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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9월 23일 13시 10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9월 23일 14시 12분 KST

맛의 방주 | 지구를 먹여 살리는 길

3년간 무려 3백만명을 굶어 죽게한 감자 곰팡이병

3년간 무려 3백만 명 이상이 굶어 죽는 대참사가 일어나고,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먹고 살기 위해 미국으로 위험한 항해를 감수하게 만든 이 끔찍한 사건은 요즘 외신에 거론되는 시리아 난민들이나 북한의 이야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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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5년부터 감자 곰팡이병으로 아일랜드에 대기근이 발생하면서 3년간 무려 3백만명 이상의 아사자가 발생했고 수백만명이 미국으로 험난한 뱃길을 항해애야 했다. 먹고 살기 위해서.

1845년부터 시작된 아일랜드의 대기근 이야기다. 아일랜드의 대표적인 음식이 '칩스 앤 피쉬(Chip & Fish)'인 것처럼 감자는 아일랜드의 가장 중요하고 대중적인 식량인데 감자 곰팡이 병이 돌기 시작하면서 순식간에 전국으로 퍼졌고 1845년에 와서는 3년간 거의 수확을 할 수 없을 만큼 대 흉작을 초래했다. 이유는 전국적으로 수확이 많이 되는 한 종류의 감자만을 농부들이 재배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감자는 원래 남미의 안데스산맥 주변이 원산지인데, 유럽 국가들이 아메리카 대륙을 침탈하면서 옥수수, 감자 등 많은 품목의 식량 작물을 들여와 아일랜드 사람들의 주식이 감자로 바뀌기 시작했다. 다양한 감자 종자 중 수확이 많이 나고 모양 좋은 단일 종자만 심게 되면서 곰팡이 병이 퍼지자 이 같은 결과가 발생한 것이다.

현재는 전 세계적으로 바나나가 곧 멸종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돌 정도로 바나나 뿌리에 번지는 곰팡이 병 때문에 플렌테이션 농장들이 전전긍긍하고 있다고 한다. 이 또한 다수확 개량종 한두 가지만 재배하는 방식 탓에 병충해 전염에 취약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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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안데스산맥이 원산지인 다양한 감자, 2천여종이 있으나 현재 수종만이 재배되고 있다.

1년에 27000여종, 하루 평균 76종의 다양한 생물종이 사라져

세계적으로 1년에 무려 2만7천여 종의 다양한 농산물, 동물, 임산물, 해산물이 사라지고 있다. 하루 평균 76종이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아니 오히려 더 심각하다고 봐야 한다. 주식인 쌀의 종류는 일제시대까지도 전국적으로 2천7백여 종이 재배된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전국적으로 주로 재배되고 있는 종자는 10종 안팎이다. 그나마도 우리나라 재래종이 아닌 일본의 아끼바리나 고시히까리 등 밥맛이 좋다는 종자를 개량한 품종들이다. 여주, 이천쌀, 강화쌀, 김제쌀 상표는 달라도 품종은 천편일률이다. 그러니 맛의 차이를 느낄 수가 없는 게 당연하다. 사과도 부사와 금왕 정도만 재배되고 국광, 홍옥 등은 거의 재배되지 않는다. 배도 신고 외에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부사, 신고는 일본의 개량종들이다. 이런 현상은 점점 더 심각해 질 것이다. 소비자나 유통업자들이 모양 좋고 수확성 좋은 품종들만 사가기 때문에 농민들은 이런 품종만을 재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양한 맛, 우리의 전통적인 음식문화 잃게 돼

도시 소비자들에게 삼나물, 어름을 물어보면 맛은 고사하고 이름도 처음 듣는다고 답한다. 심지어 젊은 사람들은 아욱, 근대, 머위 등도 거의 모른다. 맛 보려는 시도도 거의 안 하는 것 같다. 식생활 문화가 패스트푸드, 정크푸드에 길들여지다 보니 이러한 식재료들에 관심을 가질 기회가 없는 게 당연하다.

