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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1월 02일 10시 19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1월 03일 14시 12분 KST

있을 때 잘하자

Andrew Paterson via Getty Images

일주일에 6일을 출근하던 때가 있었다. 그땐 그것이 당연하다 생각했고 토요일의 조기퇴근만으로도 주말의 설렘을 느끼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서양의 어느 나라는 주5일 근무를 한다더라는 이야기에 민족성의 게으름마저 떠들어대던 나였지만 한 달에 두 번쯤 토요휴일이 시작되던 그때 노동의 효율성과 경제적 가치를 교묘하게 합리적 논리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의 모든 학교가 토요일을 일요일에 흡수통일 시키던 20대 어느 날 난 다음날 걱정 없이 술을 먹을 수 있는 날이 일주일에 이틀이나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오 필승 코리아'를 외치고 있었다.

주6일이 주5일이 되었다는 것이 나의 생활에 있어서 혹은 나라의 경제와 국민들의 삶의 가치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었지만 그것은 적어도 나의 지극히 주관적 감정학적에서는 대변혁적 사건이었다.

감사했고 감사했고 또 감사했다. 그 대상이 누구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감사하고 또 감사한 일이었다.

2017년의 새해가 밝은 오늘 난 더 이상 토요일을 쉬는 것에 대해 감사하지 않는다.

나의 교사 생활이 겨우 10년 조금 넘었다는 것을 감안할 때 그 엄청난 사건이 일어난 지 겨우 몇 년쯤 지났을 뿐인데 난 너무도 익숙해진 나머지 주4일 혹은 그 이하만이 나의 체력이 감당할 범위라고까지 농담처럼 말하고 다닌다.

사실 주5일의 환희는 시행 채 몇 달도 지나지 않았던 어느 토요일날 습관적으로 출근시간에 놀라 일어나던 나의 발작이 사라짐과 동시에 익숙함이 되었던 것 같다.

12월이 1월이 되고 나이와 년도의 숫자가 하나씩 올라가고 있는 요즘 SNS에서는 과거 오늘의 내 글들을 알림으로 알려주고 있다.

기특한 12월의 승준이들은 뭐가 그리 감사한지 매년 장문의 감동을 남겨 놓고 있었다.

새로 만난 인연에도 새로 맡은 일에도 처음으로 갖게 된 작은 물건들에도 그는 몇 년 전 토요일을 향해 그랬듯 온 우주의 에너지를 담아 감사함을 표현하고 있었다.

1월의 승준이들이 그 모든 것들을 익숙함과 당연함으로 단 며칠 만에 묻어버릴 것도 모르는듯 그 진심은 너무도 고결해 보이기까지 했다.

1월의 승준이들은 새로운 결심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토요일의 감동을 바라고 있었다.

간절했고 절실했고 굳은 결의도 있었다.

그것은 또 다시 12월의 승준이에게 감동을 주는 시작점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사이에 난 그 전의 감사함들도 자연스레 무딘 익숙함으로 만들고 있었던 것 같다.

파란 토요일이 언제 빨간 토요일이 되었는지조차 잊는 동안 잊지 말았어야 할 감동들마저 색을 바래가고 있었던 것 같다.

어느 12월의 승준이가 말했다. "오늘은 가족과 함께 한 연말파티! 어머니는 나에게 나의 아들로 태어나줘서 고맙다고 하셨다. 나를 세상에 만들어주신 분들께 감사하는 오늘이다."

요 며칠 어머니 아버지와 저녁을 보내고 있는 요즘 문득 그 분들이 아직 내 곁에 그대로 계신다는 것이 또 다른 감사함으로 다가왔다.

너무도 익숙해진 가족들 그리고 또 다른 익숙함들 그 많은 것들이 아직 내 곁에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런 감사로 다가왔다.

12월의 승준이들이 끄적였던 그 많은 대상들이 아직 내 주위에 그대로 있어주고 있다는 것이 너무도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난 여전히 건강하게 일을 하고 소중한 인연들과 만나고 행복한 이야기를 글로 쓰고 있다.

새로운 태양이 뜨는 1월의 아침들! 새로운 다짐도 좋고 또 다른 결심도 좋지만 오래된 감사를 너무 빨리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젯밤의 어머니 아버지와의 술자리가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아주 오랫동안 나의 타임라인에 그 날들을 채워줬으면 좋겠다.

나의 사람들 나의 일들 내가 가진 삶의 이유들이 오랫동안 나와 함께 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