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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4월 19일 14시 21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4월 20일 14시 12분 KST

아무도 내게 섹스를 가르친 적 없다

소녀, 소년을 만나다 00 | 아무도 내게 섹스를 가르친 적 없다.

아무도 내게 사랑을 가르쳐준 적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무도 내게 섹스를 가르친 적 없다. 우리는 중요한 무언가를 인생에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만난다' 어떤 우연한 사건처럼, 지나가는 길에 치우지 않으면 더 나아갈 수 없는 방해물처럼 인생의 어느 순간에 공중에서 떨어지는.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여타 일들처럼 섹스도 그랬다.

발가벗고 다른 인간을 만난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무방비하게, 어떤 몸을 만나, 눈 앞에 있는 그 살갗을 털을 냄새를 모양새를 손으로 코로 샅샅이 훑어 갖고 싶어 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신기한 일이다. 발가벗고 있을 때 우리는 각자 다른 반경 몇 미터, 보호구역 설정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그 보호막을 뚫고 서로 한 자리에 서, 아니 누울 수 있다는 것은 실로 모든 것을 내려놓은 것.

몸을 섞는 일의 희열. 그리고 아무리 격렬하게 물고 빨고 핥고, 방아깨비처럼 서로를 찧어대도 결국 '분리'될 수밖에 없는 두 존재의 허무함. 평생 채울 수도 없고, 채워지지도 않는 '결합'의 환상을 부추기기만 하고. 모텔에서는 왜 불안증이 도질까. 잠 못 들고 허무함만 배가되는 그런 반복적인 섹스의 순간들.

'그것', '그 짓', '야한 짓'

소녀였던 어느 날, 내 눈 앞에 갑작스레 상자 하나가 떨어졌다. 그 선물 포장을 풀 때까지는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게 무엇일지 실마리가 하나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나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누구나 섹스로 태어난다. 탄생의 기원에 대해 단 한 번도 질문하지 않았을 리 없다. 그러나 아무도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았지.

우리는 바비인형의 옷을 벗기며 노는 유아기를 거쳐, 마침내 섹스라는 단어라곤 없는 것 같은 우중충한 사춘기에 도달한다. 섹스라는 단어를 말하면 불에 데기라도 하는 양, '그것', '그 짓', 나아가면 '야한 짓' 정도로 쉬쉬하며 마음속에 각기 다른 환상을 품는 시기가 있었다.

내게 섹스에 대해 처음으로 힌트를 준 사람은 초등학교 2학년 때 가장 친했던 친구. 친구는 한 손으로 엄지와 검지를 모아 동그란 원을 만들고 다른 손으로 그 허공의 원을 쿡쿡 찔러대 관통하는 시늉을 했다. "우리 엄마가 아가는 이렇게 생긴대." 그 허공에서의 손짓이 첫 힌트였다.

친구네 집에서 친구네 엄마가 보는 주부 잡지를 즐겨보던 때가 초등학교 3학년. 란제리룩이란 지금도 그렇지만, 한 번 보기 시작하면 넋을 놓고 보게 된다. 사람이 가진 곡선은 묘하게 눈길을 끈다. 반짝반짝하고 아슬아슬한 무엇. 우리는 순전히 그것이 아름다워서 보았다. 그래도 누군가에게 그런 모습을 들켜선 안 된다고는 생각했던 것 같다. 우리는 '그런 것', '이상한 것'에 대해 말을 꺼내는 일을 곧 수치심으로 학습했다. 야한 것은 나쁜 것이라고.

초등학교 5학년쯤 되니 반에서 으레 성장 속도가 빠른 아이들이 눈에 띄기 마련이었다. 우리 학교는 수영 교육 모범학교였기 때문에 수영도 못하는 애들을 물에 집어넣고 교장이 배때지를 잡고 발버둥 치게 하는 짓을 꽤나 자주도 했다. 나는 아직 생리도 시작하지 않았지만 그 유치한 색색깔 수영모자를 쓰고 내가 내 몸을 제어할 수 없는 물속에서 허우적대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생리 중이라고 뻥을 쳤다. 그렇게 나란히 수영장 한편에 열 명 남짓 여자애들과 앉아있었다. 수영장을 가만히 둘러보면 몇몇 애들은 봉긋이 가슴 둔덕이 올라오고, 젖꼭지가 서있는데 '어린이'로서의 수영복밖에 없으니 그 모양이 수영복 밖으로 다 드러나 보였다. 가슴 캡이 내장된 수영복이 필요해지면서, 우리는 '부끄러움'을 알았다.

