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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9월 18일 09시 37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9월 18일 14시 12분 KST

소꿉놀이 하실래요?

gettyimagesbank

초등학교 복도를 지나다가 역할놀이를 하는 꼬마 녀석들을 보게 되었다.

너는 아빠, 나는 엄마, 너는 의사, 너는 간호사 하면서 노는 것이 오래 전 내가 놀던 모습과 많이 다르지 않았다.

언젠가의 우리처럼 제일 인기 많은 여자아이가 엄마 역할을 맡고 여러 명의 남자아이들 중 선택 받은 행운아 한 명만이 아빠를 맡을 수 있었다.

의사도 간호사도 선생님도 그 밖의 여러 역할들이 약간의 티격대는 갈등 속에서 정해지고 놀이는 시작되었다.

출근도 하고, 요리도 하고, 환자도 고치고 하는 아이들은 놀이 안에서 너무도 진지했다.

특히 원하는 역할을 부여받은 아이들은 어디서 보고 들었는지 제법 그럴듯한 흉내까지 내면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가수아이는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불렀고 댄서들은 땀을 뻘뻘 흘리도록 춤을 추고 있었다.

어른들이 보기에는 그저 귀여운 놀이였겠지만 아이들에겐 원하는 것을 이뤄낸 역할에 대한 막중한 책임감 같은 것이 있는 듯했다.

선생님 역할을 하면서 칠판을 두드리는 아이를 보다가 문득 대학교 4학년 때 교육실습을 나왔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선생님'이라는 호칭은 우리에겐 전에 없던 자부심과 무거운 책임감을 부여해 주고 있었다.

누가 반말로 이름이라도 부르면 괜스레 불쾌할 정도로 우리는 '선생님'이라는 호칭과 역할에 빠져들어 있었다.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을 쪼개고 쪼개어 수업을 연구하고 아이들 하나하나를 챙기느라 자는 시간마저 아까웠던 적이 많았던 것 같다.

소꿉놀이를 하던 어느 아이처럼 교사를 간절히 원하던 우리에게 시한부로 주어진 한 달의 시간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하게 열심을 내뿜게 해 주었던 것 같다.

보조교사를 거치고 매년 재계약을 걱정해야 하는 기간제교사를 지나 어느덧 나는 11년차 정식교사가 되어있다.

매학기 매학년 반복되는 업무들은 교무회의를 참석하지 않아도 대부분 기간에 맞춰 수행할 수도 있고 교과서를 들고 가지 않아도 몇 시간 정도의 수업은 거뜬히 할 수 있다.

출근해서 습관적으로 컴퓨터를 켜고 잘 짜여진 프로그램처럼 여러 교실을 시간표대로 드나드는 비슷한 시간들 속에서 긴장감은 대부분 사라진 것 같다.

교과서가 바뀌고 새로운 업무가 부여되면 이따금씩 새로운 에너지로 연구를 쏟아내긴 하지만 처음의 뜨거웠던 기억과는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익숙해지고 노련해져간다는 핑계 속에서 부여된 역할에 대한 간절한 책임감 같은 것이 무뎌져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정년퇴임을 앞둔 선생님들이 자발적으로 다양한 업무를 찾고 한 시간 한 시간의 수업을 위해 더 열심히 연구하는 것을 보곤 한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들이 그 분들에겐 다시 '교사놀이'로 돌아갈 수 있는 자극점이 되었던 것 같다.

나도 더 늦기 전에 내 역할들을 놀이처럼 즐겨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것은 생각보다 나를 가치롭게 만들어 줄지도 모르겠다.

매순간 긴장하고 매일매일이 고단했지만 마음만은 즐거웠던 그리고 하루하루를 새롭게 배워갔던 교생 때처럼 말이다.

오빠가 되고 싶고 형이 되고 싶던 아주 어릴적 에도 그랬고 대학생이 되고 싶던 고등학생 때도 교사가 되고 싶던 몇 년전까지도 그랬던 것 같다.

간절함이 클수록 성취감도 컸고 뿜어내는 열정들도 대단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들을 오래 지속하지 못했던 것 같다.

방안 구석 여기저기에 소중함을 잃어버린 오래된 물건들처럼 내 역할들도 그렇게 되어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교사놀이, 어른놀이, 친구놀이, 가족놀이 ! 오늘부터는 내게 주어진 역할들을 놀이처럼 즐겨보도록 다시 노력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