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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8월 12일 05시 34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8월 12일 14시 12분 KST

공감능력과 포용능력

gettyimagesbank

음식점 데이트에서 여성들이 가장 싫어하는 멘트 중 하나가 '아무거나'라는 조사를 본 적이 있다. 지나친 배려가 상대에겐 주관도 없고 리드도 못 하는 약한 남자로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해 보면 식탁에 앉자마자 멋지게 음식을 주문하는 남자도 누군가에겐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쯤 되면 중간을 상상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하나하나 메뉴를 짚어 가면서 설명하고 "이것으로 하실래요?" "저것으로 하실래요?"라고 묻는 것은 양쪽 모두에게서 환영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어쩌면 맘에 드는 연애태도가 있다기보다는 호감 가는 남자의 연애태도가 마음에 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 부분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스스로 느끼는 호감과 비호감에 따라서 어떤 선택도 포용할 수 있기도 하고 반대로 어떤 것도 거북하게 느끼기도 한다.

이것만 의지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면 더욱 많은 사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지나친 배려나 양보를 하다가 오히려 불편한 이미지를 가지게 되는 경우들을 종종 본다.

그러나 데이트 현장의 대부분의 남자들이 그러하듯 불편한 이미지를 갖게된 그 또한 고의적으로 그랬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으리라 확신한다.

요즘 많이 하는 고민중의 하나는 공감능력에 관한 것이다.

남녀사이 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공감받기를 원한다.

다시 말하면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것을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을 넘어서서 온전히 상대가 되어야 한다. 좋은 관계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이 정도쯤이야 알기도 하고 노력도 할 것이다.

그러나 가족 간에도 세대 간에도 남녀 간에도 시대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서로의 공감능력을 탓할 수밖에 없는 건 어떤 누구도 완벽히 상대가 될 수 없는 것의 반증이기도 하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이 받아들이는 사람의 포용능력인 것이다.

메뉴의 선택권을 넘기는 줏대 없는 남자도 마음대로 선택하던 이기적인 남자도 진심은 상대의 마음을 얻고싶었을 것이다.

그 때 상대여성이 호감을 가진 남자들에게만 보이던 한없는 아량으로 포용할 수 있다면 그들의 관계는 훨씬더 밝아질 것이다.

외형적으로 보이는 태도를 넘어서서 진심을 읽기 시작한다면 좀 더 진실한 남자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비단 남녀관계에서의 문제는 아니다.

나이를 먹어가고 경험이 쌓인다는 것은 상대가 나에게 베푸는 친절의 모양보다는 그 이면의 진심을 볼 수 있는 능력을 쌓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조그만 아이들의 꼬깃꼬깃한 종이접기 선물이나 죽마고우들의 육두문자 섞인 위로의 의미를 알 수 있다면 그것은 나의 포용능력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상대방의 생각을 읽고 다가가는 공감능력도 중요하지만 보다 멋진 관계를 위해서 서툰 표현속 마음을 읽는 포용능력을 가져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