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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3월 18일 07시 58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5월 18일 14시 12분 KST

줄기세포 이야기

장애도 치료될 수 있다는 유명하다는 박사님의 한 마디에 담담하게 살아가던 장애인들의 희망은 먼 미래의 계획까지 선명하게 그려나갈 정도로 앞서서 커지고 있었다. 다리가 불편한 누군가는 축구선수를 꿈꿨고 들리지 않던 누군가는 음악가를 꿈꾸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 역시도 멋진 스포츠카를 타고 어딘가를 달려가고 있었으니 말이다. 논문이 조작되었다는 소리가 들리고 박사님을 규탄하는 시위까지 생겨났지만 나는 아니 우리는 그의 편이었다. '줄기세포'와 관련된 기본적인 지식도 없었지만 내가 온전히 박사의 편을 들 수 있었던 건 그는 희망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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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한 선생님께서 시험점수 80점을 기준으로 새로 나온 패스트푸드점의 치킨을 상품으로 거신 적이 있었다. 돌이라도 씹어먹을 듯한 먹성 좋던 우리들에겐 그보다 더 강력한 동기유발장치도 없었다. 밤새 자료를 공유하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나서야 전쟁터에 나서는 장수의 비장한 심정으로 문제를 마주 대할 수 있었다. 문제들의 예상치 못한 배치와 함정들로 인해 곳곳에서 고전을 겪어야 했지만 험난한 전투 끝에 80점이라는 고지는 겨우 달성해낼 수 있었다.

시험점수가 발표되던 날 머릿속은 온통 치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점수는 예상대로 나왔고 남은 것은 선물증정식뿐이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약속이행 불가라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선고를 태연하게도 내리셨다. 반 평균 하락이 이유였는데 납득할 수 없다는 나름의 저항에도 먹을 것 때문에 공부하느냐는 꾸지람만이 돌아올 뿐이었다.

별것 아닌 사건이지만 지금까지도 기억나는 것을 보면 정말도 억울했던 것 같다.

희망과 노력을 이용당했다는 뭔가 큰 배신감은 한동안 선생님에 대한 불신으로까지 이어졌던 것 같다.

얼마 전 '제보자'라는 영화를 보면서 그보다 몇 배는 됨직했던 희망 고문의 과거가 떠올랐다. '줄기세포' 그것은 나처럼 뭔가의 부족함을 가지고 살아가던 이에게는 전부와도 바꿀 수 있는 궁극이었다.

하루하루 성과들이 발표되고 기사로 나올 때마다 한 글자라도 놓칠까 읽고 또 읽고 따로 스크랩까지 해 둘 정도였다.

임상시험이 임박했다는 소문과 함께 그와 동반될 어마어마한 부작용에 대한 경고들도 함께 쏟아졌지만 그걸 감수하고서라도 1번 실험대상이 되고 싶다는 열망이 더 강했다.

장애는 약간의 불편함이라고 떠들고 다니는 나에게조차도 '줄기세포'라는 기적의 유혹은 모든 판단을 마비시킬 만큼 강력한 당김이었다.

때때로 장애는 나에게 주신 신의 선물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고 대부분 장애인들은 온전히 장애를 삶의 일부로 수용했다고 고백하지만 그것은 치료할 수 없다는 선고가 만들어낸 강력한 방어기제일지도 모르겠다.

장애도 치료될 수 있다는 유명하다는 박사님의 한 마디에 담담하게 살아가던 장애인들의 희망은 먼 미래의 계획까지 선명하게 그려나갈 정도로 앞서서 커지고 있었다.

다리가 불편한 누군가는 축구선수를 꿈꿨고 들리지 않던 누군가는 음악가를 꿈꾸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 역시도 멋진 스포츠카를 타고 어딘가를 달려가고 있었으니 말이다.

논문이 조작되었다는 소리가 들리고 박사님을 규탄하는 시위까지 생겨났지만 나는 아니 우리는 그의 편이었다.

적어도 우리에게 그는 2000년 전의 메시아와 비견될 그런 존재가 되어 있었다.

논리적인 비판들도 과학적인 검증들도 예수를 핍박했던 그 시대의 못난 지식인들처럼 보일 뿐이었다.

나름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나였지만 종교윤리에 근거한 생명과학에 대한 비판도 일단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기자회견이 열리고 공식적인 결론으로 '줄기세포'의 존재는 없는 것으로 밝혀졌지만 그러고 나서도 한동안 나는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근거 없는 저항들만 마음속 깊은 곳을 꿈틀댈 뿐이었다.

'줄기세포'와 관련된 기본적인 지식도 없었지만 내가 온전히 박사의 편을 들 수 있었던 건 그는 희망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이유에서였는지는 몰라도 사건은 시대의 사기극으로 결말을 맺었지만 나는 아직도 그를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못한다.

1. 나의 좋지 못한 생각들이 조금 남은 희망마저 앗아갈지도 모른다는 본능적인 마지막 몸부림인 것 같다.

기사를 보다 보면 다양한 방법으로 시력을 찾을 수 있다는 연구결과들이 발표되곤 한다.

5년 후 또는 10년 후라는 제법 그럴듯한 상용화단계까지 언급하는 기사들은 대부분 자연스레 꼬리를 감추곤 한다.

무인자동차에 대한 이야기도 최첨단 기술이 복합되었다는 시각장애인용 안경 이야기도 나에겐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충격들이다.

요즘도 방송출연을 하고 난 뒤에는 다양한 방법의 치료를 제안해 오는 사람들이 있다.

기치료에서부터 줄기세포까지 방법도 다양하다.

대부분은 말도 안되는 이야기임을 알지만, 그냥 지나쳐버린 적은 한 번도 없다. 그것은 내게 있어 가장 큰 희망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군가와 작은 약속들을 많이도 하고 산다. 특히 어린아이들에겐 더 쉽게 약속하고 더 쉽게 잊기도 한다.

그러나 그 아이들에겐 그 작은 약속이 평생의 억울함으로 남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주변의 불편한 이들에게 내가 의사가 되고 과학자가 되어서 너를 꼭 치료해 주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순간의 진심으로 던진 약속일 수 있겠으나 들은 이에게는 평생을 두고 기억할 만큼의 기대감일 수도 있는 것이다.

2. 약속은 지켜야 한다. 특히 누군가의 희망을 부추겼다면 그것은 그에게 있어 전부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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