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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4월 21일 06시 32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6월 21일 14시 12분 KST

아파야 공감할 수 있다면

아이를 보낸 어느 어머니의 말 속에서 천안함 사건이 있을 때 함께해주지 못한 것이 한이 된다는 인터뷰를 보았다. 우리는 누구나 아플 수 있다. 더 아플 수도 있고 더 슬플 수도 있다. 강력하게 부정하고 타자화할 수 있겠지만 누구도 완전히 예외일 수는 없다. 완벽하지도 안전하지도 않은 세상 속에서 누군가가 겪어야 할 아픔을 그들은 우리 대신 겪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만큼 아파야 공감할 수 있다면 모두가 아팠으면 좋겠다.

연합뉴스

사람들은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이나 짐작할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일을 보게 되면 순간적으로 공감의 능력이 무뎌지게 되는 것 같다.

길을 가다가 넘어져서 피를 흘리는 아이를 본다면 많은 사람들이 아이를 달래주고 상처를 닦아주거나 하겠지만 쓰러져서 죽어있는 듯한 누군가를 발견한다면 설마 아니겠지 하고 지나쳐 버리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뉴스를 보다가도 몇천만원이나 몇억원 정도를 잃어버렸다는 기사를 보면 내 일인양 가슴이 철렁 내려앉지만, 몇 조 단위의 횡령이나 비리를 저질렀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쉽게 짐작할 수 없는 나머지 오히려 흘려보게 되는 것 같다.

주변에서 들리는 시끄러운 소리에는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이 지구가 돌아가는 큰 소리는 못 듣는 것처럼 공감능력의 범위를 넘어서는 일에 대해서는 오히려 무감각해 지는 것 같다.

더군다나 그 일이 내게는 일어나지 말았으면 하는 끔찍한 일이기라도 하면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침착함으로 타자화를 시켜버리기까지 한다.

작은 가스불만 튀어도 호들갑을 떠는 사람도 길에서 어깨만 부딪혀도 인상이 찌푸려지는 사람들도 남의 일이라면 불구경도 싸움구경도 최고의 구경인 양 몰려들어 감상한다.

접촉사고만 나도 온갖 정신적 피해까지 계산하는 사람도 고속도로의 남의 큰 사고는 뭐가 그리 궁금한지 힐끗힐끗 쳐다본다.

길거리에 지나는 장애인들을 무언가 특이한 것을 본듯 바라보는 사람들의 맘 속엔 나와는 관련 없을 것 같다는 강력한 방어기제와 특출난 타자화의 능력이라도 있는 것 같다.

세월호가 바닷속으로 침몰한 지 벌써 1년이 지났다.

우리는 가족 중 누구라도 하늘나라로 보내게 되면 명백한 원인을 안다고 해도 그 아픔을 쉽게 씻지 못할 것이다.

하물며 그게 어린 내 동생이나 내 아들 딸이라면 어떨까?

그 아이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면 그 마음이 어떨까?

일 년이면 몇 차례씩 있는 장례식장에서 한 사람의 마음조차 위로하지 못하는 우리에게 수백명의 아이들을 데려간 끔찍한 사건에 대한 공감능력이 있을 리 없다.

내 어머니 아버지의 아픔조차도 위로해 드리지 못하는 우리가 단원고 부모님들의 눈물을 닦아 줄 수 있는 뾰족한 방법도 있을 리 없다.

그렇지만 공감할 수 없다고 외면할 필요는 없다.

도와줄 수 없다면 쓸데없는 아는 척이라도 말았으면 좋겠다.

우리에게 언제부터 세금에 대한 그토록 진한 애착이 있었단 말인가?

아이를 보낸 어느 어머니의 말 속에서 천안함 사건이 있을 때 함께해주지 못한 것이 한이 된다는 인터뷰를 보았다.

우리는 누구나 아플 수 있다. 더 아플 수도 있고 더 슬플 수도 있다.

강력하게 부정하고 타자화할 수 있겠지만 누구도 완전히 예외일 수는 없다.

완벽하지도 안전하지도 않은 세상 속에서 누군가가 겪어야 할 아픔을 그들은 우리 대신 겪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만큼 아파야 공감할 수 있다면 모두가 아팠으면 좋겠다.

그들의 의문을 풀어줄 수 있는 사람들, 그들의 마음을 위로해 줄 수 있는 사람들, 세상을 안전하게 바꿔줄 수 있는 사람들도 아파야 깨달을 수 있다면 모두 아팠으면 좋겠다.

아니 이제라도 세상 많은 사람들이 아프기 전에 아픈 사람들을 위해 짧은 기도라도 올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