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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05일 06시 59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12월 06일 14시 12분 KST

25년 전 책자를 보며, 지금 촛불의 과제를 생각한다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의결이 9일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탄핵이 통과되면 박근혜 대통령의 직무는 정지되고, 조기대선 국면이 시작될 것입니다.

촛불을 들었던 우리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정치인들에게 맡겨놓을 수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지난 30년 동안의 역사를 보면, 기득권 정치구조가 깨지지 않는 이상 대한민국의 변화는 불가능합니다.

이번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통해 대한민국의 재벌, 검찰, 정치의 민낯이 드러났습니다.

당연히 재벌개혁, 검찰개혁, 정치개혁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동안에는 개혁에 관한 논의가 없었을까요?

숱한 논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대안도 있습니다.

문제는 대안을 채택하지 않는 기득권 정치구조에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재벌개혁, 검찰개혁, 정치개혁에 대한 대안을 새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동안 숱하게 논의되어 온 대안들이 있습니다. 조금만 다듬으면 당장 쓸 수 있는 대안들입니다.

어제 집의 책장에 꽂혀 있는 책 한 권을 펴 보았습니다. 1992년 경실련 정책위원회에서 낸 '우리 사회 이렇게 바꾸자'라는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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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는 참여연대가 생기기 이전이었고, 경실련이 시민운동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대표하고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때 이미 경실련 정책위원회는 재벌의 소유분산, 세습방지, 부동산 투기근절과 세입자주거안정, 쌀 수입 반대 등의 정책방안들을 제시했습니다. 지금도 유효한 얘기들이 많습니다.

이런 방안들이 제대로 논의되고 채택될 수 없었던 것은 바로 기득권 정치구조 때문이었습니다. 개혁의 시도는 매번 기득권 세력들의 저항에 의해 좌절되었습니다.

개혁이 좌절된 핵심원인은 선거제도에 있었습니다. 재벌을 비롯한 기득권세력들이 쌓아놓은 벽을 무너뜨릴 수 있는 유일한 힘은 정치에 있었습니다. 1인1표의 선거를 통해 기득권구조를 깰 수 있는 정치세력이 국회에 진입하고 영향력을 키워야만 개혁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한국의 선거제도는 기득권 세력에게 유리한 지역구 '1위 대표제'(1등을 해야 당선되는 제도)를 유지했고, 비례대표는 형식적이었습니다. 그러니 개혁에 반대하거나 소극적인 세력들이 국회를 차지하고 정치를 좌우해 왔습니다. 여당이냐 야당이든 개혁에 반대하는 세력들이 늘 많았습니다.

이런 정치구조를 깰 수 있는 정치개혁 방안도 이미 수십년 전에 제시되었습니다. 1992년 당시에 경실련은 이미 정당투표에 의한 비례대표제 도입을 주장했습니다. 그래야만 기득권구조를 깰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경실련의 제안은 25년이 지나도록 채택되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언급한 것은 극히 일부분일 뿐입니다. 1987년 6월민주항쟁의 결과 독재정권이 양보하고 대통령 직선제가 시행되면서, 대한민국을 바꾸고자 하는 강렬한 열망이 곳곳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대안들이 논의되었고, 그 대안을 현실로 만들려는 숱한 시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시도들이 번번이 좌절되었던 이유는 바로 기득권정치구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이 결국 헬조선을 낳았고, 이명박근혜정권을 낳았고, 최근의 참담한 상황을 낳았던 것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대안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의 숙제는 대안이 채택될 수 있는 정치시스템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 숙제는 87년 6월부터 30년간 미뤄져왔던 숙제이기도 합니다.

핵심은 기득권 구조를 깰 수 있는 선거제도의 개혁입니다. 그리고 시민들이 직접 참여해서 정치권력과 자본을 통제할 수 있는 시스템(직접·참여민주주의)을 도입하고 확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87년 이후 30년간 쌓인 대한민국의 적폐를 해소하는 길입니다. 탄핵 이후에 촛불 시민들이 요구해야 할 것도 바로 이런 근본적인 시스템 개혁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