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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3월 11일 17시 22분 KST | 업데이트됨 2014년 05월 12일 14시 12분 KST

응답하라 1997 - 법원의 메시지

제도가 지속되다 보면 원하건 원하지 않건 부조리가 생길 수 있어요. 아무리 노력해도 고쳐지지 않고, 아무리 살려고 발버둥 쳐도 빚에서 헤어날 수 없는 그런 상태가 생길 수 있다는 거죠. 개인의 자유의지나 능력하고는 무관하게 말이죠. 유대인들은 이런 부조리를 없애기 위해 50년에 한 번씩 빚을 탕감해 주고, 노예를 해방하는 제도를 운영해 왔다고 하네요.

한겨레

법원이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하죠? 국가권력 삼권분립의 한 부분, 소송을 담당하는 곳, 판결하는 곳. 모두 맞습니다. 그런 기관이고, 그런 일들을 합니다.

제가 쓴 첫 글은 '안중근이 말하는 만국공법(萬國公法)'이었습니다. 판사로서 알리고 싶고, 하고 싶은 말을 한 거죠. 다음 글을 뭘 쓸까, 쓸까 말까, 고민했습니다. 그러다가 역시 내가 몸담고 있는 곳을 알려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시작은 약간 덜 알려진 곳, 설명을 들으면 "아, 그렇구나!"라고 할 곳부터 이야기할게요. 오늘은 1997년 금융위기 극복과정에 법원이 한 일과 법원이 사회에 뿌린 메시지에 대해 말할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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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기억하시죠? 다들 어려웠죠.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하면 사실 그때 우리는 크게 뛸 준비를 했습니다. IMF구제금융 신청에 이어 기업이 줄도산하고, 구조조정이다 해고다 온통 나라가 어수선하고 고통스러웠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역시 우리답게 집집마다 금을 꺼내 놓고, 예전 회사 동료를 위해 모금을 하고, 한강 다리에 선 사람들에게 살아야 한다고 소리쳤습니다. 이런 힘들이 모이고 모여서 금융위기를 극복한 거죠. 지금은 교역규모 세계 8위에 올라서는 기염을 토하고 있습니다.

'응답하라 1997'이 당시 상황을 참 맛깔나게 그려냈죠. 그래서 큰 공감을 얻었고요. 그런데 1997년 금융위기 극복에 법원이 큰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요?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법원과 경제 이야기라고 해도 좋고요.

'파산', '도산'이라고 하면 뭐가 생각나세요? 빚잔치? 우리들은 1997년 전까지 누가 망했다고 하면 채권자들이 집으로 몰려가고, 가구에 딱지 붙이고, 소리 지르고 윽박지르고 머리 쥐어뜯고, 이런 장면들을 떠올렸습니다.

'파산'이라는 말 자체가 '끝났다'라는 어감을 담고 있어서 그랬나요? 지금은 1997년하고는 말이 약간 달라졌어요. '도산'이라는 큰 개념을 두고 그 밑에 '파산', '회생'이라는 말을 쓰고 있어요. 빚잔치라는 뜻이 남아있지만, 그보다 '살리다'의 의미를 더 강하게 담고 있죠.

그러면 '도산'이 왜 '살리다'라는 뜻일까요? 마크 트웨인(Mark Twain) 알죠? 마크 트웨인이 했던 말 중에 이런 말이 있어요. "A banker is a fellow who lends you his umbrella when the sun is shining, but wants it back the minute it begins to rain." 마크 트웨인이 왜 이런 말을 했을까요? 그 역시 파산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법원에서 진행하는 절차에 따라 빚을 정리하고 새출발했습니다.

마크 트웨인은 개인이지만, 1997년 금융위기 때는 어땠나요? 개인의 총체인 사회, 사회의 총체인 국가 자체가 파산 위기였습니다.

1997년부터 어음을 막지 못해 부도 난 기업, 치솟는 이율에 대출금을 갚지 못해 파산에 몰린 사람들이 한꺼번에 법원에 몰렸습니다. 그때부터 법원공무원들은 야근에 야근을 거듭했고 밀려오는 일을 막아내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금융위기 때 왜 법원이 바빴냐고요?

도산절차 중에 기업회생절차가 있습니다. 기업이 회생신청을 하면, 법원은 먼저 회사 재산을 동결시킵니다. 채권자들이 진행 중인 강제집행도 중지시키죠. 일단 변제를 보류해서 숨을 돌리는 거예요. 법원은 회사를 위한 관리인을 선임합니다. 그 관리인은 법적으로는 회사와는 별개 인격체예요. 관리인은 일정 금액 이상의 지출에 대해서는 모두 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법원은 회사가 파악한 채권자, 공지를 보고 신고한 채권자들을 파악합니다. 그리고 채권자들을 한 자리에 모아서 회의를 하죠. 이 회의를 관계인집회라고 합니다(파산절차에서는 채권자집회). 그 회의 장소는 법정입니다. 법원은 관계인집회를 위해서 회사에 대한 평가절차를 진행합니다. 회사의 기존 재산에 대한 평가도 하지만, 그보다 회사의 장래 가치에 대한 평가가 중요합니다. 회사의 장래 가치까지, 말하자면 장래 수익 가능성까지 평가한다는 점을 잘 기억해야 합니다.

