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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23일 10시 39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12월 24일 14시 12분 KST

두 가지 선물 | 바우처 택시와 화면해설 영화

Tetra Images via Getty Images

최근 나에겐 두 가지 아주 기쁜 일이 있었다.

하나는 바우처 택시의 등장이고 또 하나는 영화관에서의 화면해설 영화 상영이었다.

바우처 택시는 서울시와 콜택시 회사가 협약을 맺고 시각장애인들에게 택시요금의 일부를 지원해 주는 서비스이다.

덕분에 나는 지하철이나 버스가 닿지 않는 곳에서의 약속도 대중교통이 끊기는 늦은 시간의 모임에서도 커다란 부담과 걱정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낯선 사람에게 택시를 잡아달라고 부탁을 할 필요도 심야할증이 잔뜩 붙은 비싼 택시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 것은 나의 활동반경을 늘려준 것은 물론이거니와 당당함과 여유까지 덤으로 선물해 주었다.

화면해설 영화 상영은 대형영화관 몇 곳에서 한 달에 한두 번 정도의 날짜와 시간을 정해서 자막과 화면해설을 첨가한 베리어프리의 형태로 영화를 상영해 주는 서비스이다.

그 전에도 여러 복지 관련 사이트에서 MP3형태로 제작된 화면해설영화를 보긴 했지만 영화관에서 그것도 개봉시기에 맞춰 최신 영화를 해설과 함께 볼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겐 아주 오래 전 첫 크리스마스 선물과 비견될 만큼의 사건이었다.

난 빠르게 전개되는 액션신도 감정표현을 위해 음악으로 뒤덮은 중요한 장면도 놓치지 않고 제대로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다른 관객 눈치 봐 가면서 동행자에게 설명을 부탁하지 않아도 되었고 내 걱정하느라 화면에 몰입하지 못하는 동행자에게 미안한 맘을 가지지 않아도 되었다.

무엇보다 서로가 민망해서 극도로 제한받고 있었던 야한 장면에 대한 접근성이 확보되었다는 것은 작품의 이해도와 나의 만족도에 천지가 개벽할 정도의 변화를 이끌어 내 주었다.

마치 문화적 개안수술을 받은 느낌은 상영하는 장소가 아무리 멀어도 시간을 쪼개어서 찾아갈 만큼 내게 또하나의 선물이 되어 주었다.

이 글을 보게 되는 많은 사람들은 기껏해야 택시 몇 푼 할인해 주고 영화 한 편 보는 것이 뭐 그리 엄청난 일인가라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택시할인이 월별 제한횟수가 있다는 것이나 영화상영도 지정된 장소에서 지정된 시간에 그것조차도 한 달에 한두 번이라는 것을 알게된다면 더더욱이 나의 반응을 호들갑이라 여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나는 지금 너무도 즐겁다는 것이고 그 사건들은 내게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아주 기본적이고 당연하게 누리던 제도와 서비스들인데 나는 누리지 못하고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 어쩌면 나에게도 당연히 여겨왔었기에 그 감정이 더 큰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당당하게 외치고 살아간다고 하고 있었지만 아직도 많은 부분 불평등과 포기를 익숙하게 여기고 살아가는 불쌍한 사회적 약자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세상엔 아직도 많은 부분이 내게 또 다른 기쁨과 감동을 주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것 아닌가?

지금까지 찾아내지 못한 것은 억울하지만 앞으로라도 열심히 찾아낸다면 대다수에겐 평범한 것들이 내겐 매 순간 엄청난 희열로 다가올 수 있지 않을까?

어릴 적 에디슨이나 뉴턴 같은 옛날 과학자들을 부러워했던 적이 있다.

그것은 그들의 위대한 발견이나 발명에 대한 존경이 아니라 아무도 그것을 발견하기 전에 태어난 것에 대한 원초적 시기에 가까웠다.

문명이 발전하고 과학이 진보하기 전에 태어났기 때문에 기회도 많지 않았겠냐는 말도 안되는 투정 같은 것 말이다.

그런데 그 말대로라면 지금 나도 사회적 약자 안에서 에디슨이나 뉴턴의 기회를 가지고 있는 것 아닐까?

영화 한 편에 택시 한 번에 감동받는 지금의 상황은 찾아낼 것도 고쳐야 할 것도 도처에 기회로 널려있는 기회 아니냐는 말이다.

오늘 나를 기쁘게 해준 모든 서비스도 제도도 나에겐 정말 진심으로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아직은 찾아내야 할 권리와 만들어 가야 할 환경이 더욱 많은 것 같다.

평범한 것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전기와 전구를 선물해 주기 위해 조금 더 노력하고 조금 더 찾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