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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29일 11시 16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2월 29일 14시 12분 KST

화났을 때 무엇을 먼저 해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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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상담한 중년 부부의 이야기다. 최근 며칠 동안 아내가 자기에게 말을 걸지 않아 남편은 이상히 여기고 있었다. 그뿐 아니었다. 전에는 애들을 재우고 안방으로 와서 함께 자던 아내가 애들을 재우고 안방으로 오지 않았다. 어느 아침, 아내가 안방으로 와서 대뜸 남편에게 한마디 했다. 남편이 자기가 힘든 것을 제대로 공감해주지 않고 건성으로만 듣고 넘긴다는 말이었다. 남편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어이가 없었다. 자기는 아내를 사랑하고 있고, 그래서 아내가 힘든 일이 있으면 나름 열심히 들어주고 위로해 주려고 애썼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순간 아내에 대한 서운함이 밀려오며 뒷골이 당기는 경미한 통증을 느꼈다.

소중한 사람의 고통을 나 몰라라 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남편도 아내의 고통에 같이 마음이 아팠고 누구보다도 아내를 돕고 싶었다. 그렇다면 부인이 힘들다고 했을 때 남편에게는 뭐가 문제였을까? 남편은 아내의 얘기를 듣고 곰곰이 자신을 돌아보았다. 아내가 힘들어하는 얘기를 할 때 귀로는 듣고 있었지만 마음으로는 그렇지 않았던 자신의 모습이 스물스물 떠올랐다. "아니 또야. 뭐 그런 걸 가지고 속상해해. 나 같으면 그렇게 힘들어하지 않을 텐데... 그래 지금은 아내 얘기를 열심히 들어주고 아내의 속상한 마음을 알아줘야해. 안 그러면 나중에 책 잡혀. 비슷한 일로 반복해서 아내가 속상해 하는 걸로 봐서는 분명 아내에게 문제가 있어..." 이런 생각들은 생각으로 그치지 않고 성가심 비슷한 짜증도 느끼게 했다. 맞다. 남편은 아내가 힘들다고 했을 때 속으로는 가볍게나마 화가 났던 것이다. "아니 또야" 이런 남편의 첫 반응에서도 남편이 화가 났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자신의 속마음을 상담을 통해 엿본 남편은 부인을 탓하느라 부인의 아픔을 제대로 공감해주지 못한 자신의 모습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그런 자신의 모습은 여지없이 아내에게 인지가 되었고 아내는 며칠 동안 남편에 대한 실망과 서운함으로 그렇게 남편과 거리두기를 했던 것이다.

이 사례에서처럼 누군가를 탓하게 되면 화가 나게 마련이다. 그런 화는 소중한 사람에 대한 공감 채널을 막아버린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취약함을 살피는 능력도 위축시켜 버린다. '화'라는 책을 쓴 틱낫한 스님은 화가 났을 때는 남을 탓하기에 앞서 울고 있는 애기를 살피듯이 먼저 자신을 살피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했다. '자신을 살피는 것' 이것이 화가 났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하는 대처다. 내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 왜 화가 났는지, 어떤 충동을 느끼는지, 끝으로 가장 놓치기 쉬운 부분이기도 한 좌절된 자신의 욕구를 먼저 스스로가 알아주어야 한다. 남편은 뒷골이 당기는 경미한 통증, 아내를 탓하고 싶은 마음, 아내와 더 큰 갈등을 피하고 싶다는 생각, 그리고 아내가 속상하지 않고 편히 생활하기를 바라고 그래서 자신과 가족 모두 행복 하고 싶은 마음 등을 상담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화가 나는 순간 나의 내외적 경험(신체 및 생리적 변화, 감정, 생각, 충동, 바람)에 대한 인식을 명확히 하는 것은 분노유발 상황에서 행동 대처에 앞서 반드시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하는 내적 대처 과정이다. 분노유발 상황에서의 효율적인 대처를 떠올리면 흔히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초점을 둔다. 물론 그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행동 대처가 문제해결적이고 건설적이기 위해서는 분노유발 상황에서의 즉각적인 내적 경험을 명료화하는 내적 대처 과정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이 과정이 생략되고서는 건설적인 대처행동이 가능할 수 없다.

남편은 아내가 힘들다고 했을 때 사실은 아내를 탓하고 아내에게 살짝 화가 났었으며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아내의 얘기를 건성으로 들었다는 것을 상담 중에 알게 되었다. 남편은 아내가 힘들다고 하면 그 얘기를 진정으로 경청하기 보다는 심리적으로는 회피하는 태도를 흔히 보이고 있었다. 남편은 왜 그랬을까? "아내가 힘들어하는 것을 보면 저도 속이 많이 상하고 답답합니다. 제가 속상하니까 그걸 빨리 덜고 싶었던 거 같습니다." 이게 남편의 대답이었다. 이 말이 나는 아주 솔직하게 들렸다. 사랑하는 아내가 그렇게 힘들어하는데 어떻게 그렇게 이기적일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 수 있지만, 나는 남편의 부끄러운 솔직한 고백을 들을 수 있어 좋았고 그런 남편의 모습이 두 부부 사이를 더 빨리 회복시켜 줄 거라 믿게 했다.

화가 났을 때는 우는 애기를 돌보듯이 자신을 살피는 내적 대처가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다음은 아무리 배가 고파도 식혀 먹어야 하는 뜨거운 감자처럼 화로 인해 흥분된 상태를 진정시켜야 한다. 그 다음이 문제해결을 위한 행동 대처다. 화가 났을 때 역기능적인 대처를 하는 가장 흔한 이유는 이 순서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살피고 흥분을 가라앉히기도 전에 문제해결부터 하려고 성급한 행동 대처를 하는데, 그렇게 되면 방어적이거나 논쟁적인 대처를 하게 되어서 소중한 사람과의 관계 갈등은 흔히 더 깊어지게 마련이다. 문제해결과 반대되는 소극적인 행동 대처인 회피는 효율적인 문제해결을 위해서 잠시 시간을 갖는 타임아웃과는 다르다. 회피는 문제해결을 대책 없이 피하는 것이다. 회피는 문제를 쌓아두고 속에서 곪아터지도록 내버려 두는 대표적인 미성숙한 분노 대처 행동이다. 분노상황에서 회피를 많이 하는 사람일수록 적대감은 더 높았고 행복감 수준은 낮았다. 부부사이에 갈등이 있을 때 한쪽이 계속해서 회피하면 다른 쪽은 무력감과 분노감의 소용돌이를 벗어나기 힘들어 부부갈등은 점점 더 악화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자기 이익을 위한 세상살이를 하는 데는 많은 지혜를 발휘하면서도 화가 났을 때는 그 지혜로움이 자취를 감추는 경우가 많다. 화가 났을 때도 그 지혜를 써 먹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 지혜는 다름 아닌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다.


* 이 글은 한국심리학회 웹진 PSY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