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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5월 18일 07시 40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5월 18일 14시 12분 KST

촘스키 인터뷰 | 그가 트위터를 보지 않는 이유

"만약에 지금 제가 우크라이나, 시리아, 워싱턴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궁금하다면 저는 뉴욕타임스와 다른 메이저 미국 언론들의 글들을 읽을 것입니다. 또 AP와 같은 통신사들의 글을 읽고, 영국 언론사들의 글들을 찾아보겠겠죠. 저는 트위터는 신경을 안씁니다. 트위터를 본다고, 딱히 얻는 게 없습니다. 트위터는 저널리즘이라기보다는 다양한 이슈들에 대한 사람들의 의견을 보여주죠. 하지만 그 의견들조차도 필연적으로 매우 짧고, 결론적으로 매우 피상적이죠."

* 이 인터뷰는 크라우드펀딩을 이용해 개인화된 신문을 만드는 플랫폼인 Byline에 게재된 글로 허핑턴포스트US다음 뉴스펀딩에도 실렸습니다. 인터뷰을 진행한 이승윤은 Byline의 공동창업자이자 CEO로 옥스퍼드 재학 시절에는 세계적인 토론회인 옥스퍼드 유니언의 회장을 지냈으며, 허핑턴포스트 국제판인 월드포스트의 객원 에디터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노암 촘스키 교수님은 내 사춘기 시절 우상이었다. 굳이 사춘기 청년의 촘스키 교수의 중독에 대한 이유를 찾으라면, 교수님께선 청소년기 세상에 대한 불만을 지적으로 합리화시킬 탈출구를 제공해주셨던 것 같다. 30대 초반에 세계 최고대학 MIT대의 종신교수직을 받고, 상아탑의 생활을 편하게 즐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약자의 편에 서서 강자의 실체를 비판하는 다소 무모한 노암 촘스키 교수의 '행동하는 양심'으로써의 행보는 사춘기 시절 큰 영감을 줬다. 옥스퍼드대학교에 와서 토론회이자 학생회인 옥스퍼드 유니언의 회장이 됐을 때 가장 먼저 초청장을 보낸 사람도 바로 노암 촘스키였다.

특히 그의 저작 중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합의 조작 (Manufacturing Consent)' 이었다. 이 책의 가장 핵심적인 주장은 공산주의 독재국가들에서만 선전(propaganda)이 팽배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서구 민주주의 사회의 주류 언론들도 엘리트의 기득권을 유지시키고 강화시키는 선전 (propaganda) 도구로 사용된다는 것인데, 주류 언론들의 주장을 맹신했던 어린 나에게는 상당한 충격을 줬다. 촘스키 교수의 분석은 언론의 경제적 소유 구조와 수익 모델을 분석했을 때 기득권을 쥐고 있는 정치 권력과 경제 권력으로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월스트리트저널의 소유주는 전세계 언론재벌인 루퍼드 머독이고, 그들의 비지니스 모델은 전세계의 거대기업에 광고를 파는 것이다. 소유 구조와 비지니스 모델을 뜯어 봤을 때, 그들은 루퍼트 머독과 광고주로 있는 거대기업들의 구미를 맞추기 위한 언론 보도를 할 것이라는 분석을 할 수 있다. 노암 촘스키는 이런 언론의 소유구조와 비지니스 모델을 지적하면서, 거대 미디어는 구조적으로 이 언론사주와 광고주들의 정치경제적 기득권을 강화시키는 선전 수단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촘스키 교수가 던져줬던 이 문제의식과 미디어 개혁에 대한 필요성은 내가 하는 지금 미디어 플랫폼 사업인 Byline을 시작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졸업 후 미디어 창업을 하는 시점에서 나의 사춘기 시절 우상을 대면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설래는 일이었다.

노암 촘스키와 절친인 '홀로코스트 산업'의 저자 노만 핀켈슈타인에게 인터뷰 전 촘스키 교수에 대해 물어봤다. 그가 가장 먼저 꺼낸 말은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만들어진다"였다. 촘스키 교수는 아직도 몇백통, 심지어 몇천통의 이메일을 받으시는데, 87세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새벽 5시까지 밤을 새면서 이메일 답장을 일일이 하신다. 3년 전 이메일을 한 번 주고 받은 나에게도 이메일은 어김 없이 하루 내로 답장이 왔다. 그리고 인터뷰하기까지 이런 저런 이메일을 보냈는데 항상 친절하게 답장을 해주셨다. 아직도 너무나 성실하게 일하시고, 모든 이에게 성심성의껏 대하는 모습에 종종 나태한 내게 큰 자극과 부끄러움을 느끼게 했다.

