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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5월 22일 05시 37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5월 22일 14시 12분 KST

하나만 내려놓으면!

시력을 잃고 특수학교에 입학하고 점자를 배우고 있었지만 특별히 좌절하지 않았던 것은 회복이라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나에게도 역시 두 번째 불이 꺼져버리는 순간이 오고야 말았다. 미르코처럼 물리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은 아니었지만 장애를 가진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내게도 의학적 희망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을 어느 순간 인정하게 된 것이다. 어쩌면 처음 의학적 선고를 받았던 그날보다 두 번째 불이 꺼지던 순간이 내게는 더 견디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두 번째이자 마지막 불빛이 꺼지는 순간 아이러니하게도 더 큰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나를 내려놓는 순간 나머지 모두는 가능성이 되어 있었다.

사람들을 보다 보면 하나의 놓지 못하는 무언가 때문에 많은 것을 잃고 살아간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주위에서 보기엔 집착에 가까운 하나의 욕심이 주변 시야를 가려버리는 무시무시한 셀프감옥을 만들고, 결국 어떤 소리도 듣지 않는 독불장군을 만들어 낸다.

연예인병에 걸려버린 아가씨들은 평생 도달하지도 못할 허리사이즈를 향해 달려가느라 건강도, 세상의 맛난 음식들도, 본연의 충분한 매력마저도 잊어버리고 살아간다. 집착적인 소유욕을 사랑이라 믿어버린 남정네들도 순정남이라는 착각 속에 수많은 짝짓기의 기회를 날려버리고, 천 년 만 년 돈을 쫓는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능력자들은 어느새 돈을 버는 의미조차 잃어버리고 사는 것 같다.

하나만 내려놓으면 한없이 편해질 텐데 각자의 목표가 종교적 신념이라도 되는 듯 사람들은 스스로를 끝없는 미로 속으로 더욱 깊숙이 밀어넣는 것 같다.

중도에 사고나 병으로 인해 장애를 가지게 되는 사람들에게도 이와 비슷한 집착적 특징이 공통적으로 나타나는데 그건 바로 치료와 회복의 욕구이다.

장애 선고는 현재의 의학으로는 더 이상 치료할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서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질병과 달리 수용과 재활을 필요로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중도 장애인들과 그 가족들은 기적과 같은 몇몇 이야기들의 0에 가까운 가능성 속으로 들어가기만을 원한다. 상상을 초월하는 희한한 것들을 찾아 먹기도 하고 어이 없는 치료의 꼬드김에 넘어가 큰 돈을 탕진하기도 한다.

영화 '천국의 속삭임'을 보면 미르코라는 주인공 소년이 나온다.

미르코는 총기사고로 시력의 대부분을 잃고 특수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그리고 얼마 후 조금 남아 있는 시력마저 잃어버리고 만다. 미르코는 전구가 고장난 것 같다고 사감선생님께 말씀드리면서 스위치를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하지만 전구는 멀쩡히 켜졌다 꺼졌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영화 속에서 자세히 그려지지는 않았지만 미르코가 느끼는 엄청난 좌절감과 슬픔의 느낌으로 보아 소년 또한 다시 볼 수 있다는 강력한 희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내가 더욱 확신할 수 있는 건 나 역시도 미르코와 비슷한 상황을 겪었기 때문일 것이다.

시력을 잃고 특수학교에 입학하고 점자를 배우고 있었지만 특별히 좌절하지 않았던 것은 회복이라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눈에 좋다는 각종 음식과 약을 먹고 방학이면 요양과 기치료를 받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나에게도 역시 두 번째 불이 꺼져버리는 순간이 오고야 말았다.

미르코처럼 물리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은 아니었지만 장애를 가진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내게도 의학적 희망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을 어느 순간 인정하게 된 것이다.

어쩌면 처음 의학적 선고를 받았던 그날보다 두 번째 불이 꺼지던 순간이 내게는 더 견디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마지막 잎새'를 바라보던 소녀처럼 내겐 세상 모든 목표가 시력의 회복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영화 속 미르코가 그렇듯 짧지만 엄청난 고통의 시간을 지나면서 신기하게도 새로운 가능성들이 보이기 시작했던 것 같다.

미르코는 음향감독이라는 꿈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고 나 또한 시각장애인들이 할 수 있는 또 다른 것들을 보기 시작했다.

두 번째이자 마지막 불빛이 꺼지는 순간 아이러니하게도 더 큰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나를 내려놓는 순간 나머지 모두는 가능성이 되어 있었다.

이루지도 못할 집착에 가려 있던 세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난 시력을 내려놓는 것을 두려워 한 것이 아니라 내 머릿속을 채우고 있던 왜곡되고 뒤틀린 장애를 두려워 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내려 놓지 못하는 하나는 나의 의지가 아니라 세상의 잘못된 편견이나 왜곡된 관념들로 인한 것이라 생각한다.

하나만 내려놓으면 세상이 보이고 가능성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