남자애들은 야동을 보기 시작하고, 6학년부터는 거무튀튀하게 수염도 나기 시작했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는 치마를 줄이지 말아야 하고, 틴트를 바르지 말아야 하며, 머리를 기르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선생님은 하복 위로 브라 끈이 빨강인지 검정인지 확인했고, 하복 안에 흰 나시티를 입어야 한다고, 다른 색은 정숙하지 못하다고 눈치를 줬다. 나는 누군가를 '꼬실 수 있는' 존재임을 깨달았다. 다른 사람들의 경계를 통해. 아슬아슬한 선이 있었다. 내가 내디뎌보지 못한 어딘가였다.

그 선을 넘기 시작한 친구들도 있었다. 틴트를 바르고, 교복을 줄이기 시작하고, 머리에 층을 내고, 그 세계로 건너갔다. 친구는 남자애네 집이 비는 오후 시간에 애들과 놀러 가서 술을 마신다고 했다. 그때쯤 여자아이들은 무거운 비밀을 서로에게 하나씩 털어놓았다. 사촌 오빠가 얼마 전에 자는데 나를 만지더라. 내가 사귀는 고등학교 오빠가 노래방에서 혀를 입에 넣더라. 두렵고, 또 궁금했다. 다른 사람의 혀를 무는 건 어떤 느낌일까. 청포묵을 큼직하게 썰어둔 느낌일까. 아니면 젤리 같을까? 새삼 혀에서 나는 냄새를 맡아보고 겨드랑이를 살펴보고 털을 한 가닥씩 족집게로 뽑게 되던 날들.

여고에선 소설을 읽었다. 따뜻하길 원해서 산 뽁뽁이를 하나씩 터트리듯이 사실 그때 우린 행복보다 불행을 원했다. 비극과 사랑. 내 인생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므로, 나는 소설을 읽었다. 친구는 여자친구와 다툰 이야기를, 메신저로 나눈 이야기를 우리에게 요모조모 점심시간마다 보고했고, 우리는 조금 지루한 감도 있었지만 매번 아주 심각한 일인 양 요란을 떨었다. 사랑에 파르르. 젖고 싶었다. 문제집은 너무 건조했다.

피노키오의 야한 코

고등학교 때 했던 성교육 시간이 기억난다. 웬일로 제대로 된 성교육을 했었네, 싶다. 보건 선생님과 교생 선생님이 들어왔는데, 보건 선생님이야 이 외강내유, 소떼 같은 여고생들을 상대하는데 익숙했지만 대학교 4학년쯤 되었을 교생 선생님은 그렇지 않았다. 그 날의 교육 내용은 콘돔 착용법이었다. 물론 여자끼리 할 때도 콘돔이 필요하다는 것은 알려주지 않았지만, 그런 건 교과서에 없어도 우리끼리 이미 다 알고 있었다. 그 교실에 페니스를 가진 사람이 딱히 없었으므로, 피노키오의 코처럼 생긴 나무 모형을 이용했는데, 교생 선생님이 손을 덜덜 떨었던 것이 기억난다. 우리는 바나나와 콘돔을 하나씩 받았다. 떨기는커녕 콘돔으로 풍선도 불고 콘돔 씌웠던 바나나도 쉬는 시간에 까먹고.

우리는 '다 아는 소리를 하고 있어!'라고 으스대느라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실제로 야한 짓을 딱히 해본 적이 없으니 그렇게 당당했던 것 같기도 하다. 쫀쫀한 비닐을 문고리에 씌운들 무엇이 야하겠나. 우리는 문고리만 붙잡고 살았기 때문에 뾰족 튀어나온 페니스 나무모형을 보고 부끄러워하는 선생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모든 일은 소녀가 소년을 만나는 그때 일어난다. 나는 그 나무 모형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게 되었다. 피노키오 코가 자라났다는 이야기만 들어도 부끄러워지던 날의 시작. 몇 가지 진실과, 몇 가지의 거짓으로 써 내려가겠다. 이것은 소녀였던 나의, 사랑의 기록이다.


모든 일은 소녀가 소년을 만나는 그때 일어납니다. 몇 가지 진실과, 몇 가지의 거짓으로 써 내려가겠습니다. 이것은 사랑의 기록. <소녀,소년을 만나다>는 시리즈로 연재됩니다. 연재의 다른 글은 필자의 블로그 페이지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필자의 브런치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