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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4월 18일 06시 44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4월 19일 14시 12분 KST

성소수자와 성노동자 인권이 함께 가는 이유

상당수의 활동가들과 자선 단체는 LGBT 중 성 노동을 하게 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속 편하게 무시해 버리곤 한다. 성 노동에 대한 논의는 아직도 훈계조로 이뤄지며, LGBT 커뮤니티는 결혼 등의 권리를 얻기 위해 LGBT 정체성을 점잖게 보이게 하려 해왔다.

최근 캠페인들 속의 LGBT 세계의 이미지는 오랫동안 사귀고 있는 시스젠더 게이들이었고, 아이를 키우는 경우도 많았다. 퀴어들을 이성애적으로, 보수적이고 편협한 사람들의 덕목에 부합하는 것으로 보여준다는 건 1차원적 발상이다. 그런 전략은 LGBT 정체성의 인간성을 인식하는데 도움이 거의 되지 않으며 많은 사람들을 배제시킨다.

홈리스 청년 중 4분의 1 이상이 LGBT이며, 더 많은 수는 빈곤 속에 살거나 고용의 차별을 받는다. 트랜스젠더의 경우가 특히 심하다. 사회의 편견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부족해서, LGBT, 특히 트랜스젠더는 소득을 성 노동에 의지해야 할 가능성이 더 높다.

성 노동을 범죄화하자는 주장은 성 노동을 금지하는 법은 가장 취약한 사람들에게 더 벌을 주자는 의미라는 기본적 사실을 무시하고 있다. 그런 법은 LGBT가 경험할 위험이 더 큰 빈곤과 차별과 같은 기본적 이슈를 다루지 않는다. 학대와 착취를 막지 못하며, 성 노동을 지하로 몰고 가서 성 노동자들이 노동 중에 피해를 입어도 도움을 받기가 굉장히 어려워질 뿐이다.

선택지가 제한되어 있는 빈곤한 LGBT는 소득을 올리는 한 가지 방법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체포될 위험만 생기게 된다.

이념적으로 두 운동은 크게 떨어져 있지 않다. LGBT 인권 요구의 핵심은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삶과 몸에 대해 자기결정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누구든 자신이 원하는 사람과 잘 수 있어야 하며, 그건 관계를 맺는 사람들만의 일이지 정부나 편협한 사람들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성 노동자들을 위한 싸움의 핵심에도 똑같은 생각이 있다. 왜 그들이 똑같은 자유를 허락 받지 못하는가? 그들이 자신이 선택한 사람과 섹스하는 것은 왜 허용되지 않는가?

사람들이 성 관계를 맺는 이유는 굉장히 다양하다.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동화는 드물다. 즐겁기 위해 할 때도 있지만, 상당수는 일종의 생존 섹스를 한다. 길거리에 나앉지 않기 위해, 혼자서 엄청난 빚을 짊어지지 않기 위해 할 때도 있다. 파트너를 입을 다물게 하기 위해 섹스를 하는 사람도 많다. 이유를 꼽자면 끝도 없고, 모든 이유는 다 정당하다. 유일하게 중요한 것은 섹스를 하는 두 사람이 서로 동의를 했느냐이고, 다른 모든 것은 그 누구도 내릴 권리가 없는 자의적 도덕적 판단이다.

성 노동과 LGBT 인권 전쟁은 우리 몸의 해방에 대한 것이다. LGBT 활동가들이 신체의 자기결정권을 위해 싸우지만 성 노동자들의 자기결정권은 부정하는 것은 쉽게 말해 위선적이다. 그리고 LGBT 커뮤니티 내에서 성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엄청난 수를 생각했을 때, 그건 많은 LGBT들을 저버리는 일이기도 하다.

누구와 섹스하기로 선택하는지에 대한 편견이 남아 있는 한 우리는 성적 자유를 얻지 못한 것이다. LGBT의 삶과 관계에 대한 편견을 지속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자유로워지고 싶다면 합의한 모든 섹스의 권리를 지지해야 한다. 성 노동자들을 보호하고 싶다면 그들의 말을 듣고 무엇이 효과적이고 그들을 안전하게 해줄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성 노동은 LGBT 정체성만큼이나 오래된 것이며 곧 없어질 형태의 거래가 아니다. 마약에 대한 전쟁처럼 헛된 일이기 때문에 선택은 자명하다. 가혹한 이념을 중시할지, 사람을 중시할지 선택해야 한다.

허핑턴포스트US의 Why LGBT and Sex Worker Rights Go Hand-In-Hand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