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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4월 21일 10시 51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6월 21일 14시 12분 KST

당신들도 몰랐던 당신들의 기득권

우리 사회에서 '젠더 감수성'에 대한 고민은 생각보다 더 열악했다. '일베뿐 아니라 당신도 여성차별을 할 수 있다. 그건 학습의 문제다'라는 물음에 많은 남성은 ''여성들도 남성을 혐오한다' 라고 하거나 '이게 왜 여성혐오냐'라는 반응을 보였다. '아무 문제 없다'는 선언은 대부분 남자들에게서 출발한다. 여자를 대부분 계약직으로 채워 법망을 피해 가는 기업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면 어김없이 '여자들이 회사에서 희생할 줄 모른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그 차별이 당연하다고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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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에 포함된다

이렇게까지 다양한 반응을 접할 줄은 몰랐다. 며칠 전 쓴 글 '장동민과 일베 밖 남자들'에 꽤나 많은 댓글이 달렸다. 그리고 그 중 상당 부분은 내가 본문에서 지적하고 싶었던 이야기의 반복이었다. 우리 사회에서 '젠더 감수성'에 대한 고민은 생각보다 더 열악했다. '일베뿐 아니라 당신도 여성차별을 할 수 있다. 그건 학습의 문제다'라는 물음에 많은 남성은 '여성들도 남성을 혐오한다'라고 하거나 '이게 왜 여성혐오냐'라는 반응을 보였다.

'모든 사람은 차별받지 않는다'는 선언은 백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수정되었다. 과거에 유색인종은 '사람'에 포함되지 않았다. 조금의 시간이 지나고 여성과 유색인종은 계급적으로 낮은 '사람'이 되었다. 형식적으로나마 유색인종 등 소수자가 '모든 사람'에 포함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이 '사람'의 권리를 얻을 수 있었던 건 바로 '설치고, 떠들고, 말하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어김없이 기득권자들은 권리를 외치는 소수자에게 말했다. '설치지 말고, 떠들지 말고, 말하지 말고, 생각하지 마'라고.

타성에 젖어들 듯 기득권을 옹호하는 것을 누구 하나의 잘못이라고 꼭 집어 이야기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문제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과거에 유색인종을 차별할 수 있었던 흑백분리법은 대부분의 기득권자에게 당연한 권리였다. 그러나 오늘날 우린 아무도 그 법이 정당하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동시대 속 많은 사람들이 '동조'한다고 해서 그게 곧바로 정의될 수는 없다.

젠더를 기반으로 하는 기득권도 마찬가지이다. '아무 문제 없다'는 선언은 대부분 남자들에게서 출발한다. 여자를 대부분 계약직으로 채워 법망을 피해 가는 기업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면 어김없이 '여자들이 회사에서 희생할 줄 모른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그 차별이 당연하다고 여긴다. 출산 후 회사에서 '버려지는' 현상이나 육아의 부담 대부분이 여성에게 맡겨지는 부분은 간과된다. 여성이 승진할 수 없는 구조에 대해서는 '선천적인 능력의 차이'로 치부한다. 모든 게 당연하다고 말한다.

나는 남자다. 그리고 내가 적고 있는 이 비판에 나는 하나도 자유로울 수가 없다. 나는 한국 땅에서 신체 건강한 남성이기 때문에 얻는 기득권을 거부한 적이 없다. 나는 남성이기 때문에 여성이 느끼는 차별을 제대로 느껴본 적이 없다. 어렴풋이 상상하고 대화를 통해 체득할 뿐이다. 그래서 나는 남자 '당신'들을 타자화할 자격이 없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는 '나는 당신들과 다르다'는 선언이 아니라 우리 안의 기득권을 되짚어보자는 이야기다.

팟캐스트라고? 콘셉트라고?

장동민이 팟캐스트에서 문제 발언을 한 건 작년이었다. 그리고 당시에 문제 발언에 대해 사과를 했다고 한다. 그랬던 그의 발언이 지금 다시 수면 위로 떠올라서 문제가 되는 건 가혹한 처사라고 이야기한다. 일부에서는 장동민을 '식스맨'에 떨어트리기 위한 기획이라며 음모론을 제시한다.

나는 지난번 글에서 '장동민' 혹은 '일베'만 비난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장동민 개인이 아니라 일베라는 온라인 커뮤니티가 아니라 우리 안에 성차별적 발언과 여성혐오의 시각을 조명하고자 했다. 논란의 양상은 장동민이 식스맨이 될 자격이 있는가가 아니었다. 온전히 그의 발언이 핵심이었다. 그래서 나는 장동민의 발언이 팟캐스트일 뿐이었다든가 그 팟캐스트가 원래 그러한 콘셉트였는지 여부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다. 바꿔 말하면 '그런 발언을 한 장동민'이 아니라 '장동민의 그런 발언'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래서 장동민 문제는 한낱 연예인 문제가 아니다. 우리 안에 만연한 '여성혐오'나 '성차별' 되돌아볼 기회다. 장동민을 변호하며 자신만의 '착한 성차별'을 늘어놓는 사람들이 함께 고민해야 할 아주 중요한 문제였다. 장동민을 징계하는 게 옳은가는 아닌가는 처음부터 다른 층위의 문제였다.