너무나 바쁘신 분이기에 그의 MIT집무실에 들어가자마자 질문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촘스키 교수는 정정한 모습으로 (내가 한국인인 줄 미리 알았던 것처럼 '노암 촘스키: 테러리즘과 문화'라고 한국어가 적혀있는 컵의 물을 드시면서) 인터뷰를 시작했다.

사실 교수님의 30여년 전 '합의 조작'의 주장이 지금도 유효한지에 대해서는 많은 의문이 있다. 지난 30여년 간 사회엔 많은 변화가 있었고, 가장 큰 변화는 아마도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기존 주류 언론들은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를 통한 시민 저널리즘 (citizen journalism)에 의해 크게 약화되고, 언론 환경이 훨씬 '민주화'되었다고 믿고 있다. 최근의 가장 좋은 예가 미국 퍼거슨 시위였다. 뉴욕타임스와 같은 메이저 언론사들이 취재하기 전에, 트위터로 퍼거슨 시위가 시민들에 의해 직접 취재됐고, 주류언론은 시민 기자들의 2중대에 불과했다. 과연 30년 전에 이렇게 시민 기자들이 나왔을 수 있을까. 현 디지털 시대는 이제 주류 언론이 기득권의 선전 도구가 되고 싶어도 될 수 없는, 훨씬 민주화된 언론 환경이 아닌가? 과연 더 이상 기득권을 위한 '합의 조작'이 가능한가? '합의 조작'은 인터넷이 없던 시대에 쓰여진 저작이기에 그에게 물었다.

"저와 저의 공동저자 에드어드 허먼은 10년 전에 '합의 조작'의 새로운 서문을 썻는데, 바로 이 질문에 대해 답하려 했습니다. 30년 전과 비교해 언론 환경에 변화가 있었다면 분명 인터넷의 배급을 꼽을 수 있겠죠. 하지만 다른 변화들도 있었습니다. 특히, 독립 언론들의 급격한 약화는 정말 개탄할 만하죠.

저희의 근본적인 분석과 모델은 아직도 어느 때보다 더 유효합니다. 인터넷이 전에 없었던 기회를 많이 준 것은 사실입니다. 도서관을 가는 대신에 컴퓨터를 켜서 바로 리서치를 할 수 있죠. 이전보다 당연히 쉽게 많은 매체들을 통해 정보를 공급할 수 할 수 있게 됐고, 분명히 이런 면에서 인터넷이 주는 장점과 단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언론 환경은 변한 게 별로 없습니다."

촘스키 교수는 매우 단호했다. 그로부터 더 긴 설명을 원했고, 나는 최근 인상 깊게 읽은 영미권의 유력 진보 신문인 가디언의 전 디지털 총책임자였던 에밀리 벨의 최근 옥스퍼드 로이터 저널리즘 대학원 강연을 인용하면서 촘스키 교수에게 언론 생태계와 인터넷의 관계에 대한 질문을 이어나갔다. "언론의 생태계를 쥐고 있는 것은 더 이상 언론사들이 아닙니다. 언론은 더 이상 자유로운 언론의 역할을 할 수 없습니다. 독자에게 스토리를 전달하는 모든 핵심 통로에 대한 통제권을 잃어버렸습니다. 이제 언론의 생태계는 실리콘밸리에 있는 소수의 사적 기업에 장악되었습니다." 에밀리 벨의 말처럼 이제 뉴스의 배급을 쥐고 있는 것은 루퍼드 머독이 아니라 구글의 레리 페이지, 세게이 브린이나 페이스북의 마크 주커버그이다. 한국에서 포털을 통해 언론을 소비하는 것과 똑같다. 촘스키 교수에게 인터넷에 관한 더 깊은 답을 듣기 위해, 실리콘밸리가 뉴스의 배급을 쥐고 있는 새로운 언론 환경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더 파고들었다.

