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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2월 05일 08시 04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2월 05일 14시 12분 KST

빨간사과에 속지 마세요

gettyimagesbank

우리 몸의 종양이라는 주제로 연수를 들었다.

양성종양과 악성종양의 구분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진단의 결과에 따라 치료의 방향과 예후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우스갯소리로 보험료의 지급액수가 10배 이상 차이 나기 때문에 신중하게 검증한다고 하셨지만 어찌 보면 그것만큼 결과의 충격을 정확한 수치로 설명해주는 것도 없을 것 같다.

현미경이나 조직을 얇게 썰 수 있는 기구가 발달하기 전에는 종양의 외형적 특징에 의존해서 분류했다고 하는데 이것을 '형태학적 분류'라고 한다.

이 방법은 오진율이 높았기 때문에 환자를 초기에 치료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되고 이는 치사율의 증가로 연결되었을 것이라고 추측되었다.

요즘은 조직을 채취하면 2마이크로미터 정도의 두께로 얇게 자르고 여러 방향에서 분화의 정도, 극성소실의 정도, 경계의 명확성 같은 차이를 수차례 반복해서 검증한다고 한다.

어떤 경우에는 두 가지의 특성이 혼합된 경우도 있고 악성종양으로 판정이 되더라도 전이의 정도 등에 따라서는 치료방법이 크게 달라질 수 있으므로 또 다른 방법의 여러 가지 진단법도 동반된다고 한다.

설명을 듣는 동안 문득 어릴 적 명절날 받았던 빨간 사과의 기억이 떠올랐다.

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질 만큼의 먹음직스러운 빨간색과 흡사 작은 수박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던 크기는 최고급 상품임을 스스로 뽐내고 있었다.

그런데 보기만 해도 기분 좋던 그 녀석은 그냥 보기만 했어야 했다.

온갖 맛있는 맛을 상상하며 들뜬 맘으로 한입을 베어 물었던 어린 나는 세상은 쉽게 믿을 게 없다는 큰 진리를 깨달았던 것 같다.

사실 사과가 가진 수많은 특징 중에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맛, 영양, 깨끗한 재배 같은 것들인 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겠지만 우리 가족 모두는 그 녀석의 우월한 외모에 홀린 나머지 1차원적인 형태학적 분류에 매몰되고 말았던 것이다.

사람들은 살면서 무의식적인 형태학적 분류에 속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흑인이 어떻고 백인이 어떻고 하는 인종의 개념은 조금 먼 얘기라도 하더라도 착해 보이고 순진해 보이고 범죄형이고 하는 이야기들은 너무나 큰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경험적 사실들과 그에 근거한 나름의 통계학적 분석이 어우러진 아우풋들이겠지만 그것들이 얼마나 유의미한 분류를 위한 명확한 기준인지에 대해서는 잘 동의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저 사람은 생긴 것 같지 않게 너무 착해" 라든가 "어떻게 저런 순순한 얼굴을 하고 저런 끔찍한 일을..."이라면서 스스로의 분류가 잘 맞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자백도 심심치 않게 듣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업들의 줄세우기식의 서류심사나 외모중심적인 선발을 비판하면서도 예쁜여자나 잘생긴 남자를 본능적으로 쫓는다.

착한 사람이 좋다고 하면서 착해보이는 사람을 찾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사람은 종양이나 사과에 비길 수 없을 만큼의 수많은 특성들을 가지고 있다.

외모도 장애도 그 밖의 겉으로 보이는 한두 가지의 특성들은 그 사람이라고 말하기엔 너무 작은 부분일 가능성이 높다.

누군가를 보면서 "저 사람 요즘 변했어."라고 자주 이야기 하는 사람은 형태학적 분류에 쉽게 속는 사람일 수 있다.

그 사람이 변한 게 아니라 몇 가지 특성만을 보고 쉽게 단정하고 판단했던 게 셀프배신감의 원인이었을지 모른다.

명절이 다가온다. 진열대에는 화려한 포장으로 속을 감추려는 빨간사과 같은 녀석들이 가득하다.

사람들은 그보다 더 두껍고 요란한 포장속에 들어가려 할지도 모르겠다.

형태학적 분류를 버리고 진실한 사람들을 현미경 같은 맘으로 찾아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