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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8월 07일 09시 27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8월 07일 14시 12분 KST

우리 기차놀이 하실래요?

gettyimagesbank

내게 있어 처음 특수학교에 입학하던 날은 그리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지 않다.

중도에 장애를 겪게 되는 대부분이 그러하겠지만 장애인들이 우글거리는 공간에 들어간다는 사실만으로도 뭔가 꺼려지는 불쾌한 느낌이 있었던 것 같다.

학생수에 맞게 만들어진 작은 교실은 물론이고 일반적인 웅성거리는 소리나 멀쩡한 의자나 책상들마저도 뭔가 불편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내가 그날 가장 신경 쓰고 노력하고 있던 것은 특수학교 아이들과 다르게 보이는 것이었다.

이미 같은 학교의 학생이면서도 그 아이들은 장애인이고 나는 잠시 머무르다 다시 돌아가리라는 새뇌를 나 스스로 강력히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괜스레 어색하게 어깨를 펴고 있기도 하고 아이들이 떠들면 괜히 더 과묵하려고 하기도 했다. 온통 궁금한 것 투성이였지만 새로운 담임선생님께 질문을 하는 아이들과 달라 보이고 싶어서 하고 싶은 말마저 꾹 참고 있기도 했다.

나는 그들과는 달라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눈물겹도록 굳건하던 나의 저항은 몇 분도 가지 못하고 산산히 무너지고 말았다.

학급별 아침조회가 끝나고 입학식 행사를 위해 강당으로 이동해야 하는 우리에게 담임선생님은 '기차놀이'라는 명을 내리셨다.

잔존시력이 남은 아이가 기관차가 되고 나머지 아이들은 줄줄이로 엮어서 앞사람의 어깨를 잡고 따라가라는 것이었다. 상황으로 볼 때 매우 적합한 조치였지만 내겐 절대 따르고 싶지 않은 것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저항할 방법도 전혀 없었다.

한 발짝 내딛는 것도 벌벌 떨어야 했던 중도실명 신입생에겐 앞친구의 어깨가 유일한 가이드였기 때문이다.

너무 부끄럽고 피하고 싶어서 잠시 손을 떼어보기도 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를 확인하고 허우적대면서 앞친구를 찾는 더욱 우스꽝스런 상황만을 만들 뿐이었다.

그런 내 속을 알 리가 없는 친구들은 기차놀이라는 말에 기차소리 흉내까지 내면서 뭐가 그리 바쁜지 따라가기도 버거운 속도로 강당을 향해 움직였다.

'기차놀이' 그건 정말 비참한 사건이었지만 그런 상황들의 반복 속에서 나는 장애를 인정하고 새로운 길들을 찾아가고 있었던 것 같다.

오늘 오랜만에 학창시절의 '기차놀이'를 다시 하게 되었다.

같이 밴드를 하는 형들과 성당으로 가는 길! 우리는 명동 한 복판을 넷이 하나가 되어서 활보하고 있었다.

상황은 같았고 무대는 훨씬 보는 사람들이 많은 서울의 한 가운데였지만 나는 많이도 달라져 있었다.

넓은 길과 좁은 골목에서 옆으로 늘어서기도 하고 앞뒤로 줄지어 가기도 하면서 학익진 장사진을 이야기 하기도 하고 오늘 연주할 곡들을 구상하는 나에겐 남들 시선 걱정하는 부끄러움이나 회피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다.

오래전 그날도 그러했지만 우리의 '기차놀이'는 오늘도 그 순간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었고 눈이 불편한 사람들의 그냥 삶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부끄러워하거나 피한다고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

가끔 피자나 초밥 같은 음식을 먹으러 갈 때 젓가락질이나 칼질이 어려우면 손으로 먹겠다고 당당하게 양해를 구한다.

어설픈 연장질로 이리저리 음식조각들을 흩어놓는 것보다는 그게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불편함은 부끄러움이 아니다.

단지 새롭게 찾아온 작은 불편함에 대한 낯설음과 어색함 그리고 다른 시선들에 대한 두려움이 무섭고 부끄러운 것이다.

내가 가진 불편함에 초연해지고 용기 있게 드러낼 수 있을 때 나의 삶도 편해지고 사람들도 자연스레 도와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혹시 길을 가다 줄지어 걸어가는 시각장애인들을 만난다면 함께 기차놀이를 해 보는 것은 어떨까?

기관차 한 대로는 감당하기 힘든 너무 많은 량의 열차들이 매달려 있다면 또 한 대의 기관차는 정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동하는 것이 불편한 시각장애인들을 만난다면 잠시 기관차가 되어서 함께 기차 놀이 하지 않으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