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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6월 04일 13시 15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6월 04일 14시 12분 KST

남편의 죽음이 내게 가르쳐 준 것들

나는 어려움에 처한 사람에게 뭐라고 말해야 하는지 모르고 있었다는 걸 배웠다. 이제까지 잘못 알고 있었다. 나는 사람들에게 괜찮아질 것이라고 안심시켜주려고 했다. 내가 줄 수 있는 가장 위로가 되는 것이 희망일 거라 생각했다. 암 말기 환자인 내 친구는 사람들이 자기에게 하는 최악의 말이 "괜찮아질 거야."라고 했다. 그는 머릿속으로 괜찮아질지 아닌지 네가 어떻게 알아?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이해 못하겠어? 라고 외친다고 했다. 나는 지난달에 그가 나에게 가르쳐주려 했던 게 무엇이었는지 배웠다. 진정한 공감은 가끔은 괜찮아질 거라고 우기는 게 아니라 괜찮지 않다는 걸 알아주는 것이다.

오늘은 내 사랑하는 남편의 슐로쉼, 즉 매장 후 첫 30일의 마지막 날이다. 유대교에서는 가족을 매장하고 첫 7일간 쉬바라고 하는 격렬한 애도 기간을 갖는다. 쉬바가 끝나면 일상 활동을 거의 계속할 수 있지만, 슐로쉼이 끝나야 배우자를 위한 종교적 애도가 마무리된다.

랍비가 된 내 어린 시절 친구는 최근에 내게 자신이 읽었던 가장 강력한 한 줄짜리 기도는 "내가 살아있는 동안 죽지 않게 하소서,"였다고 말했다. 나는 데이브를 잃기 전이었다면 그 기도를 결코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는 나는 이해한다.

내 생각에는 비극이 일어나면 선택을 해야 하는 것 같다. 심장과 폐를 채우고 생각할 능력, 호흡할 능력까지도 제약하는 공허함에 무릎을 꿇을 수 있다. 아니면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할 수도 있다. 지난 30일 동안 나는 그 공허함 속에 잃어버린 시간이 많았다. 앞으로도 그 광대한 공허함에 빼앗길 시간이 많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삶과 의미를 선택할 수 있을 때는 선택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쓰고 있다. 슐로쉼의 끝을 기리고, 다른 사람들이 내게 주었던 것을 일부 되돌려주기 위해서다. 비통함은 완전히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자신들의 경험을 내게 들려준 사람들의 용기가 나의 회복을 도와주었다. 마음을 연 사람들 중 몇 명은 내 가장 가까운 친구들이었다. 지혜와 조언을 공개적으로 공유한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기를 바라며 내가 배운 것을 공유하고 있다. 이 비극에서 얻는 의미가 있기를 바라며.

나는 지난 30일 동안 30년을 살았다. 나는 30년만큼 더 슬퍼졌다. 30년만큼 더 현명해진 기분이다.

