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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2월 23일 09시 52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2월 23일 14시 12분 KST

설현, 조은비, 그리고 섹스 마케팅

성적으로만 소비되는 정치상품, 조은비

"넌 그냥 벌리기만 해"

"별풍선주랴?"

"철학은 개뿔... 뽀썁방에나 들락날락"

얼마 전 직썰에 발행된 아이엠피터님의 글(http://www.ziksir.com/ziksir/view/2987)에 달린 댓글이다. 우리는 웬만하면 댓글을 지우지 않지만 이 댓글들은 바로 삭제했다. 이건 어떤 사안에 대한 '이견'도 아니었다. 이해해줄 수 있는 수준의 분풀이도 아니었다. '새누리당 간판을 달고 나온 썩 유능하지 않은 여성 후보'였던 조은비는 여러가지 합리적인 비판이 가능한 맥락이 제외된 채 그저 '여성'이라는 이유로 비난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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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글을 편집하고 난 뒤 썸네일을 만들며 일종의 개인적인 시위로서 그녀의 얼굴을 물음표로 가렸다. 여자인 것을 보지 말자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정치상품으로서의 조은비를 성 상품으로 소비하지 말자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여전히 조은비는 성 상품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었다. 2012년 총선 당시 새누리당은 조은비와 비슷한 맥락으로 여성후보를 내보낸 이력이 있다. 그 '젊고 예쁜 여성'후보였던 새누리당 박선희 후보는 전해철 민주당 후보와 TV토론을 벌였다. 박선희 후보는 아는 게 많이 없었는지, 제대로 된 질문도 답변도 하지 못하다가 결국 중간에 토론장을 뛰쳐나가는 해프닝을 벌였다. 우스꽝스러웠을 것이다. 자질이 부족한 것이 눈에 선했을 것이다.

그녀는 무능하다고 비판 받을 수 있었고, 자질이 없다고 조롱당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토론장을 박차고 나간 대가'로 '민주, 진보'를 꿈꾸는 사람들의 키보드에 의해서 먹은 욕이 그것뿐만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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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T가 설현을 소비하는 방식

요새 설현이 대세라고 한다. 설현은 SKT매장마다 예쁜 몸매를 드러낸 채 진열되어 있었다. SKT가 설현을 통해 전달하려는 광고메시지가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다. 그래서 오히려 명확해지는 건 있다. 메시지가 사라진 채 내걸린 설현의 몸, 그 자체가 SKT의 메시지였다. 광고 기법이 고도로 발달한 이 때 "SKT의 '설현 마케팅'은 과거 술집에 걸린 주류회사 달력 같다"는 한 SNS 사용자의 비판은 적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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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설현, 우-데이비드 간디

SKT의 과도한 설현 마케팅에 불쾌감을 느낀 사람들은 이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설현의 몸만 팔리는 마케팅에 어떤 꿍꿍이가 있는지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혹자는 '왜 설현만 가지고 그러느냐'고 반문했다. 데이비드 간디와 같은 대표적인 '남성 성 상품'을 들며 '공평하게 팔리고 있다'고 이야기 했다. 성 상품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이며 설현은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자발적으로' 선택한 것뿐이라고 이야기했다. 설현의 마케팅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남자의 성도 팔리고 있잖아

나는 성 상품화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물론 '성 상품화 자체가 나쁜가?'란 질문 자체도 논쟁적이고 유효하다. 우리가 소득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서 '성'이라는 재화를 파는 것 자체가 옳은가에 그른가에 의문도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은 '성 상품화' 자체에 대한 논의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한쪽은 '여성의 성 상품화의 특수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고 다른 한쪽은 '남녀 모두 성 상품화가 되고 있는데 왜 한쪽만 가지고 그러느냐'고 반론하고 있다. 결국 이 이야기는 '여성 혐오' 논쟁으로 귀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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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내가 앞서 말했던 '나는 성 상품화에 대해 반대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다분히 원론적이고 이상적인 이야기에 그친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주체적으로 성을 판매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모두에게 같은 조건이 갖춰졌을 때나 가능하다. 마찬가지로 성 상품화가 다분히 자본주의의 천한 모습이라는 비판, 그리고 성 상품화는 남녀 모두에 금지되어야 한단 양비론적 의견을 덧대기 이전에 과연 성 상품화의 자발성이 남녀 모두에게 공평한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디어 산업에서 여성이 성 상품화를 피할 길은 적다. 영화판에서 자기 입맛대로 대본을 선택하고 캐릭터를 정할 수 있는 여배우가 몇이나 되는가? 아니 영화판에 제대로 된 원톱 여배우가 있기는 한가? '베드신도 감수할 수 있겠냐'란 질문에 '예'라고 대답해야만 비로소 배우로서의 각오를 증명할 수 있는 여배우에게 과연 '비중 있는 성 상품' 배역을 본인 스스로 거부하는 게 가능하기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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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콘 같은 코미디 프로에서도 성 상품은 노골적으로 팔린다. 다만 판매하는 방식이 조금 다를 뿐이다.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후진 상품'을 전시하고 이를 조롱한다. 그리고 그 옆에 '그나마 괜찮은 상품'을 같이 전시한다. 외모품평은 쉴새 없이 이뤄지며 이를 감내하거나 격하게 반응하는 것이 개그포인트로서 소비된다. 이에 대한 돌연변이로서 김숙이 소비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임을 상기해보자.

