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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5월 04일 07시 45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07월 04일 14시 12분 KST

놀이동산의 비밀

5년 전쯤에도 학생투표의 압도적 지지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다는 놀이동산이 소풍 목적지로 결정된 적이 있었다. 조금은 낯선 손님들의 방문에 놀이동산 측에서는 특별할인과 우선탑승도 약속해 주시고 간단한 기념품도 준비하셨다는 소식까지 덤으로 전해주셨다. 이상한 소문이 들리기 시작한 건 수업진행조차 아이들의 들뜸으로 어려워진 소풍 바로 전날이었다. 시각에 장애가 있는 아이들에게는 놀이기구를 못 타게 한다는 괴담에 가까운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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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으로 살면서 가장 불편한 것 몇 가지를 꼽아 보라고 한다면 이동하는 불편함과 활자를 보지 못하는 정도를 말하곤 한다. 이동은 지팡이나 안내견의 도움을 받아 해결하기도 하고 활자도 발달된 보조기기의 도움을 받으면 어느 정도는 해결할 수 있는 좋은 세상이 되었긴 하다. 기차에서도 지하철에서도 전화 한 통화로 안내 서비스를 받을 수도 있으니 전에 비하면 불편함은 훨씬 덜해진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조금 더 어려운 것이 있다면 낯선 곳에 간다거나 예고 없이 찾아오는 고지서나 프린트물 같은 것을 보는 갑작스런 상황들인데 그마저도 높아진 시민의식 덕분인지 아니면 한민족 특유의 정 때문인지 일면식도 없는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극복하곤 하는데 가끔은 당황스러운 경우들을 겪곤 한다.

자주 가는 식당이나 프렌차이즈 음식점 같은 곳의 메뉴는 어느 정도는 알고 있고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중국집에서 짜장면이냐 짬뽕이냐를 선택하는 것처럼 선택의 폭이 그다지 넓을 필요가 없을 때가 많다. 그런데도 굳이 메뉴판 1쪽부터 마지막쪽까지를 괜찮다는 신호에도 본인도 괜찮다면서 낭독봉사를 하시는 점원 분들이 있다. 길을 알려주실 때에는 한쪽 팔꿈치만 내어주시면 얼마든지 따라갈 수 있는데도 백주대낮에 백허그를 해 주시는 아주머니를 만나기도 하고 사랑하는 연인을 곁에 두고 내 팔짱을 깊숙이도 끼고 귓가에 속삭이듯 안내를 해 주는 아가씨를 만나기도 한다. 골목 구석구석으로 들어가야 나오는 우리집 쪽으로 가려고 하면 그 쪽은 복잡하니 큰길로 가라면서 알지 못 하는 쪽으로 팔을 잡아 끄시는 아저씨들도 있고 친절하게 태워주신 버스는 목적지와 반대방향으로 열심히도 달린다. 두 다리는 튼튼하다고 자부하는 나에게 어른이 말하면 들으라는 꾸지람과 함께 UFC에서 테이크다운을 상대에게 퍼붓듯이 억지로 자리에 앉혀주시는 마음 따뜻한 어르신을 만나고 난 몇 분 뒤에는 젊은 놈이 노약자석에 앉아서 눈도 안 마주치고 자는 척 한다는 또 다른 어르신의 꾸지람을 듣고 멋쩍게 일어나기도 한다.

10년 넘게 독거생활을 하는 나에게 낯선 아가씨의 팔짱은 목적지를 바꿔서라도 더 길게 가고 싶은 맘을 들게도 하고 예쁜 목소리의 낭독은 언제까지라도 듣고 싶은 아름다운 연주로 다가오기도 하고 지친 몸을 쉬기엔 노약자 석도 반갑긴 하지만 때로는 도와주시려는 마음과는 다르게 매우 당황스럽고 민망할 때도 있다는 것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도움이 필요한 상황인지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정도만 물어주시면 따뜻한 마음만큼이나 적절한 조치가 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이런 것들은 대부분 세상 살맛 나는 미소를 짓게 하는 즐거운 헤프닝들이다.

그런데 몇 년 전 겪었던 한가지 사건은 아직까지도 이해가 안 되는 엉뚱하고 받아들이기 힘든 배려여서 함께 생각해 보고 싶은 마음에 글을 적는다.

특수학교 학생들도 여느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봄이 되면 맛난 도시락 싸 들고 들뜬 맘으로 소풍이라는 걸 간다. 예전처럼 들로 산으로 가지는 않지만 아이들의 들뜬 반응을 보면 콘크리트로 정돈된 공원이나 입장료 내고 들어가는 놀이동산도 그 나이 또래의 아이들의 추억을 만들기엔 충분한 듯하다.

