧붙였다.

더민주당 지지자들은 정권교체를 위해, 새누리당을 심판하기 위해 더민주당에 투표해달라고 호소한다. 그런데 그동안 열심히 더민주당에게 투표해왔지만 나에게 돌아온 것은 배신이었다. 지금은 더민주당과 국민의 당으로 갈라진 새정치민주연합의 김한길, 최원식 의원은 2013년 19대 국회에서 차별금지법을 철회했으며, 2007년 참여정부 하에서 법무부는 차별금지법안 차별금지사유에서 "성적 지향"을 삭제했다. 그리고 2014년 더불어민주당의 박원순 서울시장은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는다"면서 서울시민이 만든 서울시민인권헌장을 폐기했고, 지금까지 서울시민인권헌장 제정을 미루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 당은 새누리당과 마찬가지로 이번 20대 총선에서도 성소수자 인권이나 차별금지법 정책에 대한 공개적인 질의조차 묵살하였다. 오히려 이번 총선에서 성소수자 이슈는 상대방 후보에 대한 공격의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경기 용인정 유세장에서 표창원 후보를 겨냥해 "동성애는 인륜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했다. 표창원 후보는 자신에 대한 공격을 피하기 위해 "성경에서 금지하는 동성애가 이 사회에 확산되는 것은 반대한다"는 잘못된 해명을 내놨다. 수 년 동안 성소수자 인권운동을 해왔던 한 사람으로서 참담함을 느낀다.

2016-04-12-1460444253-4185566-.png

표창원 후보는 정치인으로 나서기 전에는 성소수자 인권 지지영상에서 "일제시대 때 한국인임을 부끄러워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내가 한국인인 것, 미국사회에서 흑인인 것 이것은 결코 부끄러워 할 것은 아니다. 사람이 타고난 것은 부끄러움의 대상은 아니고 혐오의 대상이 되어서도 안 된다. 자신있게 자랑스럽게 자신의 모습과 정체성을 펼쳐나가길 바란다"고 했었다. 이 말을 표창원 후보에게 돌려드리고 싶다. "표창원 후보님,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정치인이 되겠다고 결심하셨다면 자신의 모습과 정체성에 맞는 정치를 펼치시길 바랍니다. '전사의 용맹함'이 성소수자 혐오자들 앞에서만 사라지나요?"

그런데 나는 왜 다시 정치에, 녹색당 정당 활동에 뛰어들었나

나의 고민은 사실 2014년 서울시교육감 선거 때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나는 진보교육감 후보 조희연 교육감을 지지했다. 그런데 세상에 알리지 않은 '굴욕사건'이 성소수자 단체들과 진보교육감 후보 선본이 정책협약을 체결하는 날 있었다. 결과적으로 조희연 교육감은 바로 다음날 우리들에게 정중하게 사과하고 잘못된 상황을 바로잡았지만, 그 현장에 있었던 성소수자 활동가로서 느낀 당혹감과 모멸감은 절대 쉽게 잊혀지는 것이 아니다.

당시 상황은 이렇다. 교육감 선거를 며칠 앞두고 있던 2014년 5월 30일 12시, 나는 성소수활동가들과 함께 예정된 정책협약식에 참석했다. 그런데 갑자기 조희연 후보 선본관계자가 우리에게 "죄송하다. 정책협약을 하는 것은 좋은데, 지금 상황에서 후보가 공격을 받게 되면 어려우니 정책협약을 했다는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말아 달라."고 했다.순간 너무나 당혹스러웠고, 불쾌했다. '이런 무례한 요구를 들어주면서까지 정책협약을 체결해야하는가.' 성소수자 활동가로서 너무나 모멸적인 상황이었지만 나는 다른 활동가들을 설득해서 정책협약을 체결했다. 나는 그 누구보다 진보교육감의 당선을 바랬고, 교육정책 안에서 소외된 성소수자 청소년들에 대한 정책이 실현되기 간절히 바랬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 학교폭력으로 자살한 청소년 성소수자의 사건을 맡고 있었다. 죽어서도 이름과 얼굴을 밝힐 수 없는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있다는 것을 교육감 후보가 알길 바랬다. 하지만 당시 이 사건은 나에게도, 함께 있었던 다른 성소수자 활동가들에게 깊은 상처로 남아 있다.