여자들도 똑같아

여성성이란 으레 정상적인 기능을 수행하기보다는 부차적인 기능에 한정된다. '여자는 꽃'이라거나 '여자들이 많아지니 분위기가 환해진다'는 이야기는 그런 맥락에서 나오는 이야기다. '여자만 수행할 수 있는 기능'이라고 부추겨 세우지만 사실 그건 업무에서 요구하는 기능에 비켜 나가는 경우가 많다. '결단력, 추진력' 같은 단어를 들으면 남성적인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섬세함, 순응적'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여성적인 이미지를 떠올린다. 이런 고정된 이미지는 남성들이 만들어 놓은 기득권 세계에 여성들이 발을 들이지 못하게 하는 장벽이 된다. 여성들이 기업의 임원이나 집단의 리더가 될 수 없는 이유는 그녀가 선천적으로 가지는 '남성성의 부재' 때문이다. 개인이 갖고있는 역량이 '여성'이라는 고정관념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이를 깨기 위해서는 '남자인 척' 해야 한다. 명예 남성 혹은 기 센 여자 되는 것이다. '나는 성별만 여성일 뿐 남자와 다르지 않다'는 확인을 받아야만 비로소 남성들의 지위를 내어준다.

그래서 '계집애 같다'는 말은 바로 모욕이 된다. 남녀 모두에게 그렇다. 남자에게는 남성성의 부족을 의미하고 여자에게는 '2등 시민으로서의 여성'을 재확인하게 된다. "남자들이 받는 모욕은 주로 '남성성의 이탈'에서 출발한다"는 대목은 바로 이 지점에서 유효하게 된다. '남자가 차도 없냐', '남자가 소심하게 왜 그러느냐', '남자가 돼서 그것도 못 참느냐' 는 말은 남성들의 사회에서 '남자 구실'을 못할 때 비로소 나오게 될 말이다. (혹시나 하는 우려로 첨언하자면 이런 비난이 옳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반면 여성에 대한 비난은 양상이 다르다. 이는 남성들의 세계에서 정한 여성들의 '롤'에 관련돼 있다. 유재석의 '요리를 하니 천생 여자다.' 라는 발언은 요리에 대해 성 역할을 부여하고 있다. 부엌은 여자들의 것이라는 인식이다. 남자들은 사회생활을 하며 돈을 벌고 여자들은 집에서 살림을 해야 한다는 가부장적인 발상, 전통적인 '롤'이다. 여자들이 부엌에 처박혀 있는 사회에서 그들은 언제나 '2등 시민'이다. '출근하는 남편을 위해 아침밥을 해주는' 존재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화장 좀 하고 나와'라는 의미도 그렇다. 일터를 밝게 만드는 것은 여자들의 역할이다. 예쁘게 입고 나와서 콧소리를 내며 상급자에게 '애교'를 부리는 모습 말이다. '예쁘게 차려입고 나와야 할' 여자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리더십이나 숙련된 업무스킬이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유재석에 대한 비난이 아니다. 나는 국민MC로서, 늘 도덕적인 강박에서 살아야 하고 그 몫을 잘 수행하고 있는 유재석을 존경한다. 하지만 그 유재석조차도 성차별적 발언에 자유로울 수 없을 만큼 우리의 인식이 무섭다는 이야기를 꺼내고 싶은 것이다.

곽정은의 침대, 박진영의 엉덩이

SBS에서 방영한 예능 '매직아이'에서 곽정은 에디터는 장기하를 두고 "이 남자 침대에서 어떨까?"라는 발언을 했고 해당 발언은 큰 논란이 되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이 발언을 이유로 '매직아이'에 권고 조치를 내렸다. 사람들은 이 발언도 '성차별적 발언'이라고 말했다. '남성들이 여성에게 그런 말을 했다면 어땠겠냐'는 것이다. 하지만 곽정은의 말은 성차별적 발언이 아니라 성적 대상화 발언이다. 이성애자 여성으로서 특정 남성을 성적 객체로 보았단 말이다.

모든 성적 대상화가 나쁜 것은 아니다. 신동엽은 섹드립을 종종 즐겨하지만 그 수위를 잘 지키기 때문에 큰 논란이 되지 않는다. 박진영의 이번 뮤비 '어머님이 누구니?'도 마찬가지다. 여성의 엉덩이를 바라보며 자신의 욕망을 충실하게 드러내고 있다. 욕망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신동엽과 박진영은 모두 대상을 특정짓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욕망을 이야기하기 위한 장치일 뿐이었다.