얼마 전 <무한도전>은 못친소 특집을 방영했다. 그리고 여기에 여자는 없었다. 제작진의 속내를 너그러이 판단하자면 아마도 '열등한 성 상품으로서의 여성'을 세워두고 거기에 '남성 출연자들이 품평하는 그림'이 옳지 못하단 판단을 했을 것 같다. 이것이 한국 미디어들이 여성을 소비하는 방식이다. 성 상품으로 활용하든가, 그 비판이 무서우면 그냥 '배제'하든가. 후자가 조금 더 진보적인 방식이란 게 더욱더 슬픈 사실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남성의 성도 팔리고 있다'는 반론은 얼마나 유효한가? 미디어에 노출되는 남성들에게 '섹시'는 선택할 수 있는 컨셉 중 하나고 외모도 '개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채 폭 넓게 인정받는다. 그러나 여성에게는 얼마나 선택권이 주어지는가? 미디어에서 여성에게 채널을 적극적으로 오픈한 영역은 오직 '걸그룹' 뿐이다. 그리고 여기서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어느 정도'까지 성 상품이 될 것인가 정도다.

성 상품화를 피할 수 있는 '여성'은 얼마나 되는가?

조은비 후보는 새누리당에 의해 다분히 전략적으로 내세워졌다. 어떤 방식으로 팔리든 이슈만 되면 그만이다. 그리고 여기에 조은비 후보의 책임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조은비 후보는 이 뻔뻔하고 몰염치한 '여성 혐오적 마케팅'의 주요한 부조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에 대한 '성적 비판'이 옳은 것은 아니다. 새누리당에 대한 혐오적 비판과 여성에 대한 혐오는 다른 층위다. 새누리당에 대한 혐오는 그저 다른 편(혹은 나쁜 편)에 대한 강한 미움이나 증오로서 표현될 수 있다. 그러나 여성혐오는 다르다. 여성혐오는 사회가 아주 자연스럽게 내재하고 있고 혐오 객체인 당사자의 행동양식을 근본적으로 제약하는 기제다. 내가 '여성 혐오는 여성과 혐오가 합쳐진 말이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단어(=Misogyny)'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조은비와 설현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성 상품이 옳다. 그르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사회 주류가 '여성'을 소비하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다. 미디어계가 유난히 천박해서 그런 건 아니다. 회사를 한 번 둘러보자. '예뻐서 분위기를 화사하게 만들어준다'는 칭찬과 '여성이 타오는 커피가 맛있다는 이야기'는 아직도 버젓이 들린다. 남자들이 모인 수다자리에서 여성에 대한 품평은 일상적이고 노골적이다. 물론 젊고 예쁜 여성에만 한정해서다. 성적 대상화와 성 상품화에 대한 문제제기는 결국 같은 뿌리에서 출발한다.

사회는 여성을 무엇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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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과 남성 모두 주체적으로 성 상품이 될 수 있는 세상은 아마 오지 않을 거다. 나는 앞으로도 여성혐오가 '덜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만 할 뿐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한 쪽으로 너무나 기울어진 운동장을 끝내 '평평하다'고 우기는 사람들이 너무 흔하고 평범해서 비관적인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그런데 가끔 화가 난다. '매춘은 인류의 역사와 늘 함께 해왔다'며 본인의 성 구매를 정당화 하기 전에, 왜 성 노동 제공자는 왜 여자뿐인지를 고민하면 쉽게 나올 답 아닌가? 이 질문에는 또 '호빠'가 있으니 '공평하다'고 대답할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