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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9월 04일 06시 48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09월 04일 14시 12분 KST

무엇을 버릴 준비가 되어 있나요?

우리는 소중한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경험은 사람에 대한 것이고, 사랑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한국 전쟁 발발 후 1950년 11월 중공군이 밀어닥치면서 한국군과 미군은 후퇴하기 시작합니다. 군인들은 장진호를 뚫고 가까스로 철수 길을 열었고, 10만 명이 넘는 이 땅의 생명들이 그 뒤를 따랐습니다.

1950년 12월 24일 이들은 눈보라를 뚫고 흥남부두에 도착합니다. 갓난아기부터 세 살배기, 네 살배기 아이까지 수많은 어린 생명들이 어른의 손을 잡고 등에 업혀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 눈 앞에는 바다가 놓여 있습니다. 절망뿐이었습니다. 뒤에서는 포성이 울리고 앞은 바다가 가로막고 하늘에서는 하염없이 눈보라가 휘날립니다.

이때 군 지휘관, 그리고 선장은 결단을 내립니다. 이들은 메리디스 빅토리(SS Meredith Victory)호에 실린 무기를 버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손을 내밉니다. 너 나 할 것 없이 아이들을 들어 배로 끌어 올립니다. 무기가 버려진 자리에 사람들이 들어차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시작한 3일의 항해 동안, 그 척박한 환경의 배 안에서 5명의 새로운 생명이 탄생합니다. '김치 오형제(Kimchi Five)'가 탄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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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남철수 당시 미군 수송선에 오르는 피난민들. 연합뉴스

잘 아시겠지만, 이 광경은 흥남철수 당시 우리의 모습입니다. 가요 '굳세어라, 금순아'로 우리 귀에 남아 있고, 영화 '국제시장'으로 우리 눈에 생생하게 남아있는 모습입니다. 이 '흥남철수작전'이야말로 참혹한 전쟁 속에 피어난 '크리스마스의 기적'이었습니다.

무기를 바다에 던져버린 결단은 피난민들의 눈에 서린 생존과 자유에 대한 갈망, 그 갈망에 대한 대답이었습니다. 그들, 그리고 그 이야기를 기억하는 우리들은 대를 이어 지금 이 땅에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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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적으로 난민(refugees)과 이주민(migrants)은 구분해야 합니다. 이 둘을 구분하는 기준은 '절박함', 그리고 '선택의 여지가 있었는지' 여부입니다. 단순하게 말하면 난민은 여권과 비자 문제를 야기하지 않는 인류 보편의 국제법 영역이고, 이주민은 여권과 비자를 챙겨야 하는 국내법의 문제입니다.

지금 시리아를 떠나 유럽으로 향하는 사람들에게 이 기준을 대입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들은 절박할 뿐더러,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입니다.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 이주를 선택한 집단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국경에서 그들을 상대로 여권과 비자 검사를 하겠다고 하기가 어색해 보입니다.

답은 나온 것 같습니다. 이제 UN은 시리아 난민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할지, 판무관을 어디에 어떻게 배치할지 세밀하고 구체적인 방침을 정해서 공표해야 합니다. 유럽 각국의 지도자들은 과거 러시아 혁명 때, 나치가 유럽을 휩쓸던 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상기해야 합니다. 지역과 종교, 역사에 얽매이기보다 그보다 더 크고 위대한 인권의 바다를 바라봐야 합니다.

예전 대한민국의 흥남 앞바다에서 그랬던 것처럼, 바다에 버려져야 할 것은 무기이지 사람의 생명이 아닙니다.

이제 묻고 싶습니다. 지금 유럽 지도자들, 그리고 곧 비슷한 상황에 닥칠지 모르는 우리들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바다에 무엇을 버릴 준비가 되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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