나는 어머니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보다 깊은 이해를 얻게 되었다. 내 아이들이 비명을 지르고 울 때 내가 느끼는 깊은 고통을 통해, 그리고 내 어머니가 내 고통에 연결되어 있는 것을 보며 알게 된 것이다. 어머니는 내 침대에서 빈 자리를 채워주며, 매일 밤 내가 울다 잠들 때까지 안아주셨다. 어머니는 내가 눈물을 흘릴 수 있도록 당신의 눈물은 꾹 참으셨다. 어머니는 내가 느끼는 괴로움은 나의 것이자 내 아이들의 것이라고 설명하셨다. 어머니 눈의 고통을 보니 어머니 말씀이 옳다는 걸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어려움에 처한 사람에게 뭐라고 말해야 하는지 모르고 있었다는 걸 배웠다. 이제까지 잘못 알고 있었다. 나는 사람들에게 괜찮아질 것이라고 안심시켜주려고 했다. 내가 줄 수 있는 가장 위로가 되는 것이 희망일 거라 생각했다. 암 말기 환자인 내 친구는 사람들이 자기에게 하는 최악의 말이 "괜찮아질 거야."라고 했다. 그는 머릿속으로 괜찮아질지 아닌지 네가 어떻게 알아?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이해 못하겠어? 라고 외친다고 했다. 나는 지난달에 그가 나에게 가르쳐주려 했던 게 무엇이었는지 배웠다. 진정한 공감은 가끔은 괜찮아질 거라고 우기는 게 아니라 괜찮지 않다는 걸 알아주는 것이다. 사람들이 내게 "너와 아이들은 다시 행복을 찾을 거야."라고 말하면, 내 마음은 그래, 나도 그렇게 믿어, 하지만 난 내가 다시는 순수한 기쁨을 느끼지는 못할 거라는 걸 알아, 라고 말한다. "새로운 보통 상태를 찾겠지만, 예전만큼 좋지는 못할 거야."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내겐 더 위안이 된다. 그들은 진실을 알고 진실을 말하기 때문이다. 늘 좋은 의도로 하는 말인 간단한 "좀 어때? How are you?"조차, "오늘은 좀 어때? How are you today?"로 대신하는 게 더 낫다. "좀 어때?"라는 말을 들으면 나는 내 남편이 한 달 전에 죽었는데, 내가 어떨 것 같아? 라고 외치고 싶은 것을 꾹 참는다. "오늘은 좀 어때?"라는 말을 들으면 나는 저 사람은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은 하루하루를 버티는 것이라는 걸 아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중요한 실용적인 것들을 배웠다. 이제 우리는 데이브가 즉사했다는 걸 알지만, 앰뷸런스에서는 몰랐다. 병원까지 가는 차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느렸다. 나는 지금도 옆으로 비켜주지 않은 차들, 우리가 지나갈 수 있도록 공간을 내주는 것보다 자기들의 목적지에 몇 분 더 빨리 도착하는 걸 중요하게 생각했던 모든 사람들을 증오한다. 나는 여러 나라와 도시들에서 운전을 하며 이런 것을 깨달았다. 모두 길을 비켜주자. 누군가의 부모나 배우자나 아이의 목숨이 거기 달려있을 수도 있다.

나는 모든 것이 얼마나 덧없이 느껴질 수 있는지 배웠다. 어쩌면 그게 사실일지도 모른다. 당신이 어떤 깔개를 밟고 서있든, 아무 경고 없이 갑자기 깔개를 홱 빼갈 수도 있다. 지난 30일 동안, 나는 배우자를 잃은 다음 깔개 여러 장이 사라진 정말 많은 여자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어떤 사람들은 지지 네트워크가 없어서 감정적 고통과 재정적 불안함을 혼자 감당해야 했다. 가장 어려울 때에 그들과 그들의 가족들을 우리가 저버린다는 것은 너무나 잘못된 일로 느껴졌다.

나는 도움을 요청하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내게 얼마나 많은 도움이 필요한지 배웠다. 지금까지는 나는 언니였고, COO였고, 행동하고 계획하는 사람이었다. 이건 내가 계획했던 일이 아니었고, 이 일이 일어나고 나니 나는 거의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나를 대신했다. 그들이 계획을 세우고 어레인지했다. 그들이 내게 어디 앉을지 알려주고 음식을 먹으라고 일깨워 주었다. 그들은 지금도 나와 아이들을 무척이나 많이 도와주고 있다.

나는 회복을 배울 수 있다는 걸 배웠다. 애덤 M. 그랜트는 회복에 중요한 세 가지가 있는데 내가 셋 다 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개인화 - 이게 내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라. 그는 '미안 sorry'이란 단어를 금하라고 했다. 내 자신에게 '이건 내 잘못이 아니야.'라고 계속 말하라고 했다. 영구성 - 내가 영원히 이런 기분은 아닐 거라는 것을 기억하라. 나아질 것이다. 침투 - 이것이 내 인생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쳐야 하는 것은 아니다. 구획을 나누는 능력을 갖는 게 건강하다.

