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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09일 09시 12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12월 10일 14시 12분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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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piterimages via Getty Images

특수학교에 있다 보면 종종 장애인을 위한 물건을 새로 만들었다고 검토나 자문을 의뢰해 오는 경우가 있다.

손으로 글을 읽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기인이 찾아오기도 하고 최첨단 기술을 활용한 무언가를 만들었다고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시각장애인 당사자의 필요성과 큰 상관이 없거나 겉보기에만 그럴듯한 것들이어서 특별히 큰 기대를 갖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번 전화는 살짝 내 관심을 끌어 당길 정도로 새로운 시도여서 의뢰의 주인공이 조금은 기다려지기까지 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물감이 그것이었는데 어쩌면 그들의 명문대 간판이 나의 신뢰도를 급상승시킨 것일 수도 있겠으나 물감이라는 소재는 그 자체만으로도 보이지 않는 내게 주는 느낌이 신선했다.

향기와 질감 거기다 3D기술까지 결합한 그것은 시력이 없더라도 그리는 것은 물론 스스로 그린 그림을 확인할 수 있다고까지 했다.

내심 불가능의 영역이라 여겼던 한 조각이 가능의 향기를 풍겨올 때의 기분은 사실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다. 로또의 숫자가 연 속으로 서너 개 정도 맞아갈 때 떠올리는 수백억의 지출 계획들처럼 내 머릿속은 그들을 만나기도 전부터 물감을 활용할 수 있는 응용분야에 대한 생각들로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온갖 과장을 섞은 홍보가 전교생에게 모두 전해졌을 때쯤에 드디어 기다리던 님을 만날 수 있었다.

샘플이 하나 밖에 없어서 여러 아이들에게 보여줄 수는 없었지만 세계 최초의 시각장애인 물감발표라면 특별한 첫 번째 경험자가 되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사전인터뷰가 꽤나 길고 진지하게 이뤄진 다음 작은 무언가가 손에 쥐어졌다.

작은판에 조금 꺼끌거리는 것들이 묻어있었는데 그림이라고 했다. 내가 느끼기엔 맨질맨질한 판에 모래나 밥풀들이 눌어붙어 있는 정도로 느껴지는데 그것은 분명히 그림이라고 했다.

아무리 열심히 만져도 처음의 느낌과 큰 차이가 생기지 않았지만 그것은 단지 기초연구를 위한 첫 번째 테스트일거라 생각했다. 그것이 무궁화 그림이라는 것은 그 정체를 귀로 듣고 난 이후에도 내 손과 코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지만 뭔가 다른 것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기다렸다. 혹은 적당한 훈련을 거치면 적응할 수 있는 또 다른 과정이 필요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날 만진 어떤 그림도 끝내 내게 그 모양을 스스로 알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해 주지는 않았다.

직접 그려보라며 내민 파레트의 물감조차도 내 손은 그들 사이의 다름조차도 명확히 구별해 낼 수 없었다.

조금씩 크기가 다른 알갱이들이 들어있었는데 아주 큰 차이가 아니어서 단계별로 나누어진 그것들은 내게 있어서만큼은 어떤 개성도 보여주지 못했다.

각자가 가진 향기마저도 서로 뒤섞여서 분간이 되지 않았고 무엇보다 그것들을 운 좋게 분류한다 해도 과연 그들의 고유의 향기 혹은 질감이 어떤 색깔을 가지고 있다는 것인지 추측하는 것은 또 하나의 불가능이었다.

예정한 시간을 모두 마치기도 전에 학생들과 나는 그리는 것도 감상하는 것도 포기선언을 할 수밖에 없었다.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멀리서 찾아온 손님들의 표정도 점점 굳어져가고 있음은 어두워져가는 목소리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었다.

또 하나의 무모한 시도로 끝나고 있었다.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서 시작한 고민, 그것은 이번에도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겐 어떤 의미도 주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미안했다. 그냥 멀리서 온 그들에게 미안했고 고민의 시간들이 안타까웠다.

뭐라도 용기를 주고 위로를 주고 싶어서 물감들을 다시 만져보고 묻혀도 보았다.

그런데 그때 단순한 깨달음이 하나 머리를 스쳤다. 물감의 색종류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조금의 노력이 동반되면 몇 가지 색은 구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보지 않고도 어떤 것을 그려낼 수 있고 다시 기억하고 감상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색으로 그리고 있는지는 여전히 판단할 수 없었지만 그것은 다시 감상할 때도 우리에겐 큰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다양한 색도 명도도 채도도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억지로 강제할 필요가 없었다.

화려한 색감과 표현들을 사용한 그림들도 보는 사람들의 망막이 기준이지 결국 그것조차도 본질은 아니라면 우리도 그냥 우리가 느끼는 최대한을 그려내면 그것 또한 의미 있는 그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피카소의 추상화를 우리가 보고 느끼듯 자유롭고 다양한 우리만의 표현을 담아낼 수 있다면 혹시 이 물감은 시각장애인 피카소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개성과 다름을 누구보다 강조하면서도 획일화된 미술에 대한 생각이 내 머리로 하여금 새로운 물감을 아주 쉽게 실패라고 단정해 버리게 했던 것이다.

서로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완벽히 똑같은 결과물을 향하게 해 주는 것! 그것은 어쩌면 도움이 아니라 고집이고 고정관념이고 욕심일지 모른다.

단순하고 꺼끌꺼끌한 물감이지만 우리는 처음으로 우리가 우리 나름대로 보았던 것을 그려낼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우리의 작품을 보고 이상하다고도 하고 무슨 그림인지 모른다고 말하겠지만 우리도 그들의 작품을 볼 때 그렇게 느낀다.

예술과 창작은 자유로운 개인에서 출발한다고 믿는다.

우리 아이들도 스스로 느끼는 것들을 마음껏 그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림도 그리고 세상도 그리고 그러면서 남들처럼이 아닌 나답게를 자신 있게 그렸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