"먼저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저는 방금 인용한 에밀리 벨의 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만약에 지금 제가 우크라이나, 시리아, 워싱턴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궁금하다면 저는 뉴욕타임스와 다른 메이저 미국 언론들의 글들을 읽을 것입니다. 또 AP와 같은 통신사들의 글을 읽고, 영국 언론사들의 글들을 찾아보겠겠죠. 저는 트위터는 신경을 안씁니다. 트위터를 본다고, 딱히 얻는 게 없습니다. 트위터는 저널리즘이라기보다는 다양한 이슈들에 대한 사람들의 의견을 보여주죠. 하지만 그 의견들조차도 필연적으로 매우 짧고, 결론적으로 매우 피상적이죠."

촘스키 교수는 결국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올라오는 수많은 네티즌의 글들은 결국 저널리즘이라기보다는 의견 표출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리고 촘스키 교수의 말대로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많은 글들이 기존의 주류 언론이 쓴 기사들을 공유해, 그 기사들에 대한 개인의 의견을 짧게 쓰는 것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결국 실리콘밸리는 기사를 유통하는 것에 불과하지, 아직도 뉴스의 생산은 촘스키 교수가 30년 전 겨냥했던 주류 언론사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촘스키 교수는 인터넷이 왜 언론의 민주화를 가져오지 않았는지에 대해 더욱 단호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오히려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언론들이 계속 죽어나가고 있습니다. 대중이 뉴스를 접할 수 있는 언론들은 계속 줄어들고, 뉴스 소비를 소수의 거대 언론들에게만 의존할 수 있는 상황이 직면하게 됐죠. 그럼 저희가 지금 얘기하고 있는 보스턴을 예를 들지요. 보스턴에는 원래 정말 좋은 신문이 있었지요. 그게 바로 보스턴 글로브(Boston Globe)입니다. 물론 아직도 명맥은 유지하고 있지만, 30여년 전에 비하면 정말 형편없지요. 보스턴 글로브는 전세계 구석구석에 대단한 특파원들과 해외지국을 갖고 있었죠. 중앙 아메리카에서 전쟁이 일어났을 때, 가장 좋은 저널리즘이 보스턴 글로브에서 나왔고, 많은 미국 국내 이슈들에 대한 제대로 된 저널리즘이 보스턴 글로브에서 나왔습니다. 지금 신문 자판대에 가서 보스턴 글로브를 펼쳐보세요. 지역 뉴스가 조금 나오고, 통신사와 보스턴 글로브를 소유하는 뉴욕타임스 기사를 받아 쓰기한 기사들로 가득 채워져 있죠.