5년 전쯤에도 학생투표의 압도적 지지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다는 놀이동산이 소풍목적지로 결정된 적이 있었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짜릿함과 정신 없이 거꾸로 매달았다가 공중을 빙빙 돌려대는 어떨떨한 시간들은 시각장애를 가진 대부분의 아이들에게도 신나는 일임에는 틀림 없는 것 같다. 조금은 낯선 손님들의 방문에 놀이동산 측에서는 특별할인과 우선탑승도 약속해 주시고 간단한 기념품도 준비하셨다는 소식까지 덤으로 전해주셨다.

이상한 소문이 들리기 시작한 건 수업진행조차 아이들의 들뜸으로 어려워진 소풍 바로 전날이었다. 시각에 장애가 있는 아이들에게는 놀이기구를 못 타게 한다는 괴담에 가까운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었다. 135cm~140cm 정도의 신장제한은 들어봤어도 그런 것이 있겠냐는 듯 웃으면서 확인전화를 했던 나에게 담당직원은 내부규정이 자세히도 적힌 안내가이드를 읽어주시며, 괴담이 현실임을 각인시켜주고 있었다. 놀이기구 중 일부는 매우 위험하기 때문에 안전사고 방지 차원에서 마련된 예방조치라는 친절한 직원의 설명은 상냥한 웃음소리로 마무리 되고 있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아직 장애인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에 벌어진 잘못되거나 과장된 배려라는 설명만 전해주면 간단히 해결되리라는 희망마저 갖게 할 만큼 직원의 목소리는 너무도 상냥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서 다른 놀이동산에서도 안전하게 이용했었다는 나의 조근조근한 설명들과 시각 외에는 별 문제가 없다는 의학적인 소견도 어느 순간 괴성으로 변해버린 항의도 철저히 교육받은 담당직원의 융통성을 자극하지는 못했다. 아주 위험한 10여가지만 빼면 모두 탈 수 있다는 배려를 가장한 위로는 아이들을 향한 교사의 미안함과 세상을 향한 어이없는 분노만 키워줄 뿐이었다.

몸뚱이는 어른인 중고등학생들을 데리고 위험하니 너희들은 회전목마나 어린이 열차 같은 것만 타야 한다는 말을 하면서 대신 할인도 해 주고 기념품도 준다는 말로 설득하는 게 같은 장애를 가진 시각장애 교사에게 부여된 인솔의 임무란 말인가? 온 정신을 빼놓을 정도로 흔들어대고 들었다 놓았다 하는 놀이기구 안에서 두 눈 부릅뜨고 주변을 살피고 투철한 안전의식으로 양손 손잡이를 굳게 부여잡는 사람이 얼마나 된단 말인가?

눈 꼭 감은 사람들이나 양 손 번쩍 들고 만세하는 사람들은 시각장애인이나 지체장애인들이 처한 위험상황과 뭐가 다르기에 탑승이 허용되는지 내 머리로는 차이점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안전가이드의 설명이 맞는다면 그들은 놀이동산의 위험한 비밀을 모른 채 목숨을 담보로 환호하고 있는 일촉즉발의 위기였던 것이다.

그 후에도 여러 번 시각장애인 대학생들이나 장성한 시각장애인들의 모임에서 같은 놀이동산을 찾았을 때도 별로 달라진 건 없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물론 시각장애인들의 욕구도 다른 여느 사람들과 다르지 않아서 광고장면에서 나오는 최신놀이기구나 가장 무섭다는 예닐곱 가지를 목표로 놀이동산을 찾았다는 사실도 변하지 않았고 말이다.

올해도 봄이 왔고 소풍후보 장소로 거론된 그 놀이동산에 다시 연락을 해 보았다. 국가인권위의 인증까지 받았다는 담당직원의 설명은 몇 년 전의 그것과 거의 변한 것이 없어 보였다. 남녀노소 누구나 몇 만원만 있으면 즐길 수 있는 놀이동산이 우리아이들에게만 또 다른 상처로 또 하나의 사회적 장애선고로 다가오는 일이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었다. 입장료 할인이나 기념품 제공은 내가 느꼈던 낯선 아가씨의 팔짱처럼 아이들에게 잠깐의 기쁨은 되겠지만 결국 아이들이 바라는 배려는 아닐 것이다. 학창시절의 예쁜 추억을 만들어야 할 아이들의 소풍날이 이토록 가슴 아픈 기억으로 남겨졌다는 사실을 그들은 새까맣게 모른 채 엉뚱한 서비스들을 장애인을 위한 배려로 생각하고 뿌듯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기구에 안전이 문제라면 탑승객을 제한하기 보다는 누구나 탑승할 수 있도록 기술적으로 보완하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한다. 비상시 대피에 대한 부분이 걱정된다면 안전요원을 배치하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한다. 돈이 문제라면 장애로 인한 할인은 차라리 없애고 자유로운 이용을 보장하는 게 맞는다고 본다.

배려나 도움은 베푸는 쪽의 생각이 아니라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으로 출발하는 것이다. 올해도 소풍의 시즌이 다가왔다. 다양한 장애로 인해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놀이동산에서만큼은 여느 아이들과 구별되지 않는 천진난만한 웃음을 되찾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