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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7월 03일 08시 02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7월 03일 14시 12분 KST

도심 한복판에서 지뢰찾기

한겨레

어릴 적 사냥용 덫을 본 적이 있다. 보기만 해도 아찔하게 무서운 그것은 설명해 주지 않아도 뭔가 좋지 않은 기분이 들 정도로 그리 좋은 기억은 아니었다.

온통 날카롭고 단단한 그것은 아무리 덩치가 크고 사나운 동물이라도 걸리기만 하면 발목이 잘리거나 심하면 목숨을 내놓아야만 할 정도로 끔찍한 도구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사람에게도 그와 비슷한 덫을 놓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뢰'라고 하는 그것은 덫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끔찍하고 야만적인 무기였다.

우리나라 휴전선 부근에서도 아직도 간간히 60년 전 지뢰가 사고를 만들기도 하고 내전 중인 여러 국가들에서는 그놈 때문에 아이들이 끔찍한 사고를 당하게도 한다.

그런데 그 생각하기도 싫은 녀석이 아직도 도심 한복판에 여기저기 있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무서울까?

평범한 일상 속에서 길을 걷다가 갑자기 다리를 다치게 하고 혹은 다리를 부러지게 하거나 더 심하게 다치게도 하는 그것이 있다면 얼마나 끔찍할까?

정말 없어야 하겠지만 안타깝게도 그것들은 실제로 존재할 뿐만 아니라 그 수가 적지도 않다.

조금 다행이라면 그들의 공격대상은 분명히 정해져 있어서 아무나 피해를 주지는 않는다는 것이긴 하다.

'볼라드'라는 놈이 바로 그것인데 그 놈들의 주요 공격대상은 시각장애인이다.

보도블럭 가쪽은 물론이고 길 중간이나 모퉁이나 가리지 않고 삐쭉삐쭉 솟아 있는 기둥 모양의 그것들은 시각장애인들에겐 공포의 대상이다.

사실 '볼라드'는 누군가 부딪혀도 다치지 않도록 규격이나 재질이 법으로 정해져 있지만 그것을 지켜서 만들어진 것은 별로 없다.

주차를 막기 위해서, 사유지의 영역 표시를 위해서, 잠시 쉬어가는 작은 의자의 역할까지 다양한 목적과 모양을 가진 만큼 공격의 부위와 정도 그리고 피해상황도 다양하다.

지팡이에 잘 걸리지도 않는 낮은 높이의 녀석들은 정강이나 무릎을 벌겋게 물들여 놓는다.

조금 부어오르는 것은 다반사이고 조금 세게 부딪히면 피가 떡이 져서 양말과 발이 떨어지지도 않게 만든다.

급한 일이 있어서 빠르게 걷다가 부딪히면 다리가 부러지기도 하고 잘 못 넘어지다 보면 훨씬 끔찍한 2차 피해를 당하기도 한다.

이것들이 더욱 무서운 것은 눈이 나쁜 일부만을 공격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놈들의 만행을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직접 만들고 설치한 사람들조차도 그 녀석들의 비인간적인 공격들에 대해선 까마득히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도 한 제자녀석이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가다가 볼라드에 걸려서 넘어지는 바람에 며칠 동안이나 절뚝이면서 학교에 나오는 것을 보느라 마음이 아팠던 적이 있다.

이것들은 명백히 불법구조물인데도 해당구청 관련부서에 민원을 넣어도 잘 해결되지 않는다.

몇 명 되지 않는 시각장애인들만 간간히 요구하기 때문에 우선순위에서 밀려버리기 때문이다.

세상은 함께 사는 곳이다.

나의 작은 이득을 위해 설치한 무언가가 누군가에겐 전쟁의 지뢰만큼이나 끔찍한 것이 되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 그리 마음 편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불법 볼라드 제거가 범국민적 시민운동이 되면 어떨까?

국민들이 합심해서 우리 주변의 보행약자인 시각장애인들의 다리를 보호해 주는 것, 생각하는 것만으로 아름다운 모습 아닌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국민게임으로 사랑받던 '지뢰찾기' 이제는 도심 한가운데에서 국민들이 다같이 하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