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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2월 01일 12시 22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2월 02일 14시 12분 KST

"조금만 더" | 나이앤틱 데니스 황 이사님께 보내는 편지

Kim Kyung Hoon / Reuters

짧지 않아 보이던 설 연휴도 어느새 후딱 지나가 버렸다.

30번 넘게 지내온 설명절이라 대부분은 익숙한 풍경들이었지만 올해는 대한민국에 상륙한 게임 하나 때문에 조금은 다른 장면들이 연출되었던 것 같다.

연휴기간 동안 700만이 넘는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접속했다는 걸 보면 '포켓몬고'의 유혹을 비켜간 집안은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윷놀이와 고스톱마저 밀어낸 그 녀석은 우리집에서도 어린 조카녀석부터 환갑 넘으신 어머니의 시선까지 한 곳으로 모으는 가족통합행보를 보여주었다.

전국민적인 물결에 나 역시 호기심을 뿌리치지 못하고 화면 이곳 저곳을 더듬적거리면서 조그만 괴물들을 쫓아다녀야 했다.

이 눈 저 눈을 빌려보기도 하고 여러 소리들에 귀를 쫑긋 세우기도 하면서 나름의 손놀림으로 몇 마리를 잡기도 하고 레벨도 제법 올렸지만 이번에도 시력의 부재는 완벽한 만족감을 허락해 주지는 않았다.

AR이라고 하는 첨단의 기술과 익숙한 캐릭터와의 만남은 많은 사람들에게 그랬듯 시각장애를 가진 이들에게도 관심과 설렘의 영역이었음에도 이번에도 우리에겐 동시간의 접근성이 보장되어지지는 못했다.

그래서 이번엔 조금 용기를 내 보기로 했다.

어린제자들을 위해 또한 시각장애인 후배들을 위해 무엇보다 나를 위해서라도 게임의 개발사인 나이앤틱에 편지를 보내보려고 한다.

작은 연결들 그리고 집단지성의 힘이 모아진다면 나의 작은 노력이 그들에게 전달되고 우리는 게임과 장애인권의 역사에 길이 남을 변곡점 하나를 찍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발칙한 마음으로 말이다.

영어로 쓴다면 더욱 신속히 전달될 수도 있겠지만 다행히 인터뷰를 도맡아 하시는 데니스 황 이사님은 한국분인 것 같으니 더욱 편한 맘으로 글을 적도록 하겠다.


안녕하십니까? 황 이사님! 저는 한국에서 시각장애 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치는 특수교사입니다. 저도 아이들과 같은 시각장애인이기도합니다.

이번 설명절 동안 나이앤틱의 걸작 덕분에 긴 이동시간에도 즐거운 시간 보낼 수 있게 해 주심에 먼저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전 시력이 전혀 없지만 여러 가지 다양한 사운드효과 덕분에 조금의 도움을 받으면서 게임을 함께 즐길 수 있었습니다.

진동효과 또한 포켓스탑을 찾고 몬스터의 등장을 알아내는데 제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다만 열심히 게임을 진행하여도 가족의 도움이 없이는 스스로의 노력의 결과에 대해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은 큰 아쉬움이었습니다.

사실 터치조작도 정안인들처럼 오류 없이 한 번에 해낼 수는 없었습니다.

조금만 더 자세한 사운드 효과만 있다면... 메뉴만 읽어줬더라면... 조금만 더 신경을 써 주었더라면 정말 그 조금만에 대한 마음이 게임을 하는 내내 간절했습니다.

마치 그 조금의 간극이 사회에서 보이는 장애에 대한 작은 인식의 차이처럼 느껴졌습니다.

저는 보이지 않지만 지금 컴퓨터의 스크린리더를 사용하여 편지를 쓰고 있고 스마트폰도 원활히 활용할 수 있습니다.

기술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이러한 수준의 기술력이라면 게임의 터치조작도 분명 가능한 일이라고 확신합니다.

제가 직접 게임을 해 본 경험으로는 모든 것을 다 음성으로 읽어주거나 하지 않아도 지금의 효과들만 조금만 더 정밀하게 수정한다면 시각장애인들도 함께 게임을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컴퓨터가 처음 나왔을 때도 스마트폰 역시도 처음부터 시각장애인들에게 그 접근성을 허락해 주지 않았습니다.

또 다른 소프트웨어가 만들어지고 덧붙여지는 동안 늘 우리는 몇 년간의 시간차를 두어야 했습니다.

황이사님의 인터뷰처럼 AR은 이제 걸음마 단계이고 앞으로 이 기술은 다양한 분야에 응용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 단계에서부터 보편적 설계가 이루어진다면 앞으로의 응용분야에서도 시각장애인들은 소외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는 약 25만여명의 시각장애인들이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도 1억명에 가까운 시각장애인들이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특히 포켓몬고의 주요 고객인 어린 시각장애인들은 더욱 간절한 마음으로 게임의 플레이어가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세계의 평화를 위하는 일은 핵을 없애고 전쟁을 그만두게 하는 거창한 일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눈이 보이지 않아도 귀가 들리지 않아도 같은 문화를 공유하고 같은 기술의 혜택을 누리고 웃음을 공유하는 일만큼 평화로운 일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사님은 작은 스타트업의 작품이 이렇게 큰 영향을 끼칠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포켓몬고'가 시각장애인들에게 접근을 허락하게 될 때 그것이 창조해낼 아름다운 가치들은 그 전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것이 되리라고 확신합니다.

나이앤틱의 '포켓몬고'는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성공한 크기가 큰 만큼 시각장애를 가진 친구들은 또 한 번 아쉽고 또 한 번 소외되어 버렸습니다.

기술은 가장 힘들고 소외된 사람에게 적용될 때 가장 많은 사람들을 편하게 즐겁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부디 숙고해 주시어 나이앤틱의 걸작을 보다 많은 사람들, 특히 눈이 보이지 않는 아이들에게도 선물해 주십시오.

앞으로 또 다른 명작들의 디자인에도 장애를 가진 아이들도 생각해 주시어 하나의 작품이 세계의 어두운 곳곳을 밝혀주는 기적을 만들어 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이사님과 회사의 결심은 게임은 물론 장애인권의 역사에서도 큰 변혁의 시작점이 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노벨평화상 후보에 작은게임 회사가 올라가는 그날을 기대하며 제 편지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