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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4월 10일 05시 48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06월 10일 14시 12분 KST

비너스를 느끼다

최첨단 보안시스템으로 관리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나의 손은 어느새 신상 위에 얹혀져 있었다. 몇 초도 지나지 않아 요란한 소리와 함께 보안요원의 경고가 들려왔지만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기에 미리 생각해둔 대로 안 보여서 규칙을 몰라서 그랬으니 미안하게 됐다고 했다. 진짜 놀랄 상황은 그 다음에 벌어졌다. 내 말 같지도 않은 핑계를 들은 보안요원이 갑자기 내 손을 잡고 미안하다고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안승준

10여년 전쯤 해외연수의 기회가 찾아온 적이 있었다. 한국장애인 재활협회에서 주최하는 '장애청년 드림팀'이라는 프로젝트였는데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팀을 꾸리고 일정과 기관방문 등을 스스로 기획하고 연수를 진행하는 것이 대략의 내용이었다. 국내최초로 장애인들에게 무료로 해외연수의 기회를 준다는 대대적인 광고 덕분인지 '드림팀'의 경쟁률과 선발과정은 어느 대기업 신입사원 모집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살벌했다. 카이스트 박사, 줄기세포 연구원, 방송리포터 등등등 장애인 중에 이렇게 대단한 사람들이 많았나하는 경의에 가까운 놀람 속에서 진행된 난상토론이 어찌어찌 지나가고 나는 운 좋게도 최고경쟁률을 자랑하던 영국팀의 일원으로 선발되었다. 이력도 스펙도 뭐하나 내세울 건 없었던 나의 눈부신 가능성을 알아보신 심사위원님들의 혜안 덕분이라고 믿고 싶었던 나만의 기대와는 달리 상대적으로 지원자 수가 너무도 적었던 시각장애라는 특수성이 하늘이 내려준 가산점으로 작용되었던 것 같았다.

사실 선발과정이 어땠는지보다는 무료해외연수에 당첨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도 격렬하게 뛰고있는 내 심장이 터지는 건 아닌가를 걱정하는 게 우선이었을지도 모른다. 수학교사를 꿈꾸면서도 특수한 전공이라는 이유로 제대로 된 점자교재조차 구하기 힘들었던 나에게 영국땅 그리고 '장애인과 하이테크'라는 주제는 모든 소원을 들어주는 마법사가 산다는 오즈로의 여행처럼 다가와 온몸 구석구석의 촉수를 자극하고 있었다. 미적분을 만들어낸 뉴턴의 고향이면서 시각장애인 블런킷 장관을 길러낸 영국에서 만나게 될 특별한 교수법과 각종 보조기기들이 너무도 궁금했다. 선진국이라는 막연한 동경이 빚어내는 나의 상상력 속 첨단과학은 당장이라도 내가 겪는 모든 불편함을 해결해 줄듯 SF영화로 제작되어 수개월 준비하는 내내 내 꿈을 채워가고 있었다.

영국에는 예상대로 신기한 것들이 정말 많았다. 초음파 지팡이나 진동모듈과 터치패드를 활용한 시각장애인용 마우스, 세밀한 동작까지도 표현되는 지체장애인용 의수나 의족은 10여년 전이 아니라 지금 봐도 탄성을 자아낼 정도로 엄청난 기술들이었다. 특히 당시 한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말하는 밥솥은 시각장애 독거자취생이었던 내겐 당장이라도 하나 구입하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제품이었다.

하루하루 놀람의 시간 속에서 쉬어가는 일정으로 대영박물관 방문이 결정되었다. 시각장애가 있는 나에게 박물관 견학이란 몇 시간 동안 유리상자나 더듬다 오는 곳일 뿐 컴퓨터로 관련자료를 찾아서 검색하는 것보다도 못한 지루한 시간란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모두를 위해 잠시 희생하겠다는 거만한 맘으로 함께하기로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먼 이국땅까지 와서 그냥 있을 수는 없었기에 안내 데스크에 내 상황을 얘기하고 점자지도를 요구했다. 어제까지도 한국에서는 당연히 받아봤다는 듯이 말하고 있었지만 그런 걸 구경해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난 건 그때부터였다. 안내직원은 간단한 설명과 양각그림이 그려진 입체복사지도를 주는 것은 물론 부족할 수 있으니 참고하라면서 음성안내 mp3플레이어까지 내주었다. 유창한 영어로 녹음된 기계가 한국어로 최적화된 나에게 별 도움이 되지는 않았지만 박물관에서까지 이런 서비스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뭔가 뒷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은 문화적 충격을 주기엔 충분했다. 그러나 스물스물 올라오는 내 호기심은 오히려 더 큰 호기심으로 자꾸만 커져가고 있었다.

