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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1월 22일 09시 09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1월 22일 14시 12분 KST

이별에 대처하는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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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또는 스스로가 장애를 가지게 되었을 때 보통 다섯 단계의 감정상태를 경험하게 된다고 한다. 불신-분노-타협-좌절-수용의 5단계인데 나의 경우도 그러했던 것 같고 주변을 보아도 정도와 순서의 차이는 조금 있을지 몰라도 크게 예외가 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이 과정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따금씩 환경의 변화를 겪을 때마다 어김없이 찾아오곤 한다.

교육학에서는 전환기라고도 부르는데 특수학교를 떠나 대학에 진학할 때 학교를 떠나 직업을 구할 때도 좁은선택지들과 녹록지 않은 현실들은 또 한 번의 5단계를 경험하게 해 주었다.

무서운 것은 그때마다 어려움 혹은 실패의 원인은 항상 가장 약한 부분인 내 시력을 향했다는 것인데 다행인 것은 5단계의 마지막은 변함없이 수용이었다는 것이기도 하다.

나이를 먹고 몇 번의 연애를 하면서 알게 된 것이지만 이별을 마주하는 그 때의 감정마저도 매우 유사한 단계를 거쳐가고 있었다.

헤어졌다는 사실을 부정하려는 듯 태연한 척 연락을 해 보기도 하지만 또 한 번 명확한 사실을 확인한 후에는 나의 행동을 후회하기도 하고 상대를 원망하기도 한다.

어쩔 수 없는 현실에 타협하고 좌절하기도 하지만 이내 평온하게 수용하면 현실로 돌아갈 수 있다.

슬픔을 겪을 때마다 찾아오는 아픈 감정들은 담대함의 크기와도 큰 상관관계 없는 불수의적인 것들이어서 온전히 5단계를 느끼고 나서야 지나갈 수 있는 듯하다.

그때마다 원망은 또 다시 나의 가장 약한 곳을 향하지만 원인은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고 그렇다 하더라도 변하는 것은 없다.

나는 여전히 여자친구 앞에 서서 길을 안내하거나 드라이브를 시켜줄 수는 없지만 이별의 원인이 꼭 그것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누군가의 한쪽 팔을 붙잡고 다녀야 하는 것이 나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내가 가진 수많은 특징 중 아주 작은 부분일 뿐이다.

우리는 수많은 부분 중 적지 않은 부분이 맞지 않아서 헤어진 것이고 나는 슬픔을 겪는 사람으로서 가장 약한 부분이 뜨끔했을 뿐이다.

설령 이번엔 시력으로 인함이 맞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둘 사이에 극복하지 못한 작은 부분일 뿐이고, 해결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둘은 현실에서 맞지 않는 조합이었을 뿐이지 서로에게 나쁜 사람도 원망받아야 할 대상도 아니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살면서 여러 번의 슬픔과 실패를 경험한다.

장애가 없다 하더라도 대부분은 5단계의 감정상태를 거치고 그때마다 가장 약한 부분의 따끔거림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누군가에게는 학벌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집안환경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것들은 그가 가진 작은 특징일 뿐이다.

수용의 단계를 거치고 나면 알게 되겠지만 약점이 사라지지 않은 것처럼 다른 가능성들도 여전히 남아있는 것이다.

슬픔의 진원이 질병이라면 아프지 않은 내 몸의 대부분을 바라보면 될 것이고 원인이 취업이라면 내게 더 어울리는 다른 회사나 직업들이 훨씬 많다는 데 시선을 옮겨야 하는 것이다.

슬픔이라는 감정 그것은 언제나 쓰리고 아프다.

그렇지만 다시 한 번 강조하듯이 그 끝은 수용이라는 평온함이다.

아픔은 인간이 가진 자연스런 감정이고 과정이다.

아프다면 조금만 기다려라 아픈 만큼 더 큰 기쁨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