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2015년 12월 04일 10시 08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2월 04일 14시 12분 KST

상대의 언어로 말해봅시다

gettyimagesbank

요즘 '비주얼 씽킹' 이라는 용어가 교육활동에서 심심치 않게 쓰여지는 것 같다.

학습내용이나 주변의 사물들을 단순한 그림으로 표현하여 쉽게 설명하거나 전달하는 것이 주요 개념인 것 같았다.

선생님들은 교과서의 내용들을 한 장의 그림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세계의 주요 관광지를 지도위에 간단히 그려서 나타내기도 한다고 했다.

많은 것들을 빠른 시간에 익히고 알려야 하는 요즘 사람들에겐 매우 유용하면서도 재미있는 표현방식인 것 같았다.

그렇지만 시각적인 것은 아무리 대단한 것이라고 해도 별로 관심이 가지 않는 것이 나 같은 시각장애인들이 가진 특징이기도 해서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얼마 전 가까운 선생님 중 한 분이 관련서적을 출판하셨다면서 출판기념회 초대장을 건네셨다.

그림책 발표회에 초대된 것도 조금은 당황스러워 하던 나에게 그 분은 축하강의까지 부탁해 오고 계셨다.

거절하기엔 너무 가까운 사이라 일단 승낙은 해 놓긴 했는데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떠오르지가 않았다.

그냥 축하 인사나 거들고 내려오기엔 배당된 시간이 너무 길었다.

며칠을 고민하다 선생님께 책의 내용과 '비주얼 씽킹'에 대해 설명을 부탁드렸다.

그냥 몇가지 힌트나 시간 채울 단어들이라도 구해볼 요량이었다.

간단한 개념 설명에 이어 한 장 한 장의 그림설명이 이어지면서 조금씩 놀랄 만한 일이 시작되었다.

나는 여전히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눈을 가지고 있었는데도 설명 속 그림들은 나름의 분명한 영상들로 전달되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을 전달하기 위한 것인지도 어렵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때서야 비주얼이란 단어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던 씽킹이 보이기 시작했다.

종이에 그려진 그림들이란 이유로 난 그것들을 볼 수는 없었지만 그것들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었던 것이다.

선생님은 누가 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그림을 만들기 위해서 사물들이 내포하고 있는 내용과 특징들에 대해 수없이 생각하고 고쳐내는 과정을 거치셨던 것이다.

그것들을 책을 볼 독자에게는 그림으로 표현하셨지만 나에겐 또 다른 언어로 설명해 주고 계셨던 것이다.

그제서야 생각난 것이지만 그 선생님과 함께 어딘가를 갈 때에는 뭔가 직접 보고 가는 것 같은 편안함이 들었던 것 같았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상대가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내가 보고 있는 것을 변환하는 것 그것이 비주얼 씽킹의 출발점인 것 같았다.

우리는 살면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많은 집단들 속에 살아가고 있다.

세대갈등도 이념의 충돌도 종교분쟁도 그러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서로에게 나의 이해를 나의 언어로만 설명하려고 하는 경향이 강한 것 같다.

누군가에겐 그림으로 또 다른 이에겐 다른 언어로 설명하듯이 상대의 언어를 사용한다면 조금 더 부드러운 세상이 되지는 않을까?

세상 속 비주얼 씽킹 그것은 상대의 언어로 나의 생각을 변환하는데서 출발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