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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5월 19일 07시 23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5월 19일 14시 12분 KST

나쁘거나 착한, 스토리에 강한 미디어의 대약진

이름에 '죄악(Vice)'을 내걸은 바이스뉴스는 2013년 말 출범한 영상 뉴스 전문 채널이다. 매체는 주로 전쟁과 테러, 각종 정치적 억압과 군중봉기 등 국제적인 분쟁, 갈등 관련 뉴스를 집중적으로 보도한다. 2013년에는 루퍼트 머독의 폭스사가 모회사 지분의 5%를 사들인데 이어, 2014년에는 허스트미디어와 디즈니사가 공동으로 지분 10%를 무려 2억5,000만 달러에 구매했는데, 당시 바이스미디어의 가치를 워싱턴포스트의 5배 넘게 산정해 타 언론의 부러움을 샀다.

수많은 신생 매체가 명멸을 거듭하는 미국 미디어 시장에서 성공을 거둔 매체엔 특별한 점이 있기 마련이다. 최근에는 전쟁과 폭력, 갈등 소식을 주로 전하는 '나쁜' 매체 바이스뉴스(Vice News)와 사랑과 친절, 관용을 베푸는 사람 이야기를 전하는 '착한' 매체 스토리코어(StoryCorps)의 약진이 주목받고 있다.

전쟁, 테러 등 갈등 관련 뉴스를 주로 보도하는 바이스뉴스 홈페이지.

독특한 영상 앞세워 종횡무진

이름에 '죄악(Vice)'을 내걸은 바이스뉴스는 2013년 말 출범한 영상 뉴스 전문 채널이다. 매체는 주로 전쟁과 테러, 각종 정치적 억압과 군중봉기 등 국제적인 분쟁, 갈등 관련 뉴스를 집중적으로 보도한다. 초기화면 상단에 '경찰 구타' '보코하람' '이슬람국가(ISIS)' '우크라이나' 라는 소재를 눈에 잘 띄게끔 배치한 것은 매체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바이스뉴스의 동영상은 통상 10분, 길면 40분 정도로 기존 뉴스보다 호흡이 길다. 다큐멘터리와 뉴스의 중간이라고 할 수 있는데, 특히 바이스뉴스의 감각적이고 전개가 빠른 영상 편집은 상업 광고나 뮤직비디오를 연상케 할 정도로 독특하다.

이와 같은 매체의 특징은 바이스뉴스가 속한 모그룹 바이스미디어그룹이 패션과 음악, 기술 전문 매체를 보유했다는 점을 이해하면 풀린다. 20여 년 전 캐나다에서 문화 잡지로 시작한 바이스미디어그룹 안에서도 바이스뉴스는 포트폴리오의 핵심이다. 스털링 프로퍼 바이스뉴스 사장은 "뉴스는 충분히 돈이 된다"며 기존 매체가 젊은이들의 감각에 맞는 뉴스를 생산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2013년에는 루퍼트 머독의 폭스사가 모회사 지분의 5%를 사들인데 이어, 2014년에는 허스트미디어와 디즈니사가 공동으로 지분 10%를 무려 2억5,000만 달러에 구매했는데, 당시 바이스미디어의 가치를 워싱턴포스트의 5배 넘게 산정해 타 언론의 부러움을 샀다. 독특한 비전과 막강한 자금력이라는 두 개의 날개를 단 바이스뉴스는 세계를 종횡무진 누비고 있다. 전 세계 34개국에서 일하는 저널리스트가 100여 명이며, 이와 별도로 바이스뉴스에 동영상을 송고하는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도 1,200명에 이른다. 2014년에는 세계 최초로 이슬람국가(ISIS)의 허락을 받아 3주간 심층 취재를 하며 주목을 받았으며, 앞서 2013년에도 미국 농구선수 데니스 로드맨의 북한 방문 때 동행 보도를 하며 상업적 성공을 거둔 바 있다.

지난해 영국 옥스퍼드대 로이터 저널리즘 연구소가 발간한 보고서는 "세계 최고 공영방송인 BBC가 취재를 기획하는 동안 바이스뉴스는 이미 현장에서 취재를 마치고 돌아온다"며 기라성 같은 언론들도 탄탄한 자금력과 유연한 조직 문화를 가진 바이스뉴스의 급부상에 주목하고 있다고 전했다.

사랑과 가족 이야기를 주로 전하는 '착한' 미디어 스토리코어 홈페이지.

평범한 사람들의 '사랑과 가족' 이야기

바이스뉴스가 마약과 범죄, 폭력 등 자극적이고 '나쁜' 뉴스에 강점을 보이는 상업 매체라면, 평범한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공익 단체에 가까운 스토리코어는 이 정반대에 가까운 '착한' 미디어다. 라디오 프로듀서 출신인 데이비드 아이세이가 12년 전 설립한 스토리코어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특히 가족이나 친구 등 가까운 이들 사이의 대화를 유도한다. 단체 직원은 인터뷰 진행에 도움을 주고, 편집과 보존을 할 뿐 내용에는 개입하지 않는다. 인터뷰 참여자들은 편집 비용으로 50달러 기부할 것을 권유받고, 인터뷰 파일을 선물 받는다. 이들의 인터뷰는 편집되어 웹 사이트에 올라가고, 한 부는 세계 최대 도서관인 미국 의회 도서관에 보내져 역사의 일부가 된다.