성소수자 이슈는 이제 한국 정치의 선거 국면에서 공격의 수단이 되고 있다. 이런 모순적인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대형교회로 조직화되어 있는 성소수자 차별주의자들의 협박을 다수결 원칙이 지배하는 선거 국면에서 어떻게 현실적으로 맞설 수 있을까. 이런 상황에서 성소수자 인권을 앞장서서 대변해줄 수 있는 정치인, 정당이 있을까. 성소수자 활동가로서 나는 이번 총선에서 '소수자 혐오에 저항하는 정치'를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을지가 중요한 화두였다.

나는 녹색당원으로서 정당 활동에 뛰어들기로 했다. 녹색당은 전 세계 어디에서나 성소수자의 인권, 평등, 정의를 지지하는 정당이다. 2002년에 19세의 나이로 녹색당 소속 비례대표로 독일연방의회 의원으로 활동했던 안나 뤼어만은 "녹색정치란 자유, 그리고 모든 인간을 위한 정의를 목표로 한다."며 젋고 늙음, 여성 남성을 떠나서 모든 인간이 일상 생활 뿐만 아니라 정치에서도 균등한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호소하며 한국 녹색당을 응원하고 있다.

2016-04-12-1460444320-875948-.png

녹색당은 이번 총선에서 어느 정당보다도 성소수자의 인권을 앞장서서 주장하고 공약하고 있다. 녹색당 창당일인 3월 4일에 소수자 인권과 존엄의 편에 당당히 그리고 선두에 서겠다는 약속을 하며, 기자회견을 통해 20대 총선에서 '동성결혼 법제화'를 포함한 성소수자 공약을 공식발표했다.

녹색당의 비례대표 신지예 후보는 제20대 비례대표 방송토론회 생방송에서, "우리 사횡에 혐오가 너무 만연하다. 지금 이 토론회에도 인권의식 없이 차별적 정책을 내놓는 정당들이 자리해 있다. 기득권정당들도 소수자들을 위한 발언과 정책을 발의하지 않는다. 녹색당은 불평등 사회에서 평등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하여 여성이라고, 장애인이라고, 성소수자라고 차별받지 않도록 차별금지법을 제정할 것이다. 그리고 남녀평등사회를 넘어 성평등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그 동안 무시당했던 동성애자, 바이섹슈얼, 인터섹스, 트랜스젠더를 위한 정책과 동성결혼을 법제화 하겠다."고 당당히 밝혔다. 국회의원 선거 후보 방송토론회에서 "동성애자, 바이섹슈얼, 인터섹스, 트랜스젠더"를 하나하나 호명해준 첫 정치인이다.

그리고 녹색당은 공약뿐만 아니라, 녹색당이 만들고 싶어하는 사회를 녹색당 안에서부터 실현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정당이다. 성평등을 위하여 당대표 등 주요당직을 여남동수제도로 채택하고 있으며, 여성 정책이나 성소수자 정책을 중요 정책에서 소외시키지 않는다. 그래서 여성당원이 남성당원 보다 유일하게 많은 정당이다.

녹색당은 모든 국회의원 후보들이 성소수자 유권자운동 '레인보우보트(RainbowVote)'가 제안한 '평등을 위한 한 표, 레인보우유권자 선언'에 참여하였으며, 모두 레인보우보트 버튼을 가슴에 달고 선거운동을 하였다.

2016-04-12-1460444383-3415388-.png

내가 녹색당을 지지하는 이유는, 단순히 녹색당이 성소수자 인권을 앞장서서 공약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나는 9년간 동거한 애인이 있는 동성애자이기도 하지만,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고, 여성이기도 하고, 비영리단체의 직원이기도 하며, 영리활동을 하지 않는 인권활동가들을 친구들로 뒀고, 미세먼지가 가득한 도시 속에서 살아야 하는 시민이기도 하다. 불평등한 한국사회, 빈곤과 혐오가 만연한 사회, 생명보다 돈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에서, 내가 생각하기에 최선의 대안은 녹색당이다. 녹색당은 인권정책 뿐만 아니라 기본소득과 탈핵, 동물권을 공약하고 있다. 10년 동안 이 나라의 국민이 아니었다는 밀양주민과 정치에서 늘 소외된 성소수자인 나는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녹색당처럼 소수정당이 무슨 힘이 있냐고 묻는다. 녹색당은 독일 녹색당이 했던 것처럼 우경화된 한국의 정치 지형에서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할 것이다.

투표용지는 두 장이다. 하나는 지역구에, 하나는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뽑는 정당투표용지다. 내일 4월 13일,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정당투표는 '소수자 혐오에 저항하는 정당'에게 투표해 주시길, 소수자 혐오정치에 지친 여러분께 간절히 호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