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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6월 07일 07시 23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6월 07일 14시 12분 KST

메르스 갤러리에서 '남성혐오'가 쏟아져 나온 까닭

생각보다 높은 수위의 발언이 이어지자 사람들은 이들이 여성혐오자들과 똑같이 응수한다고 우려했다. 여성들이 괴물과 싸우다가 괴물이 되어간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메갤러'들은 진지하기보다는 유쾌했다. 살면서 한번쯤 들어왔던 말들을 뒤집는 것 자체가 큰 즐거움이었다. '광대가 양반을 놀려대는 것'을 혐오라 할 수 없듯이 차별받아온 그 사람들이 차별 발언의 주체를 '놀려댄다'고 해서 이걸 곧바로 혐오라고 할 수 없다. 이건 희화이며 풍자에 가깝다. 개그콘서트에서 여성이나 장애인을 놀리면 문제가 돼야 하지만 정치인을 놀리면 풍자로서 이해되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Shutterstock / Elovich

거울, 혹은 괴물의 등장

발단은 장난에서부터였다. 디시인사이드(이하 디시)에 '메르스' 갤러리가 새로 생겼고 디시 내 여성 갤러(디시인사이드 사용자를 일컫는 말)들은 메르스 갤러리로 몰려갔다. 누군가 먼저 말을 꺼냈다.

야 저 메르스 말야... 여자가 먼저 걸렸으면 한국 여자들 노답이라면서 욕 엄청 먹었겠지?

이후 그들은 그 상황을 재연하기 시작했다.

김치남들 메르스나 옮기고 다닌다 쯧쯧.

얼마나 개념이 없으면 병 걸린 걸 알리지도 않냐?

이 같은 게시물이 잇따라 올라오자 남성들도 몰려와 여성 혐오적 발언을 같이 내뱉기 시작했다. 싸움터가 된 '메르스 갤러리'는 폭발적으로 관심을 끌었다. 여성들은 그들이 들어왔던 '여성 혐오' 발언을 주체만 비틀어 올렸고 남성들은 여기에 반발했다. 이 싸움판은 계속 커졌고 관중과 참여자는 점점 더 늘었다. 메르스 갤러리는 그렇게 메르스와는 전혀 상관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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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정도의 수위는 약한 편이다

생각보다 높은 수위의 발언이 이어지자 사람들은 이들이 여성혐오자들과 똑같이 응수한다고 우려했다. 여성들이 괴물과 싸우다가 괴물이 되어간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메갤러'들은 진지하기보다는 유쾌했다. 살면서 한번쯤 들어왔던 말들을 뒤집는 것 자체가 큰 즐거움이었다.

거울 속에 비친 모습

'메갤러'들은 그 동안 들었던 혐오 단어를 하나씩 점령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김치남이라는 단어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남성들에게 성적 순결성을 요구했다. 스타벅스보다 성구매 비용이 더 비싸다며 낭비의 프레임을 덧씌었다. 또 남성들을 성기에 빗댔다. '가슴 작은 여자들을 한탄하는 남성들'의 반대지점에서 '성기가 작은 남성들을 한탄하는 여성들'로 돌변했다.

적어도 '메갤'에서는 여성들에게 설명의무 같은 건 없었다. 이따금 올라오는 '여성 혐오'발언에 그들은 '우리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라고 이야기하지 않았다. 대신 'X지들 부들부들 하노?' 라며 일베의 여성혐오 방식으로 그들을 대했다. 그들은 노골적으로 남성의 '품평회'를 일삼았고 남성 강력범죄 수치와 콘돔을 착용하지 않으려는 남자들의 행태, 그리고 처녀를 밝히는 모습 등을 들이대며 '남성의 열등함'을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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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부치 카린(岩渕華 Iwabuchi Karin 1985~) I '작품(Reflection)' 2009

그들은 분명 폭력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이 폭력 자체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하지만 이들의 '집단적인 언어폭력'이 남성들의 여성혐오와 같다고 평가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괴물이 아니라 거울이었다. 그렇게 되기를 자처했다.