곽정은은 조금 달랐다. 분명한 대상을 두고 발언했다. 경우에 따라 장기하는 기분이 나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곽정은은 사과해야 한다. 이건 성별이 뒤바뀌어도 마찬가지다. 섹드립이 위험한 경우는 바로 여기에 있다. 대상화 자체가 바로 나쁜 건 아니지만, 당신과 성적소비를 하기 싫어하는 상대에게 계속 성적인 이야기를 이어간다면 상대방은 불쾌함을 느낄 것이다. 오히려 성차별적 요소는 '섹드립'을 계속하는 여성에게 '싼 여자 같다'고 이야기하는 발언에서 찾을 수 있다.

'곽정은의 발언을 남자가 했다면 어떨까?'라는 질문에 나는 그 남자는 분명 곽정은이 먹었던 욕보다 훨씬 더 큰 욕을 먹었을 거라고 상상한다. 하지만 남자가 여기서 더 욕을 먹어야 할 근거는 없다. 합리적인 이유가 아닌데도 남성이 더 큰 욕을 먹을 거라고 생각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조심스럽게 추측하건대 일종의 '학습'에서 일어난 거부감이 아닐까 한다. 여자 혼자 탄 택시에서 여성은 늘 폭력의 공포에 시달린다. 남자 택시기사가 '아가씨 누구 꼬시려고 그렇게 야하게 입고 다녀'라고 하는 농담을 던진다고 해도 여자는 적극적으로 불쾌감을 표시하지 못한다. 택시라는 좁은 공간에서 벗어나는 것은 기사의 동의가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하기 때문이다. 남자의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는 보통 권력을 말미암아 불쾌감을 표할 수 없는 폭력의 형태로 일어난다.

그래도 이해가 안되는 이들을 위한 제안

꽤 많은 설명을 했음에도 이해가 안될 사람이 있을 거로 생각한다. 사실 사람의 의식이 바뀌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세련되지 못한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그 생각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나는 확신한다. 과거에는 논란조차 되지 못한 '여성에 대한 비하' 내지 '성차별적 발언' 이렇게 뜨거운 이슈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는' 사람들 덕분에 세상이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라고.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여성혐오나 성차별적 발언은 점점 설 자리가 없어질 것이다. 이러한 세태를, 그리고 남성의 지위를 안타까워하는 이들은 당장 다음과 같이 쓰인 피켓을 들고 시청 앞으로 가길 바란다.

"정부는 가족부양 소득 보장하라!"

가부장제도가 해체되고 남성이 과거의 지위를 잃어가고 여성들이 '설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소득 때문이다(그게 옳은 방향인지는 차치하더라도 말이다). 남성 혼자 가정을 벌여 먹일 수 없는 순간 여성은 비로소 '부엌데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홀로 자신의 생계를 책임질 수 있었던 여성들은 더 이상 남성에게 물질적으로 의존하지 않아도 됐다. 이혼을 한다 해도 경제적으로 불안함이 적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동등한 위치를 얻을 수 있다. 단지 '서방 아침밥도 챙겨주지 않느냐'는 시어머니의 타박만 견뎌내면 된다.

물론 아직까지 남녀의 소득 차이는 분명하고 한국은 그 수준을 OECD 최하위로 유지하고 있다. 독자 생존에 성공한 여성들은 존재하지만 아직까지도 많은 여성에게 홀로서기는 녹록지 않다. 취업률 지표나 고위공직자의 여성 비율만 봐도 확연히 알 수 있다. 지금은 가부장제가 '해체되고 있는' 일종의 과도기란 의미다. 그래서인지 '일베'에서 하는 주장들을 병렬적으로 나열하면 '맞벌이해서 생활할 수 있는 소득은 벌어야 하지만 가정 내에서는 남성에게 순종적인 여성상'을 끄집어낼 수 있다. 이 과도기적 상황에서 '가부장적 관념에서의 여성상'과 '여성이 일하지 않으면 가정을 유지하기 힘든 도시사회의 여성상'을 취사선택하고 있다.

가부장제를 복원하고 싶고 집안에서 '여자가 차린 아침 밥상'을 받고 싶은 남성들은 가족과 아이를 부양할 수 있는 소득을 벌어와야 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아직까지 이 모델이 남아있는 곳은 거제 같은 산업도시 정도 뿐이다(물론 거제도 최근 생산직이 비정규직으로 대체되고 조선산업이 무너지면서 이 모델은 사실상 존속이 힘들게 됐다). '요새 여자들이 변했다'며 비난하기 이전에 시청으로 뛰어가서 행동으로 보이자. 그저 비난에만 그친다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장난감을 사주지 않는다고 투정하는 어린애'로 볼 것이다.

* 위 글은 직썰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