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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4월 11일 13시 56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06월 11일 14시 12분 KST

비너스 뒷얘기

일부 분들이 말씀하셨듯 우리나라의 몇몇 전시관에서 모조품을 만들어 축소된 형태로 시각장애인들에게 별도의 관람실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영박물관에서 엄청난 위험 요인과 비용지출을 감수하면서까지 모조품이 아닌 실물을 전시할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예술감상의 방법이 다르다 하여 시각장애인들은 그 이유의 중심에서 배제되는 것 또한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안승준

*안승준 블로거의 '비너스를 느끼다'는 여기서 읽을 수 있습니다.

어제 하루는 비너스 덕분에 수많은 지인분들의 문자세례와 수만건이 넘는 SNS반응에 파묻힌 하루였습니다. 응원과 격려의 글 남겨주신 분들께도 건강한 비판을 남겨주신 분들께도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한 시각장애인이 살아가는 모습을 되도록 많은 분들과 나누고 싶었던 것이 제가 글을 쓰게 된 가장 큰 목적이었으니 근거없는 악플로나마 관심에 동참해 주신 분들께도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은 것 또한 진심입니다.

장애인의 이야기이지만 조금 유쾌한 화법으로 표현하고 가벼운 소재거리로 풀어내고 싶었던 마음에 다소 자극적인 제목과 실제보다 조금은 과장된 표현들을 사용하다보니 오해의 소지도 생겼던 것 같습니다.

가슴 작은 여성분들에겐 보정속옷을 만들어주고 왼손잡이 기타리스트에겐 줄을 반대로 끼워주는 것 정도의 당연함으로 장애인들에게도 뭔가 보완할 수 있는 것들은 당연히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들의 마인드를 알리고 싶었던 것 이상의 의도는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로 인해 다투시거나 피해를 보실 분들이 없도록 전후사정과 좀더 자세한 설명들은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컴퓨터를 두드리게 되었습니다.

저는 대단히 높은 수준의 시민의식은 가지고 있지 않지만 남들 다 가지고 있는 정도의 두려움과 겁 그리고 최소한의 예의는 뭔지 아는 사람입니다. 보안요원이 다가오기 전에 무작정 손을 얹었다고 기술하긴 했지만 허락이 내려지기 전에 제가 만졌던 것은 조각을 받치고 있던 받침대 정도였습니다.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는 표현에서 다른 분들의 관람을 방해했다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는 것 같던데 경보 같은 것이 울린 것은 아니고 보안요원의 제지신호를 표현한 것이었습니다.

쉽고 재미지게 표현하려다 보니 다큐멘터리 같은 설명이 없었던 부분은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지만 그 또한 누군가를 시험해 보려던 의도가 있었음은 반성하고 있습니다. 다만 일행 중 저 하나만 시각장애인이라는 건 둘째 치고서라도 평소 미술분야에 있어서 만큼은 원치 않는 억압과 차별을 익숙하게 여기면서 살아가던 시각장애인이 새로운 세상에서 본능적으로 발산한 감동에 기인한 호기심이었다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연수에 참여하기 몇 달전 'Who are you?'라는 조각전에 참여한 적이 있었습니다. 광주비앤날레를 연출하셨던 모교수님께서 기획하시고 유명 조각가 수십분이 참여한 대형전시회였습니다. 보통의 전시회들과 달랐던 점은 전시장이 암전상태였다는 정도였습니다. 저는 그 안에서 평소와는 반대 역할인 안내봉사를 맡았었습니다. 점자로 쓰여진 설명문구를 읽어주고 관람객들의 손을 조각품들 구석구석에 안내해 주는 것이 제가 부여받은 역할이었습니다.

처음엔 놀라움을 느낄 틈도 없이 부담과 두려움이 밀려왔습니다. 그분들이 쾌히 내놓으신 작품들의 가격을 미리 들어서 대략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제 글을 처음 보시고 놀라신 분들과 비슷한 심정이었을 것 같습니다. 하루하루 전시가 진행되고 장애아동의 부모님들은 물론 미술전공 학생들까지도 새로운 방식의 관람에 감격하고 감동의 눈물마저 지을 때 뭔가 잘못된 일을 하는 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시가 끝나갈 무렵 전시에 참여하신 조각가 분들조차도 저의 안내와 설명을 들으시고 본인작품에 대해 새로운 방식의 깊은 울림을 받았다고 감사의 인사를 건내주실 때 비로소 예술작품 감상에 대한 제 생각도 조금씩 변해갔습니다.

