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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06일 09시 17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12월 07일 14시 12분 KST

한국 촛불집회의 '노란 리본'에서 배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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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서 촛불집회에 참가해서

박근혜 하야를 외치는 목소리가 땅을 진동시켰다. 사람들은 추위에 언 손을 녹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촛불을 손에 들었다. 100만명 이상이 광화문 주변에 모여 도심은 부드러운 주황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민중의 힘을 피부로 느꼈다.

낮부터 계속된 항의집회가 끝난 건 새벽 1시경. 사람들로 가득 찬 광화문광장에는 막차를 놓친 사람들이 추위를 피하려 몸을 움츠려 밤을 지새우고 있었다.

평온함을 되찾은 광장 한 가운데에 유난히 불을 밝힌 곳이 있었다. 세월호 유가족이 세운 추모 천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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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 나는 노란 리본 열쇠고리와 스티커를 받았다. 열쇠고리는 보도사진을 찍기 시작했을 무렵부터 애용해온 카메라에 달았고, 스티커는 iPhone6 뒷면에 붙였다. 일본에서 왔다고 전하자 이러한 말이 돌아왔다.

"감사합니다. 함께 희생자 추모를"

◼ 항의의 목소리와 희생자 추모

세월호가 침몰한 지 2년 8개월이 지났다. 나는 일본에서 보도를 통해 제주도로 향하던 많은 고등학생들이 타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수학여행에 들떠 있는 학생들의 모습을 담은 스마트폰 동영상이 내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학생들이 죽어가고 있을 때, 박근혜 대통령은 7시간 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사고와 대응에 대해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너무나 많아, 유가족과 많은 시민들이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활동을 계속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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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도 청와대에서 200미터 떨어진 곳에서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고 정부의 대응을 규탄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희생자 얼굴이 그려진 현수막이나 플래카드를 들고 4.16이 인쇄된 마스크를 쓰거나 스티커를 붙이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근혜 정권이 국민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는 사실이 세월호 사고를 통해 여실히 드러났다. 희생자 유가족이나 시민들은 참을 수 없는 고통과 슬픔, 그리고 분노를 표출하고 있었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행렬을 지켜보던 집회 참가자들의 눈빛에는 추모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그들을 위해 길을 열어주는 모습도 봤다. 세월호 사고는, 유가족만이 아니라 거리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모든 이들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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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추모 천막에는 희생된 학생들의 사진이 붙어 있다. 누구나 애도의 뜻을 표할 수 있게 천막은 2년 넘게 그곳을 지켜왔다고 한다. 무릎 꿇고 기도하는 사람, 자세를 갖춰서 눈을 감고 있는 사람. 나는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표정에 카메라 초점을 맞췄다. "부디 편안하게 잠드소서" 기도의 말과 함께, 눈앞에 있는 희생자 한 사람, 한 사람의 눈빛을 보면서 목숨을 빼앗긴 이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사고 당시의 고통스러운 기억도 다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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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막 옆에는 사고 전에 촬영된 단원고 학생들의 기념사진이 붙어 있었다. 사고가 나기 1년 전, 입학한 지 얼마 안됐을 때의 사진 속에서 학생들은 제각기 포즈를 취하며 순진하게 웃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다.

앞으로 학교에서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즐거운 삶이 기다리고 있었을 텐데... 사진에서 전해지는 억울함과 분함에 눈물이 흘러나왔다. 너무나 괴로워 눈 앞에 있는 그들에게서 시선을 피하고 싶어졌다. 그렇지만 그들을 직시했다. 망연자실해 하며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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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검색했더니 "가짜 희생자"니 뭐니 하며 유가족을 비방하는 글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여당 소속 국회의원도 그들을 비난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대참사는 "남의 일"이 아니라 한국 국민 개개인에게 "나의 문제"로 받아들여져 추모분위기가 전국으로 확산됐다고 한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구제를 원하는 유가족이나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위한 천막이었으나 지금은 성격이 바뀌어 추모공간으로 존재한다"고 말했고 서울시는 담요와 같은 물자를 공급해 지원하고 있다고 한다.

◼ "우리의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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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직후, 한국친구들이 페이스북에 노란 리본을 자주 올렸다.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뜻이 담겨져 있다.

많은 이들, 특히 젊은이들의 목숨을 앗아간 사고에 친구들이 SNS에서 추모의 뜻을 전하는 것을 보고 나도 글을 공유하거나 댓글을 달기도 했다. 하지만 그 당시 한국의 젊은이들이 했던 일에 비하면 너무나 부족하다고 느껴져 이번에 한국에 가게 되었다.

Facebook, Twitter 그리고 Instagram 등에서 '노란 리본'의 이미지가 확산되었고 한류 가수들도 동참했다고 한다. 2년 전엔 그저 인터넷에서 볼 수밖에 없었는데 이번에 한국에 직접 가서 보게 된 것이 있었다. 한국에서는 여전히 추모가 계속되고 있다. 시위 현장에서도 그 뜻이 공유되는 것을 직접 봤다. 그런데 나는 일본에 있으면서 그들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는 것을 새삼 인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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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사고 직후의 대응을 계속 은폐해 희생자를 배신한 데 대한 분노가 다시금 퍼져 가고 있다. 지난 2년 동안, 한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사회나 대통령에 대한 불만이 커졌을 것이다.

"언젠가 다시 소중한 생명을 빼앗길지도 모른다", "삶이 빼앗길지도 모른다".