채권자들은 공정하게 평가한 자료를 분석해서 회의를 합니다. 제일 덩치 큰 채권자들은 주로 은행이겠죠? 이렇게 해서 모인 채권자들은 회사의 향방에 대해서 논의를 합니다. 회사 재산을 바로 분배하고 회사를 침몰시킬지, 아니면 회사를 계속 운영하게 해서 장래 수익으로 변제받을지에 대해서 말이죠. 이때 채권자인 은행에서 돈을 더 투자해서 기업을 살리기도 합니다.

어떤가요? 기업 회생 절차를 법원에서 맡아서 하는 것이 어색하지는 않죠? 말하자면 법원이 기업을 운영하는 셈입니다. 기업도 자체 생명력을 가지고 사회에서 일정한 역할을 담당하며 활동을 지속해온 여러 사람들의 노력의 결정체예요. 그런 사회 유기체를 앞에 두고 죽었는지 살았는지부터, 수혈을 할지 멈출지까지 결정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무엇보다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죠.

이렇게 복잡한 이해관계를 공정하게 지켜보면서 관리감독할 만한 기관이 사실 우리 사회에 그리 흔하지는 않습니다. IMF구제금융 신청 때 법원이 재계 서열 2위였다는 이야기도 있어요. 법원이 법정관리하던 기업의 자산을 모아서 한 이야기입니다. 그만큼 어려운 시절이었지요. 그런 시기를 겪으면서 우리 기업들, 그리고 우리 경제가 얻은 것이 많습니다.

여러 교훈 중에 하나가 투명한 경영이 결국 회사를 살린다는 경험이었습니다. 왜 투명하냐고요? 법정관리 대상 기업의 돈은 법원이 허가해야 빠져나갑니다. 그 허가는 법원의 정식 결정이어서 법원 사건검색에서 모두 확인할 수 있어요. 법정관리를 하면서 부정이 끼기가 곤란합니다. 절차를 외부에 지속적으로 알리기 때문에 투명성이 보장되는 것이죠. 이 사회에서 윤리경영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정보는 나눌수록 커진다는 생각도 퍼졌어요. 회사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어떤 재산을 보유하고 있는지, 장래 운영계획은 어떤지, 이런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죠? 투명한 운영의 결과이기도 한데요, 관계인집회를 위해서 법원 감독 아래 이런 자료를 모두 꺼내 놓습니다. 채권자들은 그 자료를 분석해서 판단을 하게 되죠. 지금 유명한 큰 기업들 중에 금융위기 때 오히려 채권자 은행에서 돈을 더 수혈받아 살아남은 기업들이 많답니다. 채권자들도 회사에 대한 정보를 몰랐다면 과감하게 투자 결정을 하지 않았겠죠. 정보를 공유하면서 회사 운영에 대한 밀도 있는 결정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무엇보다 언제든지 또 다른 기회가 있을 수 있다는 강한 메시지를 사회에 던졌습니다. 빚에 허덕이던 나도 법원에서 마련한 절차에 따라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 바로 그 희망을 사회에 뿌린 거죠. 마크 트웨인처럼 말이죠.

아마 이 글을 읽으면서 도덕적 해이(moral hazard)에 대해서 걱정하는 분들이 계실 거예요. 도산절차 때문에 돈을 빌려주거나 투자하고도 상당 부분을 떼이는 아픔을 겪은 분들이 분명히 계실 겁니다. 이 부분이 사실 쉽지 않은 부분인데요, 도덕적 해이를 막을 방안은 계속 연구 중입니다. 잠시 희년에 대해서 이야기할까 합니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는데요, 도산절차는 유대인들의 희년제도하고 연관이 있습니다. 희년(禧年, year of jubilee)은 구약성서에 기원을 두고 있어요. 각자가 각자의 땅으로 돌아가며 또한 그 가족에게로 돌아가는 해를 뜻합니다. 유대인이 인류에 준 최고의 선물이 일요일이라고 하죠? 일주일의 마지막 하루를 쉴 수 있게 된 것 말이죠. 그리고 교수들은 7년에 한 번씩 안식년(요새는 연구년이라고 하더군요)을 가지죠. 이렇게 안식년이 7번 반복되면 49년이 되고, 그 다음해인 50년째를 희년이라고 부릅니다. 성경은 이 희년을 '자유의 해'라고 불러요.

사람이 살면서 약속을 하고, 그런 약속들이 쌓여서 제도가 되죠. 그런데 사회가 지속되다 보면 부조리가 생깁니다. 부조리는 꼭 사람이 나빠서 생기는 건 아니에요. 제도가 지속되다 보면 원하건 원하지 않건 부조리가 생길 수 있어요.

아무리 노력해도 고쳐지지 않고, 아무리 살려고 발버둥 쳐도 빚에서 헤어날 수 없는 그런 상태가 생길 수 있다는 거죠. 개인의 자유의지나 능력하고는 무관하게 말이죠. 유대인들은 이런 부조리를 없애기 위해 50년에 한 번씩 빚을 탕감해 주고, 노예를 해방하는 제도를 운영해 왔다고 하네요. 예전에는 빚 때문에 노예가 되기도 했으니까요.

도산절차 때문에 고통 받은 채권자가 있다면, 이런 면에서 제도의 취지를 선해하면 어떨까요. 아주 사기를 치는 그런 나쁜 사람들이 아예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거예요. 그래도 이 사회가 더 바람직하게, 그리고 열심히 살려는 사람들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려면 이런 제도 운영은 필요합니다.

응답하라 1997, 법원이 사회에 준 메시지였습니다.