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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9월 11일 09시 47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9월 11일 14시 12분 KST

선택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연합뉴스

길을 지나다가 '동성애를 반대합니다.'라는 피켓을 들고 서명을 유도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것이 반대하면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서명하면 없어질 수 있고 내려놓을 수 있는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메가폰을 드신 분은 큰 소리로 '동방예의지국에 사탄이 출몰했다."는 유교적 기독교관을 설파하시기도 하셨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동성애자들을 독특한 '성적취향'을 선택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들을 바닥에 깔아놓고 보면 그들은 자연적 순리를 거스르는 이단아일지도 모르고 미풍양속을 해치는 죄인으로 취급받아야 마땅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몇몇 동성애자들의 발언을 접하게 되면서 이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거스를 수 없는 성적정체성을 부여받은 사람들은 불안하고 위축된 죄인 같은 생활을 하면서 어른이 되어가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기도 한다고 했다.

공통의 교육과정에서는 설명해 주지도 않고 미디어에서는 왜곡하고 곡해하는 소수의 정체성에 대해 그들은 스스로를 작은 감옥에 가두고 다수가 정상이라고 주장하는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으려 부단히 노력하기도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짝을 찾고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가 부여되었다.

비록 사랑에 실패하고 아파할지언정 그 마음과 표현 자체를 비난받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그 작지만 소중한 권리를 박탈당한 사람들의 심정은 어떠할까?

마음껏 드러낼 수도, 표현할 수도, 선택할 수도 없는, 그것은 어느 나라 어느 시대의 신분제도보다도 더 잔인한 경계일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성소수자들은 누군가의 억지처럼 사랑하는 방식 때문에 다른 이들을 공격하거나 그들 방식대로의 사랑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더욱 상식적인 이야기이겠지만 그것은 전염병도 아니고 어떤 이의 선동으로 따라할 수 있는 일탈도 아니다.

어쩌면 성소수자들은 사회 다수의 규칙과 제도에서 포용받지 못하는 '사회적 장애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만약 성정체성이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라면 몇 명이나 소수의 자리를 선택할까?

장애나 가난마저도 죄악이나 노력의 부재로 설명하려는 이 사회에서 그 쪽을 선택할 이는 몇 명이나 될까?

성적정체성 그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근거 없는 논리들과 종교적 선동들로 자행되는 마녀사냥식의 서명운동은 수백년 전 부패했던 교회의 모습을 다시 보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

소수의 다름을 포용하고 이해하려고 하는 것! 그것은 다수가 가진 최소한의 책임 아닐까?

한 사람의 사랑할 작은 권리! 그것은 어떤 누구도 간섭하거나 반대할 자격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