내게 있어서 다시 일로 돌아가는 것이 구원이 되었다. 쓸모있는, 남들과 연결된 느낌을 받을 기회였다. 하지만 나는 곧 그런 연결마저도 변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다가가면 눈에 공포의 빛을 띄우는 동료들이 많았다. 이유는 안다. 그들은 돕고 싶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내가 남편 이야기를 꺼내야 하나? 하지 말아야 하나? 말을 꺼낸다면, 대체 뭐라고 하지? 나는 언제나 내게 중요했던 내 동료들과의 친밀함을 복구하려면 내가 그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려먼 나는 내가 원하는 것보다 더 개방적이고 상처받기 쉬운 상태가 되어야 했다. 나는 가장 가깝게 일하는 사람들에게 솔직한 질문을 해도 된다, 나는 대답하겠다고 말했다. 그들의 감정을 이야기하는 것도 괜찮다고 말했다. 한 동료는 차를 몰고 내 집 앞을 지나갈 때가 많은데, 들어가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다른 동료는 내가 옆에 있으면 자기가 잘못된 말을 할까 봐 마비되는 것 같다고 했다. 잘못된 말이나 행동을 할까 봐 두려워하는 대신 우리는 터놓고 이야기하게 되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만화 중 하나는 코끼리가 방에서 전화를 받으며 "코끼리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내가 코끼리를 언급하고 나니 우리는 코끼리를 방에서 쫓아낼 수 있었다.

동시에 내가 사람들을 받아들일 수 없을 때도 있었다. 학교에서 열린 포트폴리오 나잇에 갔을 때였다. 아이들이 교실 벽에 붙인 자기 그림들을 보여주는 행사였다. 정말 많은 학부모들이 - 모두 정말 친절했다 - 나와 눈을 맞추거나 자기들이 생각하기에 위로가 되는 말을 해주려 했다. 나는 무너져 내릴까 두려워 아무도 눈을 맞출 수 없도록 내내 시선을 깔고 있었다. 그들이 이해해주었길 바란다.

나는 고마움을 배웠다. 내가 예전에는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진심으로 감사하게 되었다. 예를 들면 생명 같은 것이다. 나는 정말 비통하지만, 나는 매일 내 아이들을 보며 그들이 살아있다는 것을 기뻐한다. 모든 미소와 포옹을 감사히 받는다. 더 이상 나는 하루하루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친구가 자기는 생일을 싫어해서 자기 생일을 기념하지 않는다고 말했을 때 나는 그를 보며 울면서 말했다. "젠장, 생일을 기념하란 말이야. 매번 생일이 올 때마다 얼마나 행운인 건데." 내 다음 생일은 엄청나게 우울하겠지만, 그래도 나는 예전의 그 어떤 생일보다 이번 생일을 마음속으로 기념할 작정이다.

내게 동정을 보내준 많은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한 동료는 내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그의 아내가 나를 지원하는 의미로 학교로 돌아가 학위를 따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녀가 몇 년 동안 미뤄왔던 일이라고 한다. 그렇다! 상황만 허락한다면,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적극성을 믿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잘 아는 사람들부터 내가 알게 될 일이 없을 사람들까지, 정말 많은 남자들이 자기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데이브의 인생을 기리고 있다.

내게 정말 많은 것을 해주고 앞으로도 계속 도와주겠다고 다짐한 내 가족과 친구들에게 느끼는 감사함은 표현할 수조차 없다. 내가 공허함에 사로잡혔던 끔찍한 순간들, 내 앞에 펼쳐진 시간이 끝없이 늘어나고 공허하게 느껴질 때, 고립과 공포에서 나를 빼내 준 것은 그들의 얼굴들뿐이었다. 그들에 대한 내 감사는 끝이 없다.

나는 그 친구들 중 한 명과 데이브가 없어서 할 수 없게 된 아버지와 아이들이 하는 활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우리는 데이브의 빈 자리를 채울 계획을 세웠다. 나는 그에게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난 데이브를 원해. A안을 원한다고." 그는 한쪽 팔로 나를 안고 말했다. "A안은 없어. 그러니까 B안을 끝내주게 잘해보자고."

데이브, 당신의 기억을 기리고 당신 아이들을 잘 키우기 위해, B안을 끝내주게 잘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겠다고 약속할게. 그리고 슐로쉼은 끝났지만, 난 아직도 A안을 생각하며 슬퍼해. 난 늘 A안을 생각하며 슬퍼할 거야. U2가 노래했듯이, "비탄에는 끝이 없어...... 그리고 사랑에는 끝이 없어." 사랑해, 데이브.

허핑턴포스트US의 Choosing Life and Finding Meaning 30 Days After Dave's Tragic Death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