이런 일들은 보스턴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만이 아니라, 미국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고, 전세계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오히려 언론이 더 다양해지는 것이 아니라 독점적인 시장 구조로 변하고 있죠. 현장에서 뛰고 있는 저널리스트들과 신문들이 점점 줄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현장 취재를 하고 있는 뉴욕타임스와 가디언 정도의 소수의 신문사들과 통신사들 기사를 의심도 안하고 읽을 수는 없죠. 이 소수의 언론에서 나오는 기사들을 비판적으로 읽어야 하는데, 그래도 그들은 생존이라도 해서 취재는 하고 있지 않습니까? 전세계에 중요한 사건들이 항상 터지고 있는데, 그것을 취재하는 언론들과 저널리스트들은 점점 줄고 있습니다. 바로 뉴스의 공급원이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 크레이그 리스트 등의 실리콘밸리 플랫폼들은 뉴스시장이 독점하고 있었던 광고시장을 뺏었다. 종이신문과 디지털 신문의 광고는 엄청난 알고리즘을 자랑하며 맞춤형 광고를 생산해내는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와 경쟁하기가 힘들다. 그리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정보와 뉴스라는 것은 더 이상 귀한 것이 아닌, 인터넷을 통해 무료로 어디서나 접근할 수 있는 것이 되었다. 종이든 디지털이든 아무도 뉴스 콘텐츠를 사지 않으려 한다. 결과는 메이저 언론사들의 줄파산이다. 1829년 창간한 전통 신문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 1847년 창간된 시카고 지역 최대 신문 '시카고 트리뷴' 등이 최근 10년 줄파산을 신청했고, 미국에서 가장 존경 받는 신문인 '뉴욕타임스'조차도 매년 파산 루머에 자유롭지 못하다. 워터 게이트와 같은 미국 언론사에 가장 기념비적인 보도를 한 '워싱턴 포스트'는 아마존의 창업자 제프 베조스에게 2억5000만달러 (한화 약 2,700억)라는 헐값에 팔렸다. 국내에서 10년도 안 된 게임사인 선데이 토즈의 기업가치에 반정도밖에 안되는 기업 가치였다. 워싱턴 포스트의 오너였던 도날드 그래엄은 매각을 하면서 자신은 워싱턴 포스트를 생존하게 하는 것에 대한 답이 없다고 시인했다.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 크레이그 리스트 등의 새로운 인터넷 플랫폼들이 만약 기존 언론들이 수행하던 저널리즘의 역할을 대체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촘스키 교수의 지적대로 소셜 미디어의 대부분 콘텐츠는 의견 표출에 지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콜롬비아 저널리즘 리뷰의 에디터 라이언 치텀 (Ryan Chittum)이 요약한다. 좋은 저널리즘을 하는 데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이것은 높은 인건 비용을 의미한다. 콜럼비아 저널리즘 리뷰에서 그는 말한다. "저널리스트가 전화기 앞에서 많은 통화를 해야 하며, 이곳 저곳을 다니며 문을 두드리며 취재를 해야 하고, 글을 써야 하고, 영상을 편집해야 하고, 사진을 찍으려 다녀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을 자동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소셜 미디어 사용자들이 생성하는 컨텐츠들이 뉴스룸을 대체할 수 있다고 믿겠지만, 이것은 기존 저널리즘이 하던 기능을 조금이라도 대체한다고 볼 수 없다." 좋은 저널리즘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수밖에 없고, 많은 인건비가 들을 수밖에 없다. 디지털 시대의 새 저널리즘의 지평을 열었다는 허핑턴포스트와 같은 뉴미디어, 신생 언론사들은 탐사 보도와 같은 인건비가 많이 드는 저널리즘보다는 이미 통신사들과 언론사들이 생산해낸 콘텐츠 큐레이션과 블로거들에게 돈을 주지도 않고 글을 모으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결국 제대로 된 저널리즘을 하는 뉴스의 공급원들이 급격히 줄고 있는 현실에 대해 오히려 촘스키 교수는 언론의 다양성이 줄고 있는 한 디지털 시대의 '언론의 민주화'는 허상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나는 궁금했다. 언론사들의 비지니스 모델을 파괴하고, 이제 뉴스의 유통을 잡고 있는 구글, 트위터, 페이스북 등 실리콘밸리 기업들도 촘스키 교수님의 관점에선 기존의 주류언론들처럼 합의 조작을 하는 선전 도구에 불과할까.

"실리콘밸리에 대해서 말하셨는데, 구글을 예를 듭시다. 그들도 당연히 합의 조작을 하려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어떤 상품을 사고 싶다고 합시다. 그래서 구글에 검색을 한다고 칩시다. 구글 검색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우리 모두가 다 압니다. 처음 나오는 제품들은 구글에 광고를 내는 제품들입니다. 이 제품들이 가장 중요한 제품은 아니죠. 저희에게 이 검색결과가 말해주는 것은 구글의 비지니스 모델입니다. 구글의 비지니스 모델은 광고에 기반하고 있고, 저와 제 공동저자 에드워드 허먼의 저작에서 이 광고 기반 모델을 합의 조작의 가장 중요한 이유로 꼽죠.

저는 구글을 항상 이용하고, 구글이 존재한다는 게 좋습니다. 하지만 뉴욕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월스트리트저널처럼 구글도 당연히 사용자들에게 전달할 정보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 특정한 메커니즘이 있습니다. 사용자들은 이것에 대해 인지를 하고, 정보를 습득해야 합니다. 구글을 포함한 거대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개인의 신상을 파악하기 위해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감시를 합니다. 그들은 수많은 사용자들의 신상에 관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감시해서, 사용자들의 습관과 그들의 행동들을 다 파악하죠.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의 비즈니스 모델을 가장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정보를 선별해서 사용자들에게 보여줍니다. 그들은 미국 국가정보원보다 훨씬 시민 개개인들을 감시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취재를 하고 뉴스를 공급할 수 있는 언론사들이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는 시점에 과연 촘스키는 앞으로 저널리즘을 어떻게 펀딩할지에 대한, 취재비용을 어떻게 조달할지에 대한 답이 있을까. 그는 오히려 나에게 되물었다. "BBC는 어떻게 펀딩 됩니까?"