약간의 사고로 훼손된 조각품을 보시면서도 많은 사람에게 감상하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양한 사람에게 그들의 방식으로 느끼게 하고 그 안에서 재창조되는 뭔가 새로움들 또한 예술이라고 말씀하시던 조각가 선생님들은 그 후에도 '손 끝으로 보는 조각전'이라는 이름으로 수차례 비슷한 전시들을 이어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대영박물관에서 입체지도와 음성안내기를 받았을 땐 놀랍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지만 내가 겪은 한국의 전시회와 비교해 보고 싶다는 느낌도 들었던 게 사실입니다. 받침대 정도를 만졌는데 더 이상의 감상이 허락되지 않았더라면 제가 겪었던 조각전에 대해 말하고 그들에게 우리나라엔 더 훌륭한 문화가 있다고 자랑하고 싶은 삐딱한 애국심 같은 것도 작용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글에서 보셨듯 매우 예상치 못한 감동스토리로 끝이 났고 저에게 있어서는 새로운 생각, 새로운 삶의 방향까지도 만들어 준 엄청난 사건이 되었습니다.

일부 분들이 말씀하셨듯 우리나라의 몇몇 전시관에서 모조품을 만들어 축소된 형태로 시각장애인들에게 별도의 관람실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영박물관에서 엄청난 위험 요인과 비용지출을 감수하면서까지 모조품이 아닌 실물을 전시할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예술감상의 방법이 다르다 하여 시각장애인들은 그 이유의 중심에서 배제되는 것 또한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예술품의 최고의 가치가 보존에 있다고 한다면 사람과 격리된 공간에 최적화된 환경을 만들고 천년 만년 두는 것이 최선이겠지요. 우리 모두의 가장 예의 바르고 반듯한 감상법은 사진이나 모조품을 안전하게 감상하는 거겠구요.

지금의 전시물을 눈으로만 본다고 해도 이런 방식으로는 작품은 계속 훼손된다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단지 누군가 만지면서 감상하면 500년 버틸 수 있는 것을 5000년 정도는 보존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사람의 접근을 차단하는 거겠지요. 5000년간 최대한 눈이 건강한 많은 사람들이 보는 것과 500년간 시각장애인들의 예술품 감상 욕구가 충돌되는 매우 풀기 어려운 얘기인 건 확실하나 전자의 욕구로 인해 후자가 모두 침해받아야 된다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습니다. 단순한 오랜 보존이 목적이라면 일본의 문화재 약탈도 그리스, 로마 신전의 조각상들의 머리를 자르면서까지 대영제국으로 옮긴 그들의 만행도 후에 과학적 보존으로 모두 용서해야 된다는 논리도 정당화 되겠지요.

우리는 종종 정답이 없는 대립가치에서 혼란을 겪습니다. 경제적 논리와 여성이나 아동에게 지불해야 하는 복지의 문제가 충돌하기도 하고 편리한 생활과 자연의 파괴 사이에서도 고민하지만 한쪽 편을 극단적으로 드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장애인과 관련된 문제들도 대부분 그런 것 같습니다. 복지냐? 경제냐? 그리고 소수의 권리 실현이냐? 다수를 위한 효율우선이냐? 하는 문제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비너스의 올바른 감상방식도 복지정책의 올바른 방향도 부족한 제가 결론내리기엔 너무나 어렵습니다. 저와 저의 글에 보내주신 과분한 관심에 다시 한번 감사드리면서 앞으로 제가 던지는 또 다른 화두에 날카로운 지적과 건강한 비판 지속적으로 부탁드리겠습니다.

매체의 위력에 놀란 하루였지만, 시각장애인의 일상적인 이야기에 보여준 관심들이 뭔가 좋은 방향으로 세상이 바뀌어 가는 시동엔진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상쾌한 희망으로 느껴지는 오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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