내 질문에 고등학생이나 대학생들이 그렇게 솔직한 심정을 토로했다. 불만과 불안이 뒤섞여 목소리를 높인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과연 한국만의 일일까? 박근혜 퇴진을 외치는 사람들, 천막을 지키는 사람들을 보면서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북받쳐오는 감정을 느꼈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대지진이 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폭발사고로, 원자력은 안전하다는 "안전신화"는 한순간에 무너졌다. 고농도 방사성 물질 때문에 많은 이들이 고향을 잃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앞으로 이 나라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런 불안을 실토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일본 정부가 복구를 위해 제대로 예산을 쓰고 있는지, 원전사고의 진상규상과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노력을 하고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

햇볕이 내리쬐던 지난 8월 21일, 원전반대운동의 성지와도 같았던 통상산업성 앞 "탈원전 텐트"가 강제 철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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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원전 텐트는 추모를 위한 공간은 아니었으나 정권에 이의를 제기하는 일이 오랫동안 없었던 일본에서, 대지진 이후 대규모 반핵운동이 펼쳐졌음을 증명하는 장소였다. 한국의 문맥과 다르긴 하지만 같은 "천막"이라는 공간에서 많은 이들이 불안에 떨면서도 거리로 나서 정부 정책에 반대하게 된 오늘날 일본의 시민사회를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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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퇴진을 외치는 한국 젊은이들의 바탕에는 공통적으로 세월호의 기억이 깔려 있는 것 같다. 87년 6월민주항쟁을 통해 민주주의를 쟁취한 "기억"도 있겠지만, 실제로 얘기를 들어보면 다 같이 세월호 얘기를 꺼냈다.

국가권력에 대해 다른 목소리를 내는 일은 국민으로서 인간 자체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200만이 넘는 사람들이 거리로 나선 것은, "지금 끌어내리지 않고서는 우리의 삶이 무너져 내린다"는 위기감을 공유하고 있으니까 가능한 일일 것이다.

일본에서 시위나 집회에 참여하면 "시위를 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냐", "시위보다 대화가 중요하다", "반대할 거면 대안을 내라" 등등 시비를 거는 이들이 너무나 많다. 그런데 한국의 학생들은 이렇게 말했다. "시위야말로 대화"라고.

아베정권의 지지율이 높은 일본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젊은이들의 지지율이 0%인 한국을 단순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국 젊은이들이 하나같이 말하는 것은 "거리로 나서서 목소리를 높인다"는 것이었다. 목소리를 내려는 순간 밟아버리는 일본과 너무나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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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회가 한국처럼 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할지도 모른다. 동일본대지진 후의 반핵운동에 이어 2015년 여름에, 학생단체 "SEALDs"(Students Emergency Action for Liberal Democracys, 자유민주주의를 위한 학생긴급행동)의 멤버 등 수만 명이 연일 국회 앞에 모여 아베정권이 반대여론을 무시하고 밀어붙이려 했던 안보법안에 대해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한 움직임은 일본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사상가 가라타니 고진은 말했다. "시위를 함으로써 겨우 시위를 할 수 있게 되었다"고. 이제 일본에서 시위를 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 되었다. 한국처럼 의회민주주의뿐만 아니라 "실천을 계속해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직접 민주주의, 이 두 가지 측면의 민주주의에 대해 논할 수 있는 사회로 만들기 위해선 목소리를 계속 높여야만 한다.

그것은, 일본 국회 앞에서 "민주주의란 무엇이냐"라고 구호를 외쳤던 한 학생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해서 행동하라"라고 한 말이 가리키는 미래사회일 것이라고 통감했다.

◼ 존엄을 지키기 위해

세월호를 생각하면, 최근 일본에서 연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사건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가나가와현 사가미하라시의 장애인시설 "쓰쿠이 야마유리원"에 살던 19명이 피살당한 사건, 대형 광고대리점 "덴쓰"에서 일하던 내 나이 또래 여직원이 자살로 몰린 사건, NHK가 빈곤에 시달리는 여고생에 대해 보도하자 온갖 악플이 쇄도한 사건, 재일한국인 등에게 거리나 인터넷에서 차별적 욕설을 퍼붓는 헤이트스피치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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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고에서 한국사회의 문제점이 노골적으로 드러났듯이 일본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은 일본사회의 병리가 낳은 것이다. 단순한 사건이 아닌데도 일본 방송에서는 "이해하기 쉽게" 권선징악, 혹은 양쪽 당사자만의 문제로 스토리를 재구성하면서 "그들의 문제"로 단순화시켜 버린다. 그러면서 우리와 그들을 분리시킨다.

책임은 정부나 기업에만 있는 게 아니다. 지금과 같은 사회를 묵인하고 직접 "경기"에 참여하지 않고 관람석에서 이래라 저래라 하면서 구경해온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을 것이다. 인간의 존엄은 누군가가 알아서 지켜주는 게 아니다. 방관은 곧 가담이다. 개개인은 힘이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일을 포기할 수는 없다.

"가만히 있으면 존엄은 빼앗겨 버린다. 그러니까 목소리를 높인다." 그렇게 말하는 내 나이 또래 한국 젊은이에게 "그래, 나도 같은 생각이야" 그런 말을 전하고 싶어서 노란 리본을 카메라와 iPhone에 달았다. 추위에 언 손으로 하나하나 만든 열쇠고리를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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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허핑턴포스트 일본판에 게재된 글을 번역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