머리 잘린 신상으로 가득한 그리스관에 도착했을 때 그 호기심은 구체적 행동으로 표출되고 말았다. 최첨단 보안시스템으로 관리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나의 손은 어느새 신상 위에 얹혀져 있었다. 몇 초도 지나지 않아 요란한 소리와 함께 보안요원의 경고가 들려왔지만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기에 미리 생각해둔 대로 안 보여서 규칙을 몰라서 그랬으니 미안하게 됐다고 했다.

나중에야 동료들의 설명을 듣고 안 사실이지만 난 거기서 그렇게 태연하게 연기를 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그 즈음은 911테러가 발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상황이었으므로 당연히 무섭게 나에게 경고하던 보안요원의 손에도 권총이 들려 있었던 것이다. 정말 뵈는 게 없어도 너무 없었던 게 침착할 수는 있게 만들었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진짜 놀랄 상황은 그 다음에 벌어졌다. 내 말 같지도 않은 핑계를 들은 보안요원이 갑자기 내 손을 잡고 미안하다고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게다가 그리스관에 있는 모든 전시물을 손으로 감상할 권리까지 부여해주었다. 어느 순간 모든 동료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어버린 나에겐 다른 전시관의 전시물들에 대한 내 방식대로의 감상권도 각 관의 보안요원들에 의해 차례로 주어지고 있었다. 파라후관은 내 손 아래 놓여졌고 박물관 내의 모든 비너스들은 나와 진한 스킨십을 나누고 있었다. 나는 그녀들의 신체적 비밀을 모두 아는 60억분의 1의 사나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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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처음으로 감상을 허락해준 요원의 말을 빌리면 수천년된 문화재를 향한 영국인들의 자존심도 한 시각장애인이 문화재를 감상할 권리보다 앞서지는 못한다고 했다. 충격이었다. 그 때부터는 첨단기술이 문제가 아니었다. 영국 장애인들의 모든 생활이 알고 싶었다. 조사하면 조사할수록 놀람과 신기함만 점점 커져갔다. 프리미어 축구 경기장에도 오페라 극장에도 왕립맹인협회에서 지원하는 오디오 디스크립션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었다. 관람 날짜를 미리 지정하면 현직 아나운서나 성우가 장면 설명을 해준다는 믿을 수 없는 사건이 거기에선 자연스런 서비스로 제공되고 있었다. 야구를 좋아해서 야구장을 가지만 상황파악을 위해 라디오 중계가 있는 날을 골라가거나 커플이 앉은 옆자리를 일부러 골라 일면식도 없는 남의 남자친구의 다정한 설명을 몰래 공유하던 나에겐 그저 부럽고 또 부러울 뿐이었다. 공공건물엔 언제든지 휠체어를 빌릴 수 있도록 비치가 되어있고 엘리베이터가 없는 곳에는 이동을 도와줄 수 있는 직원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모두가 그 인간의 동등한 권리라는 한 마디에서 연유된 서비스였다.

일정의 마지막날 나에게 말하는 밥솥을 선물해 주시려던 어떤 분께 충격적인 소식을 들으면서 연수는 마무리 되었다. 밥솥의 제조사가 한국 대기업이라는 것이었다. 기술력은 있으나 국내제품에는 반영하지 않고 보편적설계가 수입제한 규정으로 엄격히 존재하는 수출품에만 적용되는 옵션이었다는 것이 그에 대한 궁색한 설명이었다. 처음 영국팀으로 선발되었을 때 나는 선진국을 만들어낸 하이테크에 대한 궁금증과 기대감으로 보고서의 서론을 써내려가기 시작했었다. 그런데 블런킷 장관을 만들어낸 것이 뭔가 특별한 보조기기나 교수방법이 아니란 걸 알게 되면서 보고서의 방향은 급격히 바뀌고 비너스를 만나게 해준 그들의 인식을 감탄하고 감사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이제 10년 정도가 지나서 국립중앙박물관에도 음성안내 서비스가 제공되고 우리집에도 한국말을 하는 밥솥이 있다. 그렇지만 요즘도 시각장애인들의 대부분은 지원기능의 부족으로 한국 스마트폰을 선택하지 못하고 외국제품을 사용한다. 야구장이나 영화관도 아직은 여자친구 없는 내가 가기엔 전과 달라진 것이 별로 없다. 부족하긴 하지만 10년간 조금씩이나마 변하고 있었음에 감사해야 하는 현실이 아쉽지만 언젠가 우리나라에서도 유관순 누나랑 포옹하고 야구 아나운서들의 설명으로 이글스의 경기를 관람할 수 있는 날이 오리라는 기대를 가져본다.

마지막으로 대영박물관 방문을 계획하고 있는 분들께 작품의 깊은 감상을 위해 시각장애인 연기를 살짝 고민하고 계시다면 들키면 총을 맞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주의하시길 바란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다.

*이 글의 후속 글은 '비너스 뒷얘기'는 여기서 읽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