소비자들의 이런 식습관에 맞춰 유통회사들은 소비자 기호에 맞는 품목만 선택해 구매하게 되고, 농민들은 인기 없는 작물의 재배를 기피하게 되고, 결국 그 종자는 잊히고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다양한 입맛을 잃는다는 건 편식으로 이어지고, 영양 불균형으로 다양한 병의 원인이 된다. 그래서 우리나라 옛날 어머니들은 밥이 보약이고, 골고루 먹어야 건강해진다고 늘 강조하셨다.

맛의 방주, 인류의 식량위기를 대비한 생명 프로젝트

이탈리아 브라시에 있는 슬로푸드 국제본부는 2008년부터 소멸되고 사라져갈 위기에 처한 종자, 농축임산물, 음식, 요리법 등을 보존하기 위해 '맛의 방주(Ark of Taste)'라는 프로젝트를 시행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현재까지 2천7백여 개, 맛의 방주가 등록돼 있다. 슬로푸드운동을 처음 시작한 이태리가 가장 많은 품목을 등재했고 우리나라는 2013년 처음 8가지를 시작으로 현재 43가지를 등재한 상태다.

맛의 방주를 등재하려면 몇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하는데 첫 번째가 지역성과 역사성, 그리고 소멸위기에 처한 희소성이 있어야 한다.

즉, 그 지역에서 오래 전부터 농산물 자체로든, 요리로든 사람들이 먹던 것인데 더 이상 많은 사람들이 먹지 않고 재배하지 않아 사라져 갈 위기에 처한 것들을 슬로푸드 국제본부에 기록해 놓고 보호할 방법을 찾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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칡소. (한겨레)

칡소, 연산오계, 섬말나리 등 한국의 맛의 방주

우리나라의 원래 소 종자는 이중섭의 그림에 나오는 호랑이 줄무늬가 있는 칡소다. 그러나 일제시대 일본 사람들이 칡소를 온순한 누렁소로 대체하고, 종자 개량을 시도해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우리가 등재하기 위해 2013년 조사할 당시 전국적으로 1천두 정도가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특히 울릉도에 4백여 마리가 사육되고 있었으나 지금은 늘어 1천5백두 정도가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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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섬말나리. (한겨레)

울릉도 섬말나리는 백합과로 뿌리를 밥에 넣거나 쪄서 양념장에 먹는데 맛은 감자나 고구마 혹은 밤 같다. 옛날에 식량이 귀할 때는 울릉도 사람들이 주식으로 많이 먹었지만 지금은 한귀숙씨가 산에서 채취해 집주변 텃밭에 기르며 보존하고 있다.

벼슬부터 뼈까지 새까만 논산시 연산면의 '오계'도 스스로 별명을 계모라고 부르는 이승숙씨가 6대째 보존하고 있는데, 병아리까지 2천여 마리가 있다. 연산의 오계는 다행히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보존 사육하는 경비 일부를 국가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는 국토가 산이 많고 삼면이 바다로 둘러 싸여 있는 데다 서해에는 개펄이 넓고 다양한 어족이 서식하고 있다. 또 4계절이 뚜렷해 다양한 산나물, 임산물이 나는 등 자연생태계의 보고라 할 수 있다. 음식문화도 산해진미라 할 수 있는 다양한 맛과 식품이 발달해 왔다. 그러나 서구 문명이 유입되고 개발시대를 겪으며 패스트푸드, 정크푸드가 넘쳐나면서 우리의 다양한 맛의 보고가 급격히 파괴되고 있다. 그나마 슬로푸드운동이 확산되면서 이렇게 사라져 가는 보물들을 다시 발굴하고 지키기 위한 운동이 펼쳐지는 모습은 정말 아름답기까지 하다. 보다 많은 사람들의 참여와 관심이 필요한 때다.

글 | 팔당촌놈 김병수 (슬로푸드 국제본부 이사, pdkbs@lyco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