내가 답했다. "국민 전체가 세금을 내죠."

그는 답을 이어나갔다.

"미국을 예로 들죠. 미국이 처음 건국 됐을 때,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수정헌법 제 1조에는 두 가지 목적이 있었습니다. 정보공급자를 국가의 통제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것이 한 가지 목적이지만, 동시에 대중이 정보를 접하고 알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다른 목적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독립 전쟁 이후 많은 법안들이 여러 신문들에게 공적인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입법되었습니다. 시민들에게 다양한 관점의 정보와 의견을 전달하자는 취지였죠. 꽤나 합리적인 모델이죠. 결국 이사야 벌린이 말했던 적극적 자유와 소극적 자유라는 개념으로 언론의 자유도 해석해 볼 수 있습니다. 소극적 자유는 외부의 통제로부터의 자유만을 의미하지만, 적극적 자유는 개인이 목적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 필요한 자유들을 포함합니다. 필요한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자유가 바로 이런 적극적 자유에 해당하겠죠. 이 언론의 자유에 있어서 적극적 자유와 소극적 자유 간의 갈등은 수백년 간 지속되왔습니다. 세계 2차 대전 이후 언론이 과연 이 두 가지 언론의 자유를 충족시켜야 하는지에 대한 열띤 토론과 논란이 있었습니다. 언론이 국가와 같은 외부의 통제로부터 자유로워야 된다는 소극적 자유는 거의 모든 이들에게 인정됐지만, 과연 시민이 다양한 종류의 정보와 의견에 대해서 알 적극적 자유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죠. 결국 첫번째 소극적 자유만 중시하는 시장과 기업 중심의 자유주의가 이겼습니다. 언론의 자유에 있어서 적극적 자유는 무시당했죠. 바로 이 것이 미국에 공영 방송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훨씬 약한 중요한 이유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당신이 하려고 하는 프로젝트과도 연계됩니다. 저는 최대한 다양한 정보와 의견을 접할 수 있는 자유와 권리를 모든 시민에 주는 공적인 노력이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위해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촘스키 교수의 답은 처음 들었을 때 약간 실망스러웠다. "공영방송을 살리자"라는 구호는 많이 접했고, 정부의 자금으로 운영되는 매체들은 또 정부의 압력에서 자유롭지 못한 경우가 많다. 공적 매체들은 그 당시 집권하는 행정부의 "선전 도구"로 전락할 가능성이 시장을 기반으로 한 매체가 언론사주들과 광고주들의 압력에 굴할 가능성만큼 많기 때문이다.

아무튼 촘스키 교수의 지적대로 언론들이 죽어 나가면서, 버즈피드와 같은 뉴 미디어는 네이티브 광고 (기사형 광고)라는 새로운 카드를 꺼냈다. 가장 잘 나가는 뉴 미디어인 버즈피드의 수입의 100%는 바로 이 네이티브 광고에서 나오는데, 광고주가 돈을 주면 광고 같지 않은 광고를 써주면서 돈을 버는 모델이다. 버즈피드를 따라 영미권의 주류 언론들은 뉴욕타임스부터 월스트리트저널까지 이 네이티브 광고 유행에 동참했다. 최근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에드워드 스노든을 통해 미국 정부의 감시 프로그램을 폭로하고, 2008년 금융 위기 때 금융 중심의 신자유주의를 향해 가장 강하게 직격타를 날린 영국의 대표적 진보지 가디언이 골드만삭스의 스폰서를 받은 기사들을 내는 것이었다. 물론 기사 밑에 "스폰서: 골드만삭스"가 찍혀있지만 뭔가 가디언에게 배신을 당한 기분이나, 속는 기분을 없앨 수 없었다. 이로써 언론사들은 더 이상 진정성 있는 저널리즘을 시도하기를 포기한 것이다. 디지털 시대에 돈을 버는 방법을 더 이상 모르겠으니 광고주에게 아예 대놓고 돈을 받고 기사를 써주는 비지니스 모델을 '저널리즘 혁신'이라고 들고 나왔다. 편집국과 사업부의 벽은 허물어졌고, 버즈피드가 '광고의 미래'라면 모르지만 '저널리즘의 미래'라면 좀 슬픈 현실이다. 나는 촘스키 교수가 이에 대한 말을 해주기를 원했다.