"메갤 사태가 진짜 빵빵 터지게 속시원하긴 한데 그게 옳지 않은건 안다. 그런 식으로 장기 대응에 들어가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폭력에 폭력, 더 큰 폭력에 더 큰폭력 무한궤도 돌순 없잖아. 다만 머리가 있다면 생각이나 좀 해보라고. 여자들은 평생 당한거야."

-트위터 사용자 @insele**-

'메겔 사태'가 쟁취 한 것들

메갤러들은 분명 남성들을 자극했다. 남성들의 반발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화가 난 남성들은 쉽게 메갤을 공략할 수 없었다. 그들은 논리 모순에 빠졌다. 메갤을 '혐오 발언' 이라고 비난할 경우 메갤이 비꼰 여성혐오적 발언을 시인하는 꼴이 되고 그냥 두게 될 경우 '메갤 사태'에 대해 할 말이 없음을 인정하는 모양새가 되기 때문이다. 듣기는 싫은데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그들은 여태까지 해왔던 대로 그냥 여성 혐오 발언으로 대응했다. 하지만 이 싸움터에서 남성은 수적으로 열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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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갤은 하나지만 '여혐 갤'은 사방팔방에 넘쳐난다.

이런 자가당착은 디시인사이드 운영진의 모습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디시인사이드는 처음에 '김치남'이란 단어를 금지했다가 '김치녀'는 왜 그냥 두냐는 반발에 어쩔 수 없이 김치녀도 금지어로 등록했다. 그리고 계속 방관해왔던 갤러리 게시물의 욕설을 처음으로 금지했다. 욕설 금지는 디시 십 수 년의 역사 이래로 처음 벌어진 현상이다. 디시인사이드 운영자들이 '여성 혐오자'인지는 알 수 없지만 특정 내용의 게시물만 제재한다면 디시인사이드도 면이 서지 않을 게 분명하다.

결국 '메겔 사태'는 남성들이 오랫동안 쉽게 내뱉었던 혐오발언을 처음으로 인지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점잖고 품위있게 말해도 듣지 않았던 그들이 '쌍욕과 비하가 난무하는' 메르스 갤러리에 처음으로 반응한 것이다.


그건 혐오가 아니라 전시다

메르스 갤러리가 과연 '또 다른' 혐오공간으로 변할까? 난 이 질문에 앞서 혐오라는 단어를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본다. 혐오라는 단어의 원래 의미는 '미워하고 증오하다' 라는 의미지만 지금 이야기되는 혐오는 'hate speech'에 가깝다. 즉 '동성애 혐오', '유색인종 혐오' 등 특정 인종이나 국적, 종교, 성적 지향, 성별 등에 대해 그릇된 신념이나 편견을 기반으로 증오를 선동하는 발언을 '혐오'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백인 남성의 특권

이런 측면에서 '백인 남성'에 대한 혐오는 존재할 수 없다. 그들은 그릇된 편견의 피해자가 되어본 적도 없으며 그 특성 자체로 차별받아 본 기억도 없다. 반대로 '광대가 양반을 놀려대는 것'을 혐오라 할 수 없듯이 차별받아온 그 사람들이 차별 발언의 주체를 '놀려댄다'고 해서 이걸 곧바로 혐오라고 할 수 없다. 이건 희화이며 풍자에 가깝다. 개그콘서트에서 여성이나 장애인을 놀리면 문제가 돼야 하지만 정치인을 놀리면 풍자로서 이해되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만약 메갤러들의 발언이 '남성 혐오'라고 정의된다고 해도 그것으로 충분하다. 메갤의 글이 남성 혐오로 정의되는 순간 메갤러들이 평생 들어왔던 그 발언이 '비로소' 여성 혐오 발언으로 인정되기 때문이다.

매갤러들이 치켜든 거울. 그 거울 속 내 모습이 추했다면 나는 잘 못 살아왔고 반성을 해야 한다. 반대로 그들이 치켜든 거울에 내 모습이 없다면 그 거울은 나를 비추는 거울이 아니다.

* 이 글은 직썰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