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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3월 02일 11시 22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5월 02일 14시 12분 KST

동화 속 법 이야기 | 혹부리 영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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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 학생들을 위한 법원 소개 동영상을 제작하면서 '동화 속 법 이야기'라는 원고를 쓴 적이 있습니다. 법이 적용 되는 상황을 쉽게 설명하고, 법적으로 생각하는 방식을 알리기 위해 준비했습니다. 주로 초등학생, 중학생을 염두에 두고 쓴 글입니다. 이 매체의 독자들은 20대를 넘어선 분들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잠깐 예전으로 돌아가서 머리를 식히는 것도 생활에 도움이 될듯하여 옮겨 봅니다. 자제분, 학생들과 함께 보셔도 좋을 것 같고요.

<상황>

혹부리 영감은 도깨비들에 둘러 싸여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자신의 혹을 노래주머니라고 거짓말해서 혹을 떼어 주는 대신 도깨비 방망이를 받아 부자가 되었습니다.

1) 혹부리 영감이 도깨비를 속여 도깨비 방망이를 가지게 된 것은 죄가 될까요?

2) 나중에 도깨비들이 몰려와 재물을 돌려달라고 하면 돌려줘야 하나요?

<설명>

1) 죄가 되어 처벌 받게 되나요?

혹부리 영감이 거짓말한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같으면 혹부리 영감과 같이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 어떻게 대처했을까요? 혹부리 영감이 현명했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그런데 이렇게 위급한 상황에 거짓말했다고 벌 받으라고 하면 억울하지 않을까요?

법도 역시 이런 상황에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자기 또는 다른 사람에게 부당한 침해가 발생하거나, 위급하고도 곤란한 상황이 발생한다면, 그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한 행동은 처벌하지 않습니다. 부당한 침해에 저항하는 것을 '정당방위'라고 하고, 위급하고도 곤란한 상황(위난)을 모면하기 위한 행동을 '긴급피난'이라고 합니다. 다만 방위하기 위해, 피난을 위해 과잉 행동을 했다면 어떻게 될까 - 이 부분은 사건마다 상황을 파악해 봐야 합니다(최근 절도범이 맞아 사망에 이르게 된 사건 역시 이 부분에 대한 판단이 쟁점이었습니다).

혹부리 영감이 거짓말을 하지 않았으면 도깨비들에게 목숨을 내줬어야 했겠지요? 도깨비들은 할아버지에게 폭력을 행사했기 때문에 옳은 행동을 하고 있었다고 말할 수도 없었고요. 할아버지가 겪을 고통에 비하면 거짓말의 정도가 심하지도 않았지요?

결국 할아버지의 거짓말을 문제 삼을 수는 없겠네요. 그런데 할아버지는 거짓말을 해서 도깨비들한테서 재물을 얻어냈지요? 혹시 이런 부분 때문에 할아버지는 벌을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다음 설명을 보세요.

2) 나중에 도깨비들이 몰려와 재물을 돌려달라고 하면 돌려줘야 하나요?

거짓말로 다른 사람의 재물을 얻어내면 사기죄가 됩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재물을 받기 위해서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었죠? 살기 위해 거짓말을 했는데, 도깨비들이 알아서 재물(도깨비 방망이)을 준 거죠?

그렇다면 할아버지가 재물을 의도하지 않았다고 하는 점은 분명하군요. 법률적으로는 거짓말하여 재물을 얻어내고자 하는 고의가 없었다, 또는 거짓말과 재물을 준 것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었다, 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거짓말할 의도가 없었다고 주장하기만 하면 다 용서받나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동화 속 이야기처럼 객관적인 상황으로 미루어 봤을 때 고의가 없었다는 점이 분명하게 드러나야 합니다. 고의의 판단 기준은 주관적으로 자기가 어떤 생각을 했느냐가 아니고, 객관적인 상황이 어땠느냐입니다.

도깨비들이 몰려와 방망이와 재물을 돌려달라고 하면 어떻게 하죠? 쉽지 않은 문제인데, 할아버지가 재물을 계속 가지고 있을 만한 이유가 없어 보이네요(법률행위 내용의 중요 부분에 착오가 있는 경우, 서면에 의하지 않은 증여, 부당이득 반환과 같은 법리 적용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도깨비들이 돌려달라고 할지, 어떨지 모르는 상황이었죠? 이런 때에는 돌려달라고 할 당시에 할아버지 수중에 있는 물건들만 돌려주면 됩니다. 그 동안 써서 없어진 것들은 어쩔 수 없어요.

혹부리 영감 이야기에 대해 제가 한 설명을 수긍할 수 있나요? 제 설명과 다른 생각을 가진 분들이 분명히 계실 겁니다. 앞으로 몇 차례 동화 속 법 이야기를 더 쓸 생각인데,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사회 현상에 하나의 답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현상을 풀기 위해 다양한 학설, 유사한 선례가 존재할 수 있고, 어느 견해를 취하느냐에 따라 사건의 결론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번에 설명한 고의만 해도 그 의미와 분류 방법에 대해 실로 다양한 학설과 견해가 존재합니다. 재물을 반환해야 하는지, 반환한다면 그 범위가 어떠한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간통죄처럼 과거 죄가 되었던 행위가 지금은 죄가 되지 않기도 있습니다. 다양한 의견, 건전한 비평은 바람직하고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다른 생각이 가능하기 때문에 나와 다른 생각 역시 존중하는 자세도 필요할 것입니다. 이 원고의 마지막은 이렇습니다.

[여러분 중에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이 있다고요? 네,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자, 그럼, 다른 의견이 있는 친구들은 돌아가는 길에 서로 이 문제에 대해 토론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