"네이티브 광고는 원래 있으면 안 돼야 할 광고주에 대한 의존을 더 급격히 강화시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 네이티브 광고가 갑자기 없던 문제를 생기게 한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광고주에 대한 의존은 이미 주류 언론에 강하게 존재해왔지만 이제 더 대놓고 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잘라 말했다.

나는 주류언론에 대해서 이렇게 비관적인 트렌드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최근 가장 큰 예는 워싱턴 포스트와 영국 신문 가디언이 에드워드 스노든 문건을 통한 미국 국가정보원의 대규모 감시 프로그램을 폭로한 것이다. 에드워드 스노든의 말에 따르면 "인류 역사 상 최대 규모"의 이 조직적 감시는 미국 정부에 큰 부끄러움을 줬을 뿐만 아니라, 이 미국 정부의 감시프로그램에 협력 요구를 순응하는 구글, 페이스북과 같은 실리콘밸리 기업들에도 큰 부끄러움을 줬다. 영미권 주류 언론인 워싱턴 포스트와 가디언의 이 보도는 촘스키가 말한 "합의 조작" 주장과 상충되는 보도였고, 분명 기득권을 악화시키는 보도였다. 이 것은 그냥 우연한 예외였을까?

"저는 책에서 분명하게 저희의 모델이 미디어의 작동 원리를 가장 근접하게 보여주는 모델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저희가 말한 가장 중요한 요인들을 제외한 다른 요인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합의 조작'을 제대로 읽으시면 책의 3분의 1이 저널리스트들을 방어하는데 할애됐다는 것을 깨달으실 것입니다. 특히, 저희는 프리덤하우스와 같은 시민단체들의 저널리스트에 대한 비판을 반박하죠. 프리덤하우스는 베트남 전쟁 당시 저널리스트들이 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보도를 하는 반애국적인 행위를 저질렀다고 소리 높여 말했습니다. 저희는 이런 프리덤하우스의 비판에 대해 직업 정신이 투철한 저널리스트들이 진정성 있고 정확한 보도를 했다고 지적합니다.

하지만 언론들과 저널리스트들은 저희의 방어를 좋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저희는 베트남전쟁에 대한 여론을 결정적으로 등 돌리게 한 구정공세 보도가 매우 진정성 있고, 용감하고, 정확하고, 전문적이라는 것을 인정하지만, 그 보도들은 정부 선전의 근본적인 어젠다를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정부의 기본적인 선전은 베트남 전쟁은 정의롭고 옳은 전쟁이었다라는 것인데요. 베트남 전쟁이 과연 처음부터 정의로운 전쟁이었는지에 대해서는 건드리지 않았죠. 당연히 주류언론의 구정공세 보도가 정부의 주장과 현장에서 벌어지는 실상의 간극을 보여주면서 정부의 거짓말을 폭로한 것도 맞고, 그 당시의 정부를 곤경에 처하게 한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베트남 전쟁이 근본적으로 정의로운 전쟁이었는가에 대한 명제는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른 예를 들기 시작했다.

"워터게이트나 기업 비리 보도를 예로 들죠. 기업 비리에 대한 가장 좋은 저널리즘은 비즈니스 전문 신문에서 많이 나옵니다. 합리적인 기업인들은 기업 생태계의 장기적 유지를 위해서 기업 비리 보도를 관대하게 용인하죠. 특히 비즈니스 전문 신문들은 정부의 사생활 침해나 기업에 대한 간섭을 강화시킬 정책들에 대해 강하게 비판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방해하고 간섭할 강한 정부를 원하지 않으니까요.

그렇다고 제가 스노든 문건을 폭로한 가디언과 워싱턴 포스트를 비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직업 정신이 투철한 저널리스트들이고, 그것을 진정성 있게 보도했죠. 언론 보도를 결정짓는 것은 많은 요인들이 있습니다. 저희는 그 요인들 중 구조적이고, 가장 중요한 것을 꼽았지만, 저희가 꼽은 요인들이 모든 현상을 다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스노든 문건 보도가 '합의 조작'모델의 반례이냐고 다시 되물었다. 촘스키 교수는 답했다.

"반례라기 보다는 저희가 말했던 중요한 요인들을 제외한 저널리스트의 직업 정신과 진정성 같은 다른 작은 요인들도 있다는 것에 대한 증명이죠."