언뜻 보면 특별할 것 없는 구술사프로젝트인 스토리코어에 날개를 달아준 것은 라디오와 팟캐스트라는 매체였다. 미국 공영 라디오 방송국 NPR은 스토리코어 인터뷰 중 하나를 선정해 방송했는데, 폭발적인 인기에 방송 빈도를 일주일에 1회로 늘렸다. 특히 최근에는 팟캐스트로 내려받는 이들이 늘어나며, 아이튠즈와 스티처, 사운드클라우드 등 주요 팟캐스트 사이트에서 정통 뉴스 매체가 부럽지 않은 조회수를 자랑한다.

스토리코어의 핵심 모티브는 사랑과 가족이다. 40년 넘게 하루도 빠지지 않고 부인에게 연서를 남긴 남편, 온몸에 화상을 입어 괴물이 된 남편 옆을 한결 같이 지키는 부인이 있다. 대학 기숙사에서 배를 곯아가며 젖먹이 딸을 몰래 키운 싱글대디가 있고, 성매매하며 키운 딸에게 과거를 털어놓는 싱글맘이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알려진 것과 달리 (창립자 아이세이의 책은 한국어로도 번역됐다) 스토리코어는 '착한 이야기'만을 전하는 매체가 아니다. 여자 옷을 입는 의상도착증 남편, 흑인이라는 이유로 구타당한 입양아들을 둔 백인 엄마의 이야기 등 미국 사회의 다양한 갈등과 모순이 드러나는 사연도 많다.

데이비드 아이세이는 지난해 말 미국의 지식형 강연 시리즈 테드(TED)가 그해 최고의 대중 지식인에게 수여하는 상을 수상했다. 그는 상금 100만 달러로 누구나 간편하게 자신의 사랑하는 사람들과 인터뷰할 수 있는 앱을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스토리코어에 참여하려면 뉴욕 등 4개 도시에 있는 녹음실을 방문해야 한다. 스토리코어는 개인들의 기부금과 공공자금(스토리코어의 인터뷰를 방송하는 NPR의 예산 일부는 미국 정부에서 나온다), 자선단체의 지원으로 운영된다.

'스토리코어' 창립자 데이브 아이세이. (연합뉴스)

콘텐츠에 집중, 플랫폼은 자유로워

얼핏 보면 매우 다른 것 같은 두 매체의 약진에는 공통분모가 적지 않다.

첫째, 내러티브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이다. 기존 언론들은 대부분 가장 중요한 메시지를 초기에 배치하고, 이후 관련 정보를 추가로 제공하는 역삼각형 문법에 충실하다. 이는 정보 전달에는 효율적이지만, 이야기를 읽는 맛이 떨어진다. 반면 바이스뉴스나 스토리코어는 이런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스토리'를 강조한다. 바이스뉴스의 40분짜리 동영상은 이슬람국가가 왜 약진했고, 해당 지역의 주민을 어떻게 억압하는지 보여준다. 스토리코어의 10분짜리 인터뷰는 트렌스젠더들에 대한 일상적 폭력을 생생히 전달한다. 시선 역시 "한편으론 이렇고, 다른 편으로는 이렇다"는 객관주의의 공식에서 벗어나 자유롭다.

둘째, 정보 전달 못지않게 감성을 충족하는 것도 언론의 영역일 수 있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감동받고, 분노하고, 위로받고 싶어 한다. 이를 영화나 음악, 소설에서만 충족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애초 오락과 풍자, 뉴스를 결합한 시사 코미디 '데일리 쇼'와 귀여운 고양이 동영상 등으로 유명한 버즈피드 등이 대성공을 거둔 미국에서 이런 흐름에 부응해 감동받고, 분노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매체들이 약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셋째, 전세살이를 두려워하지 않는 파트너십 전략이다. 바이스뉴스는 유튜브와 케이블 방송국 HBO 등 매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플랫폼에 콘텐츠를 제공한다. 자체 웹 사이트로 바이스뉴스를 접하는 이들은 몇 되지 않을 정도다. 스토리코어 역시 자체 웹 사이트보다 NPR, 팟캐스트 등 외부를 통해 접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자체 플랫폼에 대한 고집을 버리는 대신 특화한 콘텐츠의 내용에 집중한 결과 이들의 콘텐츠는 여러 플랫폼에서 성공을 거듭하고 있다.

넷째, 이런 매체의 약진은 신문과 텔레비전 뉴스 등 기존 매체에 깊은 고뇌를 안겨주고 있다. 시청자가 몇 안 되는데도 주의회나 법원 등 공익성이 높은 분야에 기자를 내보낼 수밖에 없는 기존 언론은 고정 비용이 많이 든다. 반면에 틈새 매체들은 강점을 보이는 분야에만 과감히 투자할 수 있고, 기존 언론의 문법을 무시하며 다양한 형식을 시도할 수 있어 젊은 독자와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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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Justin Ellis. (Jan. 7, 2014). Vice News wants to take documentary story-telling to hot spots around the globe. Nieman Lab.

Kelly Riordan. (2014). Accuracy, independence, and impartiality: How legacy media and digital natives approach standards in the digital age.

StoryCorps: About Us. http://storycorps.org/about/

* 이 글은 한국언론진흥재단<신문과 방송> 5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