바이라인의 펀딩 방식인 크라우드펀딩에 대해 물어봤다. 최근 촘스키 교수의 절친인 존경받는 탐사 보도 전문 기자 존 필저(John Pilger)가 한화로 1억이 넘는 금액을 자신의 최근 프로젝트를 펀딩했다. 저널리스트와 언론사들을 광고주와 언론사주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면서, 독립 언론의 새로운 장을 열 수 있는지 묻고 싶었다. 촘스키 교수는 크라우드 펀딩이 독립 언론을 살릴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인정했지만, 동시에 노동 운동을 강화해 노조들이 운영하는 신문들을 다시 살리는 노력도 병행되어야한다고 역설했다. 하지만 동시에 노동세력을 기반으로 한 신문들도 결국 노조원들이 결집해 크라우드 펀딩을 함으로 인해 존속되는 것이 아닌가란 의문이 남기는 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최근 프랑스 풍자 주간지 샤를리 앱도 테러에 대해 물었다. 과연 그는 제한 없는 언론의 자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저는 언론의 자유를 최대한 지지해야 한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미국은 영국보다 훨씬 언론의 자유에 대한 보호가 강합니다. 하지만 언론의 자유가 무책임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저는 언론의 자유를 언제든지 지지하지만,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뉴욕의 타임스퀘어에 독가스가 가득찬 수용소에 유대인을 보내자고 하는 광고를 한다고 봅시다. 저는 이게 정부에 의해 강압적으로 멈춰지진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광고를 올리는 행위는 지지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과연 샤를리 앱도가 무책임했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저는 무책임했다고 생각합니다. 예의 없는 사춘기 소년처럼 행동했다고 생각하는데요. 하지만 이것이 어떻게든 테러와 사살을 정당화시킬 수는 없죠. 이런 언론의 무책임한 행동들은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 정부와 영국 정부가 21세기 가장 잔혹한 범죄인 이라크 전쟁을 저질렀을 때 영미권 주류 언론들은 앞장서서 정부를 지지하거나 묵인했습니다. 이것은 샤를리 앱도가 한 일보다 훨씬 무책임하죠. 이라크라는 나라 전체를 송두리째 파괴했으며, 종파 간의 분쟁을 극도로 심화시켜 중동 전체를 갈기갈기 찢어놓았죠. 침략이야말로 국제법에서 가장 중한 범죄이죠. 이 것을 주류 언론이 지지한 것은 매우 무책임한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다고 해서 이런 보도를 할 자유를 억압하자는 것에 대해 절대 찬성하지 않습니다."

언론의 생리에 대해서 처음으로 관심을 갖게 해줬던 청소년기 나의 우상 노암 촘스키 교수를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은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이 될 것 같다. 87세 나이이지만 급진적이지만 빈틈 없는 논리와 기가 막힌 팩트는 여전했다. 변함 없는 그의 진정성과 노력은 나에게 큰 울림을 줬다. 그리고 그의 디지털 시대의 미디어 생태계에 대한 분석은 내가 지금 이 사업을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더 큰 확신을 줬다. 인터넷이 언론의 민주화보다 오히려 언론의 다양성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 만인에게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를 약속했던 인터넷이 오히려 정부와 대기업의 감시 프로그램을 전락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

하지만 기업이라는 구조를 근본적으로 부도덕하게 보는 그와, 기업도 사회적 문제를 효과적으로 풀 수 있다고 생각하는 나와는 해결책에 있어서는 동의하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아마 정답은 중간에 있을 것이다. 결국 국가와 시장에서 동시에 더 자유롭고 민주적인 미디어 환경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교수님의 집무실을 나가면서 촘스키 교수의 조교에게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말하니, 촘스키 교수님께서 "오빠 촘스키 스타일"을 하는 것을 봤냐고 물어봤다. MIT학생들이 강남 스타일을 패러디한 비디오에 출연하셨다. 집에 와서 다시 봤는데 역시 교수님 쿨하시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교수님께서 최근 40대 브라질 여성과 재혼을 했다는 것이다. 다음 인터뷰 대담자인 위키리크스 줄리언 어샌지와의 잡담에서 알아낸 것인데 집에 와서 보니 아쉽게도 어샌지만 아는 비밀이라기 보다는 이미 최근 보도된 사실이었다. 왠지 어샌지가 말하면 비밀 폭로일 줄 알았는데. 아무튼 교수님 여러모로 대단하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